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길구 기고] 칼럼니스트 | 전 언론인

대한(大寒)을 지난 대한민국의 한파(寒波)가 무섭다. 지구온난화라는 명제(命題)를 비웃듯 우리 주위에 추위가 엄습한다. 난 잘 안다. 한반도에서 만큼은 앞으로 1백 년 동안 온난화가 없다는 것을. 다만 여름에는 더 덥고 겨울에는 더 추위만 있을 뿐이다. 이는 북극의 만년설과 빙하(氷河)가 녹아 남서풍을 타고 한반도에 내려오기 때문이다. 어쩌면 지금 온난화시대를 대비하는 것이 아니라, 빙하기의 도래를 대비하는 것이 옳다.

작금(昨今)의 시간은 정치의 계절이다. 언제부터인가 신문에 정치소식이 많아졌다. 종편의 나팔수(?)들은 제철을 맞은 듯 연신 구설(口舌)로 세상을 어지럽힌다. 종편은 시청률을 높이기 위해, 나팔수들은 자신의 진가(眞價)를 올리기 위해 온갖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수면(水面)에서는 그저 일상적인 움직임이지만 수면하(水面下)에서는 그렇지 않다. 혹자는 정치적 생명을 연장시키기 위해, 혹자는 정치권 진입을 위해 암중모색(暗中摸索)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급변하는 정치적 상황에서 충청권의 핫 이슈를 넘어 중앙정치까지 큰 영향을 줄 사건 하나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은 바로 29일에 있을 이완구(李完九) 의원의 법원재판 결과이다. 초미의 관심은 지극히 간단하다. 과연 그가 무죄(無罪)를 받을 수 있는가하는 것이다. 만약 무죄가 난다면 결과에 대한 후폭풍이 만만치 않으므로 여기서 간단히 이 사건에 대한 개요를 한번 짚어보자.

사건은 이렇다. 그러니까 지난 2013년 4월 국회의원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이 의원(당시는 후보자)이 부여 선거사무소에서 성완종 전 경남기업회장으로부터 정치자금 3000만원을 받았다는 것이다. 받았는지 안 받았는지는 나도 모르고 귀신도 모르니 언급할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유추(類推)해 추론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정황(情況)이나 주변의 감정(感情)이다.

불행히도 성 회장은 고인이 되셨기 때문에 직접적 증거는 확보하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현재까지 몇 차례 재판을 진행한 과정을 볼 때 아직까지 돈을 받았다는 결정적 증거는 확보하지 못한 것 같다. 따라서 재판부에서는 당연히 판결형량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더군다나 양형의 중대(重大)와 과소(寡少)가 아닌 유무죄(有無罪)를 판가름하는 그야말로 솔로몬의 지혜가 필요하다. 또 상대는 전직 총리이자, 현 정부의 핵심인사 중 한명이 아닌가.

당연히 재판부는 앞서 말한 것처럼 당시 정황(情況)이나 주변의 감정(感情)을 고려해 판결해야 한다. 하지만 정황이나 감정이란 말이 범위도 없고 수준도 없고 이론도 없다. 다만 이 용어보다 상위계층인 법관의 좌우명(座右銘)에 따라 존재할 뿐이다. 다시 말해 법관은 헌법에 보장된 양심에 따라 재판하며 양심에 따라 판결한다는 대원칙에 의해 결과를 좌우한다는 것이다.

난 고인(故人)이 되신 성완종 회장이나 이완구 의원을 누구보다도 잘 안다. 성 회장은 언론사 경제부장 시절 친밀하게 지냈고 이완구 의원하고는 많은 시간을 동거동락(同居同樂)했다. 두 분에 대한 내 견해는 이렇다. 성 회장은 자수성가(自手成家)한 분 이었으며 자신이 창업한 회사를 그야말로 애지중지(愛之重之)하셨다. 회사를 키우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는 뚝심의 소유자였다. 정치에도 욕심이 있는 것을 알고 걱정도 많이 했다. 이에 반해 이완구의원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당찬 모습과는 정 반대다. 무척 소심한 편이다. 돌다리도 두드리는 성격이고 절대 지는 싸움은 하질 않는다. 과거 경력을 봐라. 그는 7전 7승의 승리자이다. 한 번도 지지 않았다. 나한테 늘 하는 말이, 왜 지는 싸움을 해야 하느냐며 아니다 싶으면 스스로 포기하는 사람이다.

