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국회이전 '통 큰공약'

국회분원 아닌 국회 이전 ‘통큰 공약’
대전 지하철 1호선 세종연장 청사진도

영화나 드라마에 등장하는 ‘왕의 호위무사’들은 말 수(대사)가 적다. 대신에 몸(액션)으로 뭔가를 보여준다. 많은 대사를 소화하기 힘든 신인배우들이 ‘호위무사’역을 독차지하고 있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것이다.

여기 세종시에 진짜(?) 왕의 호위무사가 등장했다. 총선출마를 위해서다. 박종준 전 대통령경호실 차장이 그 주인공이다. 그런데 영화 속 주인공처럼 말 수가 적지는 않다. 등장하자마자 많은 말을 꺼내놓기 시작했다. 비범한 약속들이 대부분이다. 세종시민이 귀를 쫑긋 세울만하다.

그는 옛 연기군지역의 군부대를 외곽으로 이전시키고, 국회의사당을 이곳으로 옮겨오겠다고 약속했다. 자신을 국회로 보내주면 이 일에 “정치생명을 걸겠다”는 결기까지 내비쳤다. 몇 년째 ‘국회분원 유치’나 떠들어대는 지역정치권을 움츠러들게 할 만한 이야기다. 감사원도 그 자리에 함께 유치하겠다는 ‘보너스’ 공약까지 준비했다.

메가톤급 공약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과천에 똬리를 틀고 옴짝달싹 않는 미래창조과학부는 물론이고, 특별법상 세종시 이전 제외기관으로 명시된 행정자치부, 법무부, 여성가족부의 세종시 이전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일찍이 세종시에서 이 만큼 ‘통 큰’ 약속을 한 정치인이 있을까 싶을 정도다.

이후 소개할 박 후보의 약속은 앞선 것들에 비하면 소소하기 그지없다. 그는 신도시지역 주민의 숙원 중 하나인 유·초등학교 증설 및 재배치를 약속했다. 신도시지역 유권자 대부분이 유·초 등 학령기 아이들의 학부모인 점을 잘 파고들었다.

행복도시 구상 초기단계부터 선택지에서 제외됐던 지하철 건설 카드도 들고 나왔다. 대전지하철 1호선을 세종시 금남면과 한솔동, 아름동, 도담동 등 인구밀집지역을 경유해 조치원, 오송을 거쳐 청주공항까지 연결시키겠다는 야심찬 계획이다. 역시 유권자가 많이 모여 사는 인구밀집지역을 겨냥한 맞춤형 카드다. 박 후보는 소외된 북부지역 주민들에게는 “북부지역에 최첨단·친환경 대기업을 유치하겠다”는 미래전략도 제시했다.

세종시민이라면 이 같은 장밋빛 청사진에 환호하지 않을 수 없다. 정당과 정파, 이념을 모두 떠나 내뱉은 약속만 지킬 수 있다면,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당연히 금배지를 달아야하고 그보다 더한 직책이라도 맡아야 한다는데 다들 동의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실현가능성이다.

박 후보의 메가톤급 공약에 시민들이 즉각 환호하고 있을까. 아니다. 지켜보자는 쪽이 대다수고, 일부는 조소까지 보내고 있다. 이제 막 ‘초선’에 도전하는 정치신인이 감당하기에 그의 약속은 지나치게 무겁다. 참신한 고민의 흔적도 발견되지 않는다. 희망은 하지만, 감당하기 어려워 입 밖에 내뱉기 어려웠던 오래된 레퍼토리가 대부분이다.

예산을 움직이는 행정 관료들을 발 아래 두고, 동료의원 200명을 단번에 움직일 수 있는 ‘힘’ 있는 정치인, 대통령의 정치적 결단까지 손쉽게 이끌어 낼 수 있는 여권의 실세권력. 박 후보는 지금 그런 정치인이 되겠다며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호위무사의 칼집에 보검이 들어있는지 아니면 부러지고 녹슨 칼이 들어있는지, 빨리 확인해보고 싶을 따름이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