[김학용 칼럼] 광역철도의 숨은 송곳

김학용 주필
신탄진~서대전~계룡시를 잇는 충청권 광역철도 사업이 정부 승인을 받았다. 대전시로선 저렴한 예산으로 도시철도 노선 하나를 더 확보한 셈이다. 도시철도로 건설하면 시비(市費)만 7000억 원 정도 들어갈 사업을 1000억 원에 하는 것이다. 대전시로선 큰 성과다.

법령을 어기면서 승인해준 대구 광역철도

누구의 공(功)일까? 나는 대구의 공이 아닌가 한다. 한겨레신문에 따르면 정부는 대구 광역철도 예산을 12억에서 168억 원으로 늘렸다. 법령상 대구권에 포함돼 있지 않은 구미까지 대구권 광역철도에 포함시켜 사업을 승인했다. 법령이 아직 바뀌지도 않았는데 예산편성이 이뤄졌다. 아무리 TK정권이라해도 대구는 이렇게까지 해주면서 대전을 모른 체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대전은 대구에 묻어간 듯하다. 

주로 충남과 호남의 예산을 깎아서 TK지역 예산을 늘렸다. 민주당이 TK예산을 깎겠다고 나서면서 대구에선 경계감을 나타내는 보도까지 나왔다. TK 지역은 예산이 크게 늘어났지만 지역 정치인들의 공치사 논란은 없다. ‘최경환 예산’으로 불리는 상황이고, 최 부총리가 그 동네 사람인데 다른 누가 공을 내세우겠나?

대구 광역철도의 반쪽 정도를 선물받은 대전에선 공치사 공방이 치열하다. 새정치연합의 박병석 국회의원은 보도자료를 통해 “권선택 대전시장과 직통라인을 형성하고 시공무원들과 보좌진이 긴밀히 협조해 왔다”며 “정치적인 문제는 의원실에서, 행정적인 문제는 대전시에서 적극적으로 협조하며 대응을 해 통과시킬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7년 간 집념이 맺은 결실”이라고 했다.

그러자 새누리당 대전시당(위원장 정용기 국회의원)은 “이 사업은 교통소외 지역인 대덕구에서 제안되었고, 제안에서 확정까지 정부 여당이 현실적 정치적인 면을 종합 고려하여 판단을 내린 것”이라며 “이러한 사실에도 불구하고 대전시와 일부 언론이 앞장서서 정부 여당을 철저하게 배제하고 자신들끼리 치적을 자랑하고, 자신들끼리 방송에 출연하는 모습은 뜻있는 시민들의 공분을 불러일으키고 있다”고 비판했다.

믿기 어려운 새정치연합의 공치사.. 새누리당 위원장의 엇갈린 행보

시민들은 헛웃음이 나온다. 대전 정치인들은 지역의 이익을 놓고 벌이는 경쟁에서 자력으로 이겨본 적이 거의 없다. 박근혜 정부 들어와서 문제가 된 사업들만 봐도 그렇다. ‘KTX 서대전역 경유 문제’ ‘쪼그라진 과학벨트’ ‘충남도청사 국비지원’ 등 어느 것 하나 해결된 게 없다. 있던 것도 빼앗기고, 그래도 목소리 한번 못 내는 게 대전 국회의원들이다. 

대전 지역 국회의원들이 경향신문이 분석한 지역별 예산 배분표를 봤다면 광역철도 가지고 공적다툼을 벌일 낯이 없을 것이다. [출처 경향신문]

박병석 의원의 주장은 믿기 어렵다. 충청권 광역철도 사업이 확정됨으로써 권선택 시장이 도시철도 소외지역 대덕구에 놓겠다는 스마트 트램 계획은 그날로 날아갔다. 같은 방향으로 도시철도를 2개씩 놓을 이유가 없다. 당정이 정말 도시철도 문제를 함께 고민했다면 스마트 트램은 발표되지 않았다. 당정 간 긴밀한 협조는커녕 기본적인 의사소통도 안 된 게 분명하다.

새누리당 정용기 의원은 대덕구청장 시절 대덕구 소외론을 명분으로 염홍철 시장과 도시철도 2호선에 대해 ‘노선 투쟁’을 강하게 벌인 바 있다. 그가 신탄진 방향의 충청권 광역철도 사업을 확신했다면 2호선 노선문제에 그렇게 집착할 필요는 없었다. 더구나 그는 자신이 충청권 광역철도 아이디어를 가장 먼저 제안했다고 주장한다. 충청권 광역철도에 관한 한 엇갈린 행보를 해온 꼴이다.

내가 들은 ‘1등공신’은 송곳 역할한 공무원

내가 들은 ‘광역철도 1등공신’은 따로 있다. 이 일에 매달렸던 전직 공무원 A씨다. 그는 내가 알고 있던 사람이었지만 그가 이 일의 담당자였다는 사실은 몰랐고 작년에 퇴직했다는 사실도 잊고 있었다. 그의 남모른 노고를 전해 듣고 그에게 전화를 걸었다. 충청권 광역철도에 대해 묻자 그는 “내 얘기를 쓰면 절대 안 된다”는 말부터 했다. 그를 안심시키면서 물어봤다.

