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점심시간 2시간제’ 대전시와 ‘말랑말랑’한 충남도

김학용 주필
얼마 전 대전시청을 방문했던 한 지인이 전화를 걸어와 불평을 쏟아냈다. 요지는 이랬다. 시청에 볼 일이 있어 한 부서를 방문했는데 사무실이 텅 비어 있었다. 40~50명 정도 근무하는 듯한데 2명만 남아 있었다. 그 중 한 명에게 시청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11시30분이면 점심식사 하러 나간다’고 했다. 그러나 지인이 확인해 보니 11시20분이 좀 넘은 시각이었다.

민원인이 목격한 대전시 ‘점심시간 2시간제’

지인은 한 시의원으로부터 “대전시는 엘리베이터 혼잡을 피하기 위해 30분 정도 일찍 사무실을 나갈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시청 공무원들의 점심시간은 11시30분부터 1시30분까지 2시간”이라는 말을 전해듣고 더욱 화가 났다. 그는 “공무원이라면 적어도 근무 시간은 지켜야 되는 것 아니냐”면서 “기자가 와서 ‘11시 반의 오찬행렬’을 사진으로 찍어 보도해달라”고 했다.

11시30분이 되기도 전에 텅 비는 사무실과 몰려나가는 공무원 행렬은 지인이 목격한 대전시의 기강해이 풍경이다. 언제부터 이렇게까지 되었는지는 모른다. 아마 권선택 시장이 재판을 받으면서, 특히 잇따라 당선무효형을 선고받은 이후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가장 큰 책임은 시장에게 있다. 비록 재판을 받는 상황이라고 해도 시장은 기강해이를 최소화하는 노력을 했어야 한다. 시장이 어떤 어려움에 처하든 행정에 누수가 생기지 않도록 하는 일은 시장이 마지막까지 해야 할 책무다. 필자는 일벌백계를 써서라도 기강을 잡아야 한다고 주문한 바 있으나 그런 시도는 눈에 띄지 않았다.

상황이 상황인 만큼 시장으로선 어려움이 있다면 부시장이라도 나섰어야 한다. 출퇴근 등 기본적인 근태관리는 시장보다 행정부시장의 책임이다. 한 공직자는 “시장이 아버지라면 부시장은 어머니다. 아버지가 제 역할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어머니는 아이들을 단속할 책임이 있다”고 했다.

부시장은 그걸 못하는지 안 하는지 손을 놓고 있는 것 같다. 혹시 ‘시장이 못하고 있는데 부시장이 나설 수 있나?’라고 생각하고 있다면 잘못이다. 시장을 위해서라도 부시장이 나서야 한다. 근태관리 책임은 사무실을 조직원과 함께 쓰는 실국장들에게도 있다.

‘재판 받는 시장 한계’ 때문이면 부시장이라도 나서야

‘점심시간 2시간제’는 공무원들에겐 편하겠지만 시민들에겐 욕을 먹게 돼 있다. 부시장이 아니라 시장이 욕을 먹는다. 시장이 재판중이라는 점도 변명은 못 된다. 그날 시청에 헛걸음을 한 민원인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는 뻔하다. 

민원인의 불편은 잠시 참으면 되지만 이 정도로 흐트러진 조직에선 150만 대전시민의 미래까지 망가진다는 게 문제다. 이런 분위기에서 열심히 일하는 공무원이 몇이나 될까? 10년, 50년 뒤 대전시민의 미래가 이들의 손에서 제대로 만들어지고 있다고 볼 사람은 없다. 심하게 말하면 지금 대전시청은 그냥 시간을 때우면서 세금만 축내는 사람들의 공간이다.

충남도 공무원들도 ‘풀어진 생활’

충남도 공무원들도 ‘풀어진 생활’을 하고 있다. 도청에서 내포로 옮기면서 생활 환경은 나빠졌지만 안 지사가 도정을 맡으면서 업무 압박은 크게 줄었다는 게 도청 안팎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안 지사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안 지사는 올 여름 조직관리 문제를 언급하면서 “(도청 공무원을) 너무 풀어놓은 것 아니냐. 영(令)이 서지 못하고 너무 규율이 없는 거 아니냐는 걱정을 듣고 있다”고 했다. 물론 안 지사의 표현대로 ‘딱딱한 위계문화와 계급질서를 좀 더 말랑말랑하게’ 바꾸는 게 21세기 공직사회를 준비하는 일이며, ‘공직자들은 성실하게 일 잘하고 있다’는 게 안 지사의 주장이다.

조직을 풀어놓고도 업무 성과를 낼 수 있다면 더 없이 좋은 방법이다. 그런데 지금 충남도는 어떤가? 안 지사가 들어온 이후 충남도정은 위기를 맞고 있다. 황해경제자유구역 지정 실패, 당진-평택 땅분쟁 패배 등 주요 현안이 잇따라 좌절되고, 안 지사의 핵심시책인 ‘3농혁신’마저 성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안 지사는 성과를 성급하게 재촉해선 안 된다는 말로 변명한다. 그러면서 ‘공직자들은 일 잘하고 있다’며 늘 부하 직원들을 감싸준다. 안 지사가 도청의 부하 공무원을 크게 질책하는 모습은 거의 볼 수 없다. 일에 관한 한, 충남도 공무원들은 어느 때보다 ‘말랑말랑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

공무원들 ‘말랑말랑한 시간’ 보낼 때 도민들은 아우성

딱한 사람들은 충남도민들이다. 도민들은 말랑말랑한 시간을 보낼 수 없다. 황해경제구역 예정지에서, 안면도국제관광지에서, 평택에 빼앗긴 땅에서 피킷을 들고 충남도를 원망하며 미래를 걱정하고 있다.

일 자리를 찾지 못하는 청년들에게 우리나라는 ‘헬(hell) 조선’으로 불린다. 희망과 미래가 없는 지옥처럼 느껴지고 있다. 거기에 비하면 점심시간을 2시간씩이나 누리는 대전시는 낙원이다. 성과가 없어도, 그래서 도민들이 아우성을 쳐도 도지사가 “우리 공무원들은 일 잘하고 있어요”라고 감싸주는 충남도청 또한 낙원이다.

많은 샐러리맨들은 언제 퇴출될지 몰라 늘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으로 출퇴근을 하고, 하루 벌어 하루 먹는 영세업자들은 일손을 놓지 못한 상태로 점심을 때우기도 한다. 이들이 보기에 대전시와 충남도 공무원들은 낙원생활이다. 일 걱정 없이 점심도 느긋하게 2시간씩 즐기면서, 월급 안 나올 걱정 없고 잘릴 걱정도 없다. 승진 걱정이야 없을 수 없겠으나 지옥같은 한국에선 이 정도면 낙원 아닌가?

점심시간을 더 늘리고, 조직을 더욱 말랑말랑하게 해서 조직을 풀어놓더라도 행정이 제대로 돌아가고 성과가 나온다면 그들의 낙원은 부러워할 일이다. 그러나 시민들 불편이 크고 도민들의 원성이 높아가는 데도 공무원들만 낙원생활을 즐기고 있다면 수장(首長)의 죄다.

공무원들보다 주민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하는 시도지사의 의무를 배반한 죄다. 불성실한 CEO가 남의 돈으로 남의 조직을 다룰 때, 그 조직원들에게 인심을 잃지 않으려는 포퓰리즘에 불과할 뿐이다. 시도 공무원들의 월급이 시도지사 호주머니에서 한 푼이라도 나가고 있다면, 성과가 없는 데도 조직을 그렇게 방치해 두지는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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