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지역사회 망치는 정치인의 무능과 아집

김학용 주필
5~6년 전 쯤 지방선거 예비후보를 대상으로 ‘캐릭터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 후보들의 공약보다는 심성과 가치관을 알아보는 인터뷰였다. 후보의 정책보다 그의 본바탕이 더 중요하다는 생각이었다. 대전 충남 지역 현역과 예비역 정치인 100여 명은 만난 것 같다.

인터뷰가 끝난 뒤 정치인에 대한 오해를 발견했다. 정치인들은 모두 말을 잘하고 외향적인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됐다. 정치는 말이 수단인 데도 언변이 부족해서 애를 먹는 사람들도 있었고 내성적 성격 때문에 고생하는 사람도 있었다. 재산이 많은 사람도 있었고 가난뱅이도 있었다. 이른바 ‘가방끈’도 사람마다 차이가 컸다.

그러나 예외가 없는 공통점도 발견됐다. 모두들 ‘쉽게 꿈을 포기하지 않는 성격’이란 점은 한결같았다. 이건 보통 사람과 분명 다른 점이다. 보통 사람은 안 되면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내 주변을 봐도 ‘포기를 모르는 타입’보다 그렇지 못한 사람이 더 많다.

각 분야에서 일가를 이뤘거나 목표를 성취하는 사람들 중에도 꿈을 포기하지 않는 ‘끈기의 인물’은 많다. 자수성가한 기업인 가운데도 이런 사람들이 많다. 고시합격자의 경우도 머리가 좋아 시험을 단번에 패스하는 천재가 아니면 모두 끈기와 의지의 소유자다.

정치인의 가장 큰 병통 무능과 아집

이런 집념은 장삼이사들도 배워야 할 바다. 그런데 정치인의 끈기는 문제점도 있다. 끈기는 아집과 이웃사촌이다. 목표가 정당하고 합리적이면 끈기가 되지만 목표가 너무 주관적이거나 현실성이 없으면 사회를 망치는 아집이 된다. 이게 정치인의 가장 큰 병통이다.

세상의 직업 가운데 가장 중요한 사람이 정치인이다. 사람들이 정치인을 자주 욕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정치의 중요성 때문이다. 한 나라가 잘 살고 못 사는 가장 큰 원인도 정치에 있다. 같은 한반도 땅에서도 남과 북이 지금처럼 달라진 가장 큰 원인은 정치다. 지역 사회가 발전하고 못하는 것도 그 지역의 정치 수준에 달렸다.

직업의 귀천은 없다지만 정치인은 무엇보다 중요한 직업이다. 자격증은 필요 없다. 민주국가라면 누구라도 정치인이 될 수 있다. 나이도 재산도 지식도 묻지 않는다. 선거에 나와 이기기만 하면 정치인이 될 수 있다. 공무원도 변호사도 의사도 교수도 기업인도 마지막에 도전하는 직업이 정치다.

이들이 정치인의 길을 가는 동기는 크게 2가지다. 처음부터 정치에 발을 들여놓는 사람들도 그 이유는 같다. 첫째는 사회와 국가에 대한 봉사이고, 둘째는 권력을 얻고자 함이다. 봉사가 이성적 욕구이고 명분이라면, 권력 의지는 본능적 욕구이면서 현실적 이유다.

제대로 할 수만 있다면 정치는 정말 보람있는 직업이다. 권력도 얻고 그것으로 국가와 사회에 크게 이바지할 수도 있다. 정치인이 되면 명예까지 누린다. 한꺼번에 여러가지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직업이다. 용기있는 사람들은 ‘한 번 사는 인생인데 이 멋진 일에 도전해봐야 하지 않느냐?’면서 정치판에 뛰어든다.

“직분 다한 군주 100명 중 1~2명도 안돼”

정치인보다 부지런한 사람들도 없다. 하는 일도 많지만 민심을 얻어야 그 자리를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치인들의 노력과 의지에 비하면 성과는 아주 적은 편이다. 정치인들은 누구보다 의지가 강하고, 어떤 비난도 감수할 각오가 돼 있으며, 또 실제로 열심히 노력하는 데도 좋은 평판을 받는 경우는 드물다. 아이러니다.

