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옥배의 공연리뷰] 음악평론가 | 당진문예의전당 관장

'정격연주의 정수.' 지난 12월 18일 대전예술의전당 아트홀에서 열린 대전시립합창단 송년음악회에 대한 감상이다.

대전시립합창단 제126회 정기연주회로 개최된 이날의 공연은 베토벤의 ‘교향곡 9번 합창’과 함께 송년음악 레퍼토리로 자리매김한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Messiah)를 프로그램으로 올렸다. 상임지휘자인 빈프리트 톨 지휘로 대전시립합창단, 바로크음악 전문연주단체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는 ‘카메라타 안티콰 서울’, 독창자로 소프라노 석현수, 카운터테너 조요한, 테너 박승희, 베이스 박승혁이 함께 했다.

이날 공연이 관심을 끈 것은 빈프리트 톨의 연주해석이 정격연주였다는 점이다. 정격연주(authentic performance)란 ‘원전연주’(原典演奏) 혹은 ‘역사적 연주’라고 불리는 연주해석이다. 작품을 창작 당시의 연주관습으로 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연주관습에는 당시의 악기편성, 연주기법, 음향, 음고, 조율, 템포, 아티큘레이션, 다이나믹, 장식음, 리듬 등 모든 연주관련 요소들이 포함된다.

동일한 악보인데 과거와 현재의 연주해석이 다른 이유는 뭘까? 연주자가 작품을 해석하는 토대, 즉 악보를 표기하는 기보법과 그것을 읽어내는 방식이 과거와 현재가 다르기 때문이다. 현재의 연주는 악보에 표기된 방식으로 연주한다. 하지만 과거에는 굳이 악보에 표기할 필요가 없었다. 작곡가와 연주자 모두 통용되던 연주관습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작곡자는 악보보다 연주관습에 따라 연주하는 당시 연주방식 때문에 굳이 악보에 모든 연주해석 요인을 표기하지 않았다.

반면, 현재의 연주는 세세한 연주해석 요인이 표기되지 않은, 과거의 악보를 표기된 것만으로 연주한다. 따라서 정격연주는 단지 과거방식의 연주가 아니라 악보표기에 생략된 작품의 내용들을 모두 드러내는 해석인 것이다. 정격연주는 특히 기보법보다 연주관습이 중시되었던 17-18세기 작곡가들의 작품연주에서 시도되어진다.

빈프리트 톨은 ‘메시아’의 원전연주를 위해 몇 가지 두드러진 시도를 했다.

메시아 연주에서 그동안 일반적으로 해온 100여명의 대규모 합창단 구성을 탈피하여 화려함과 웅장함, 다이나믹함을 지양한 바로크음악 특유의 음향을 시도했다. 악단도 17세기 바로크시대와 비슷한 소규모 편성, 악기 편성(쳄발로, 포지티브 오르간, 바로크 트럼펫 등), 연주기법, 표현기법 등으로 연주하는 ‘카메라타 안티과 서울’을 기용했다. 헨델의 원전 악보에 따라 바로크 스타일로 연주하려는 의도에 따른 것이다. 독창자를 알토 대신 카운터 테너를 기용한 점도 눈에 띈다.(원전연주에서는 소프라노 대신 보이 소프라노, 알토 대신 카운터 테너를 기용하기도 한다.)
 
빈프리트 톨의 연주를 들을 때마다 느끼는 것이지만, 그는 음악적 구축력이 뛰어나다. ‘메시아’는 한 곡이지만, 47개의 노래가 묶여진 작품이다. 따라서 47개의 노래를 균형감 있게 전체를 구축해가는 것이 무엇보다 지휘자에게 요구되는 능력이다. 톨은 매우 뛰어난 작품 전체의 구축력을 보유한 지휘자다. 뿐만 아니라 47개의 곡을 연속적으로 연주하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앙상블의 밀도감과 긴장감을 유지하는 뛰어남도 보여주었다. 사운드에 있어 웅장함과 다이나믹은 덜하지만, 음악적인 호소력은 내면에 어려 있는 감동을 음향으로 느끼게 해줬다.

일부 아쉬운 점도 있었다. 독창자의 경우 소프라노ㆍ베이스와 카운터 테너ㆍ테너 간에 소리 질과 표현에서 차이가 보였다. 카운터 테너와 테너는 바로크적인 소리를 위해 포르테와 긴음가에서 과도한 음향과 비브라토, 엑센트를 절제하고 단아한 음향 표현을 했으나, 소프라노와 베이스는 이러한 점이 부족하여 독창자가 바뀔 때 음악적 표현의 차이가 나타났다.

이는 합창에서도 나타났는데, 포르테와 긴음가, 음악구조상 자연적 엑센트가 붙는 프레이즈의 음가에서 극적으로 처리하려는 경계까지 가는 경향이 부분적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는 전적으로 완벽한 정격연주를 바라는 필자의 욕심일 뿐이다. 국내 음악계의 구조상 정격연주를 전문적으로 하는 성악과 합창 인프라가 부족하고, 정격연주보다는 현대적 작품 해석의 공연이 많은 상황이다. 정격연주만을 집중한 완벽한 연주를 바라는 것은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이상에 불과하다.

결론적으로 이날 대전시립합창단의 ‘메시아’는 국내 어느 합창단에서도 들을 수 없는 정격연주의 진수를 들려준 연주였다. 결코 우리가 CD로 듣는 외국 저명 합창단의 정격연주에 견주어 뒤지지 않는 훌륭한 연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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