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천안시청 브리핑실 둘러싼 '갑들의 대결'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몰랐다. 어디부터 어디까지 이야기를 해야 할지도 몰랐다. 누구를 '나쁜 사람'으로 만들어야 할지도 몰랐다. 일주일 동안 용기와 회피 사이에서 갈등했다. 기사를 써야할지, 말아야 할지 한참을 망설였다. 고민 끝에 택한 결정은 용기였다.

충남 천안시청 브리핑실 이야기다. 십 수 년 간 브리핑실을 '기자실(개인 책상 및 상주)'화 해 오던 지역 기자단(회원사)이 올해 초 천안시의회가 만든 '시정홍보 활성화 조례'에 한방 먹었다. 기자단의 상징이던 개인 책상이 끌려 나갔다. 대의 민주주의 기관이란 거대 권력에 위세가 한풀 꺾였다.

천안시의회, 올해 초 조례 통해 브리핑실 책상 빼..기자들과 '전면전'

시의회는 책상만 빼면 모든 게 해결될 줄 알았다. 하지만 기자들의 저항은 만만치 않았다. 시의회를 비판하는 기사들을 쏟아냈다. 시의회도 지지 않았다. 연말이 다가왔다. "자 이제부터 브리핑실은 브리핑이 있을 때만 열거야. 브리핑도 시장한테 허락받고 해야 돼"라고 했다. 그리고 올해 마지막 정례회에서 '시정홍보 활성화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킬 심사다.

언론과 시의회간 '갑(甲)의 대결'이다. 서로가 서로를 처음부터 '나쁜 사람'이라고 규정짓고 있다. 그러니 감정적이 될 수밖에 없고, 타협의 여지도 없다. 사정이 이런데 나 역시 이런 글을 쓴다고 뭐가 달라지겠나 싶었던 것이 용기와 회피 사이의 고민이었다.

울고만 싶었다. 왜 내가 이런 상황과 직면해야 하는지. 혹자는 "네가 쓰면 뭐가 달라지는데? 되레 네가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했다. 다른 혹자는 "후회를 하더라도 용기를 내"라고 했다. 선택은 더 어려웠다. 둘 중 선택받지 못한 쪽은 두고두고 서운함으로 남을 테니.

연말 브리핑실 부분 개방 조례 추진에 또 '공방'..조례 통과돼도 '시계 제로'

쓰고 욕먹을 건가, 지켜 볼 것인가. 기실, 조용히 시간만 지나면 된다고 해결될 일도 아니다. 조례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언론과 시의회의 대결은 계속될 수밖에 없다. 어쩌면 더 격화될 수 있다. 때문에 용기를 낸 지금 그들을 향한 비판보다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

충남 15개 시·군에서 브리핑실을 운영하지 않는 곳은 6곳(공주시, 아산시, 계룡시, 홍성군, 금산군, 서천군)이다. 그럼 지금 천안시 기자단에서 주장하는 브리핑실 폐쇄(부분 개방이 정확한 표현임)에 따른 언론 길들이기와 탄압을 6개 시·군은 당하고 있다는 셈이다. 그렇다면 브리핑실이 없는 그 지역은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고 있을까.

적어도 신문은 공공재의 가치가 있다. 권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 감시가 주목적이다. 그러나 언론은 권력을 응징하려 해선 안 된다. 그 순간 '언론=권력자'란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내 버리기 때문이다. 신문에 불어넣을 건 '기사'란 생명력이지 감정의 낙서는 아니다. 감정이 실린 글은 공감 받지 못한다. 기사로서의 가치도 없다. 그런 기사가 실린 신문을 독자에게 돈 내고 보라는 건 더더욱 말이 안 된다.

충남 15개 시·군 중 6곳 브리핑실 폐쇄..언론 민낯과 권력 남용 사이

지금의 대결에는 "내 탓이오"가 없다. 그래서 접점이 안 보인다. 양보의 기미조차 없다. 갑중의 갑이어야 할 시민들만 지리멸렬(支離滅裂)한 대결에 애먼 피해를 보고 있다.

한 가지 제안을 하겠다. 브리핑실에 대한 공개 토론회나 공청회를 여는 것이다. 기자단 대표와 시의회 대표, 시민단체 등이 한 테이블에 앉아 '끝장토론'을 해봄직 하다. 참석한 시민 의견도 들어보고 말이다. 분명히 해법은 나올 것이다. 언론의 민낯과 권력의 남용 사이에서 '대화의 장'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누가 이기고 지는 전쟁이나 게임 아냐..공개토론 등 대안 모색 '필요'

왜냐면, 지금 조례가 통과되더라도 이런 노력 없이는 두 집단은 만날 서로를 ‘나쁜 사람’으로 매도할 것이니까. 감정싸움에 떠밀린 중요한 지역 현안들은 신문 속에서 실종될 테니까. 시민 피해는 바로 이 때문에 꺼낸 말이다. 내 제안이 받아들여질진 몰라도, 그들도 한번쯤 용기와 회피 사이에서 고민해봤으면 좋겠다. 그리고 나처럼 용기를 내봤으면 좋겠다.

일련의 싸움은 누가 이기고 지는 전쟁이나 게임이 아니다. 누가 누구에게 침을 뱉으랴. 나 역시 기자이기에 이처럼 부끄럽고 속이 상한데. 존경하는 선배 기자가 요즘 유행하는 페이스 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왜 너만 그래?"에 "저라도 안하면 아무도 안하니까요".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비록 한줄 밖에 안 되는 글이지만, 내게 용기를 줬다. 내가 노트북 앞에 앉게끔 도움을 준 천안시 공무원과 중립지대의 기자와 시민운동가, 시의원들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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