다시 사건을 돌려 두 분의 감정(感情)이라는 전제하에 말을 이어보자. 난 이완구 의원이 총리가 된 어느 날 TV에 나와 자원외교 비리수사를 지시하면서 (마치 성 회장의 경남기업을 운운(云云)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게 하는 언행을 보고) 불필요한 오해를 불러오는 않을까 깜짝 놀랐다. 분명히 그것은 이유야 어찌됐던 오해를 살만한 일이며, 또 그것은 반드시 자신에게  부메랑이 된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충청권의 대권주자로 충청인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는 정치인이었는데. 하필이면 왜 충청권 기업을, 그것도 한참 어려워 도와줘도 시원찮은 회사를 죽이려는 발언을 했을까? 나는 여기에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고 본다. 이유에 어떻든 이완구 총리가 그 책임(자원외교)을 어깨에 질 필요가 없었다. 자신하고는 아무런 관계가 없었으니까.

맹자(孟子)는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지극히 성품이 착했는데 차츰 욕심이 생겨 악(惡)으로 번지니 항상 오상(五常‧仁義禮智信)을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상의 대부분이 이성보다는 감정에 의해 좌우한다는 격언이다. 또한 감정에 의해 일을 행하다보면 반드시 문제가 생기고 뒤탈이 생긴다는 말이기도 하다. 성 회장은 이 총리에 대한 서운한 것을 감정으로 대응했다. 물론 이 총리가 먼저 감정적으로 자신을 무시하기도 하고 이용하기도 했다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이총 리는 공교롭게도 그렇게 됐을 뿐 자신은 전혀 성 회장을 어렵게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시 한 번 여기서 우리는 누가 먼저 진짜 감정으로 대했는가에 대해 한번 고심할 필요가 있다.

이제 우리가 주사위를 던질 차례다. 돈 3천만 원을 받았는가, 아니면 안 받았는가하는 문제가 아니라, 누가 더 이성이 아닌 감정으로 대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실세의 국회의원 후보자가 선거자금으로 3천만 원을 받았다는 것이 엄청난 사건은 아니다. 이 전 총리가 성 회장을 진짜 감정으로 대해 죽음으로까지 몰고 간 책임이 있느냐하는 것이 이 사건의 핵심인 것이다. 그리고 그 주사위는 법관이 아닌 대한민국 국민이 판단할 때이다. 이 사건은 법에 따른 원칙과 기준과 법리에 의해 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 사건을 보아온 국민들의 자의적 양심이 더 소중하기 때문이다. 법 이전에 이 사건에 대한 국민들의 견해가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만약 유죄가 아닌 무죄로 판결된다면 세상이 또 한 번 요동칠 것이 분명하다. 검찰은 무리한 기소였다는 비판과, 이완구는 억울하다는 동정을 종편 나팔수들이 입에 거품을 물고 이 사건에 대해 집요하게 물고 늘어질 것이다. 물론 이 의원은 약간의 명예회복을 기대할 수 있으며 정치적 재기와 함께 충청권의 맹주노릇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될 것이다. 반대로 유죄판결이 된다면 자의든 타의든 그이 인생에서 첫 패배자가 되어 조용히 역사적 공간에서 사라질 공산이 크다.

끝으로 첨언한다면 이 사건은 충청인들 간의 사소한 감정에서 비롯된 감정싸움이 커져서 일어난 사건임을 강조하고 싶다. 따라서 전국적인 관심사에 벗어나 충청인들의 바람도 무시할 수는 없다. 과연 충청인들은 이완구의 잘못(성완종의 감정)을 심한 회초리를 들어 이번에 정치적 생명을 끊어야 하는지. 아니면 그의 잘못을 인내해주고 개과천선(改過遷善)할 기회를 주어서 다시 한 번 그에게 기회를 주어야 하는지. 이것역시 어디로 여론이 흐르는지는 아무도 알 수 없다. 그저 지켜 볼 수밖에 없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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