충청권 광역철도 사업은 2008년 박성효 시장 때 시작됐다. 박 시장은 청주~조치원~신탄진~서대전~계룡~논산의 총연장 106.6km 노선으로 추진했다. 박 시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건의하고, 이 대통령이 광역경제권 계획에 포함시키면서 정부사업으로 시동이 걸렸다.  

경제성이 문제였다. BC(편익비용)가 0.66에 불과했다. 최소 0.8~0.9 이상이어야 사업이 가능하다고 한다. 정부는 충청권 광역철도를 ‘2016년~2012년 후반기 사업’으로 분류하고, 2011년 4월 국가철도망 계획으로 고시했다. 정부사업으로 족보가 올라가긴 했으나 2016년 이후 다시 검토해보고 경제성이 괜찮으면 그때 다시 논의하자는 게 정부의 공식 결정이었다.

2010년 7월 취임한 염홍철 시장도 처음엔 적극적이지 않았다. 그는 신탄진~진잠 간 도시철도의 지하화를 공약한 터여서 이와 중복되는 성격의 충청권 광역철도엔 소극적이었다. 염 시장은 나중 2호선을 순환선으로 바꾼 뒤, 대덕구청장이 대덕구 소외론으로 노선 싸움을 걸어오자 충청권 광역철도망 카드로 대응했다. 이때 A씨가 발탁됐다.

대전시가 무조건 매달리는 것은, 2016년까지는 이 사업을 추진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공식 결정을 거스르는 일이었다. 대전시는 아이디어를 냈다. 광역철도 노선을 단축, 신탄진~서대전~계룡 34km만 우선 운행하는 방식으로 바꿔 추진했다.

그렇게 하면 경제성은 충분했지만 1차관문인 국토부든 철도시설공단이든 법으로 미뤄놓은 사업에 손을 대고 싶어하지 않았다. ‘충청권 광역철도는 2016년으로 미뤄진 사업인 만큼 그때까지는 재추진이 어렵다’는 입장이 확고했다. 장관도 실무자도 같은 생각이었다. 이들 기관을 움직일 방법이 없었다.

대구권 광역철도 출처 한겨레 신문

“위에서만 움직여선 어렵다” 정치인도 송곳론 인정

이런 경우 해법은 이들을 계속 찾아가서 부탁하는 것밖에 없다. 그게 A씨가 한 일이었다. 지루하고 힘든 일이었다. 주변 사람들에 따르면, A씨는 중앙부처와 관계기관들을 수 십 번씩 찾아갔다. 담당자와 밥도 함께 먹고 때론 성심당 빵을 사들고 가기도 했다. A씨는 철저하게 을(乙)이 되어 이들 기관에 부탁하고 설명했다. 담당자가 바뀌면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다.

A씨는 그때마다 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에게 상황을 보고했다. 시장과 지역 국회의원들은 의정활동 과정에서 정부 윗선을 압박하며 공략했다. ‘2016년 이후의 후반기 사업’으로 미뤄졌던 충청권 광역철도는 마침내 되살아났다. 기획재정부는 2013년 5월 예타 신청을 받아들였고, 1년6개월 만인 지난 11월 25일 통과됐다.

정치인들만의 공일까? 만일 A씨의 중앙부처 방문이 열 번 정도로 그쳤다면 어떻게 됐을까? 한 정치인은 “위에서만 움직여선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아래 송곳부터 들어가야 일이 쉽다”고 했다. 쉽고 어려운 정도의 차이가 아니라 송곳 없이는 일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충청권 광역철도 사업도 그런 사업이고, A씨가 송곳이었다.

A는 공무원 한 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필자는 A씨 같은 공무원들을 몇 알고 있다. 자기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면 존경스럽다. 물론 그들의 노고와 공은 대부분 가려져 있다. 공은 늘 윗사람들 차지다. 아래 사람들은 공을 드러낼 수 없다. A씨는 공무원을 그만 둔 상태인 데도 취재도중 “기사에 내 이름이 나가면 안 된다”는 말을 몇 번이나 했다.

필자는 그의 당부를 어기고 있다. 이유는 있다. 지금도 어디선가 그런 공을 세우고 있는 공무원들이 있다. 그들을 응원하고 싶다. 그들이야말로 보이지 않는 ‘공무원 시장’ ‘공무원 도지사’다. 직급은 높지 않아도 사명감은 시도지사 못지 않다. 혼란스런 지역사회를 지켜주는 또 하나의 버팀목이다. 신문에는 공무원 비리 기사가 끊이지 않지만 숨어서 ‘큰 일’을 하는 공무원들도 있다.

공(功) 독차지하는 건 종중재산 자기 명의로 하는 것

충청권 광역철도의 공(功)을 굳이 논하자면, 여러 사람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선거 때가 다가와서 마음이 급하다고 해도 한 정당, 한 사람이 독차지할 수는 없다. 공을 독차지하는 것은 여럿이 이룬 재산을 혼자 가지려는 것과 같다. 종중 재산을 자기 명의로 해놓으려는 것과 흡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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