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호 기고] 시인 | 전 대전시립연정국악원장

다수결원칙 안 지키면 민주주의 포기한 것

제20대 국회의원선거를 불과 3개월여 앞두고 대한민국 국회의원선거구 246개가 모두 사라지는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현행 ‘3대1’의 인구편차가 위헌이라며 2015년 12월 31일까지 ‘2대1’이하가 되도록 공직선거법을 개정하라는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깡그리 외면한 입법부의 횡포가 빚은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는 사건이다. 

툭하면 의정단상을 점거하는 볼 상 사나운 ‘동물국회’를 개혁하겠다며 여야합의가 없는 법안은 직권상정하지 않겠다는 취지로 만든 국회선진화법이 오히려 19대국회를 ‘식물국회’로 전락시켰다는 지적이다. 민주주의의 기본원칙은 다수결이다. 바꾸어 말하면 다수결 원리가 배제된 현행 대한민국정치는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라는 말이다.

만장일치는 공산주의에서나 통용되는 의사결정방법이다. 어쩌다가 대한민국국회가 이런 망나니국회가 되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민들은 지금 국회의원을 잘못 뽑은 손가락을 잘라버려야 한다고 울분을 토하고 있다. 자살률 세계 1위라는 국가적 현실은 외면 한 채, 총선 승리에만 눈이 멀어버린 치졸한 패거리정치가 이젠 지겹고 역겹다.

선거구도 없는 선거운동은 희대의 코미디

19대 국회의 직무유기로 국회의원선거구가 모두 없어져버렸다. 그러니까 대한민국은 지금 제20대국회의원을 뽑을 법적근거조차 없는 나라가 된 셈이다. 사태를 이 지경으로 만든 국회는 해산감이다. 일본 같으면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여당과 야당은 사실상의 선거전에 ‘올인’하고 있다. 이쯤 되면 대한민국 정치는 완전 코미디다. 

유명 인사들의 험지출마론은 또 무슨 귀신이 씨 나락 까먹는 소리리란 말인가? 대의민주주의 기본 원칙은 지역대표성이다. 소위, 차기 대권후보라는 사람들이 어쩌자고 이렇게 지역대표성을 부정하는 해괴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그들이 정말 대한민국을 이끌 정치적 식견이 있는 사람들인지 심히 의심스러울 따름이다. 

십분 이해를 한다 해도 오늘 우리 대한민국의 정치는 본말이 전도됐다. 국회선진화법으로 다수결원리를 포기한 대한민국 식물국회가 그렇고, 지역주민과는 전혀 연고가 없는 사람을 공천함으로써 사실상 지역대표성이 완전히 배제된 대한민국의 정치가 그렇다. 이제 대한민국 정치는 더 이상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대의민주주의가 아니다.

노름판 닮아가는 정치판

‘경제 2류, 관료 3류, 정치는 4류’라고 했던 삼성그릅 이건희 회장의 말이 뇌리를 스친다. 와병중인 이건희 회장에게 또 다시 묻는다면, 그는 아마도 오늘의 대한민국 정치는 정치가 아니라 노름판이라고 답을 했을 것이다. 그렇다. 벽촌 촌로의 눈에도 오늘의 한국정치는 분명 치졸하기 그지없는 정상모리배들의 노름판으로 보이니까 말이다.

그랬다. 지금 대한민국엔 어마어마한 도박판이 벌어지고 있다. 매년 판돈이 400조원에 이르고 2년 뒤에는 정권을 거머쥘 찬스까지 얻는 노름이다. 만약 이 도박에서 지는 날이면 쪽박을 찬다. 그래서 그들은 이게임에 목숨을 건다. 이 노름에서 이긴 자는 4년 내내 다음 판에서 이길 궁리만하면 된다. 이 삼류 소설 같은 이야기가
바로 대한민국 정치다. 

인구가 적든 많든 지역 일꾼을 뽑고자 했던 제헌국회 초심으로 돌아가야 한다. 대법원의 권고대로 표의 등가성만 따지면 우리나라 인구의 절반을 가진 수도권공화국의 횡포를 막을 길이 없다. 그리 많은 언론사들도, 정치평론가들도, 나라를 망치게 할, 고장 난 정치시스템을 탓하는 사람들도 없다. 어쩌다가 이리 되었는지 참 기가 막힐 노릇이다.

‘원칙 없는 정치 나라를 망친다’는 간디의 경고

사회의 양극화 때문에 정치가 양극화 되는 것이 아니라 극단적인 정치 때문에 사회가 분열 된다.는 경제학자 ‘폴 크루그먼’의 예언 속 주인공을 자처하는 나라! 그 나라가 바로 오늘 우리 대한민국이라는 지적이 빗발치고 있다. 정작 사회갈등을 봉합해야 할 정치가 오히려 사회갈등을 조장하는 도구로 전락해버린 아이러니 때문이다.

원칙 없는 정치, 노동 없는 부, 양심 없는 쾌락, 인격 없는 교육, 도덕 없는 상업, 인간성 없는 과학, 희생 없는 종교, 인도의 성자 마하트마 간디가 설파했던 나라가 망하는 일곱 가지 징조다. 마치 오늘 우리 한국사회를 표본으로 작성한 연구보고서와도 같다. 그랬다. 그는 90년 전에 이미 그렇게 한 나라의 흥망성쇠를 가늠할 바로미터를 제시했다.

그는 나라를 망치는 첫 번째 이유를 ‘원칙 없는 정치’로 꼽았다. 국민행복창조자로 나서야 할 국회가 오히려 국민행복방해꾼으로 전락한 우리의 정치를 두고 한 말이다. 그랬다. 그들은 서로 정권을 쥐겠다고 헤게모니 싸움만 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은 안중에도 없이 말이다. 여도 야도 똑같다. 이러다간 정말 나라가 망할 것만 같아 오금이 다 저리다.

4대개혁보다 훨씬 더 시급한 정치개혁

그렇다. 비정상의 정상화란 기치를 내걸고 박근혜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4대 구조개혁이 1년 넘도록 여전히 답보상태다. 국회선진화법을 볼모로 잡고 자당의 정치적 영토 확장에만 눈이 먼 야당 때문이다. 지금 국가경제가 심각하다. 지난 10년 동안 자영업자의 80%가 도산했다는 경제지표가 곧 국민들이 피부로 체감하는 고통지수다.

국론분열과 사회양극화를 부채질하는 국회를 더 이상 존치시켜야할 이유가 없다.
국회의 진정한 가치가 ‘국민행복길라잡이’이기 때문이다. 지역주민 중에서 국회의원을 뽑고, 국회의원 면책특권을 없애고, 국회의원 소환 제도도 신설해서, 국회가 오로지 국가와 민족을 위해서만 헌신 봉사할 수 있는 새로운 정치 시스템부터 마련해야 한다.

필자는 엊그제 있었던 박근혜대통령 기자회견에서 ‘쿠엔 반 티오’ 월남대통령의 애절함을 느꼈다. 시시각각 망하는 나라를 지켜보면서 ‘내게 3개월만 국민들을 공산주의에 넣었다 뺄 수 있는 기술이 있다면 그렇게 한번 해보고 싶다.’ 는 그의 애절한 절규를 말이다. 나라걱정에 잠을 이룰 수가 없다는 박근혜대통령 심사도 아마 그와 같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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