동서와 고금을 막론하고 선정(善政)은 극히 드물었고, 악정(惡政)은 셀 수도 없을 정도다. 송대의 학자 호인(胡寅)은 “(요 순 우 탕 등)삼대 이후로 이 직분(임금 노릇)을 잘 거행한 군주는 백에 한 둘도 안 된다”고 하였다. 한나라의 문제와 명제 그리고 당태종을 그래도 나은 군주로 꼽은 걸 보면 어느 정도 근거 있는 수치 같기도 하다. 고금을 통틀어본다면 1~2%는 유능한 정치인의 비율일지도 모른다. 

폭정도 무능도 국민들을 힘들게 한다는 점에선 같은 악정이다. 가장 큰 원인은 독선과 아집이다. 크든 작든 일단 권력을 얻은 사람은 아집이 강하다. 자기가 택한 정책이 잘못됐다는 사실이 드러나도 끝까지 밀고 가려 한다. 제법 괜찮게 보이는 정치인 중에서도 이런 아집들이 많이 목격된다.

정치인의 고집 기업인의 고집 다른 점

이 점에서 정치인의 고집은 기업인과 다르다. 기업인은 자기가 결정한 사업이 잘못되었다는 사실을 알면 바로 중단하거나 해결책을 찾는다. 정치인은 잘못된 결정도 끝까지 밀어붙이려 한다. 기업인에겐 자존심보다는 기업이 더 중요하고, 정치인에겐 주민들보다 자신의 정치적 자존심이 더 중요하다. 정치인들은 그 자존심 때문에 정치인이 된 사람들이다. 

겉으론 대화를 강조하고 경청을 외치지만 누구보다 심각한 불통론자다. 무능해도 고집은 세다. 호인 말을 빗대면 정치인 100명 중 한 두 명을 빼면 거의 이런 유형에 속할 것이다. 과거 군주는 세습권력이고 지금은 선출 권력이라고 해도 ‘아집’엔 차이가 없다. 이들의 독선에 나라가 혼란을 겪고, 당이 분열되며, 지방은 쇠락한다.

반박은 있을 수 있다. 정치인은 추진력이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맞는 말이다. 추진력과 아집은 구분이 어려울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보면 어떨까? 정부든 지방자치단체든 그 수장이 내 회사, 내 집처럼 여긴다면 쓸데없는 고집은 피우지 않는다. 대통령도 시도지사도 국회의원도 지방의원도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그 자세는 같다.

나라도 지역도 제대로 된 정치인 절실한 때

그런 정치인들은 만나기 힘들다. 백에 한 둘, 어쩌면 열에 한 둘도 안 될지 모른다. 그래도 그런 정치인을 찾고 싶다. ‘1~2% 인재’가 아니라면 ‘10~20% 안에 드는 인물’이라도 찾아야 한다. 유권자들도 그 사람이 그 사람이란 생각은 바꿔야 한다. ‘상급’과 ‘하질’은 차이가 있고 그 결과는 우리의 삶을 좌우한다.

올해는 또 다시 선거의 해다. 많은 정치 신인들이 정치판에 뛰어들고 있다. 예비 정치인에게도 기성 정치인에게도 주문하고 싶다. 이왕 하는 정치라면 ‘1~2% 인재 정치’에 도전해보기 바란다. 그런 정치인이라야 사회를 바꾸고 역사를 쓸 수 있다. 너무 현실성 없는 주문인가?

그게 어렵다고 생각하면 나오지 말아야 한다. ‘1~2% 인재’는 어느 시대 어느 지역에도 있다. 그들에게 양보해야 한다. 괜히 자리만 차지해서 나라를 망치고 지역 사회를 멍들게 하는 정치인의 죄는 무엇보다도 크다. 나라를 봐도 지역을 봐도 제대로 된 정치인들이 절실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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