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누리과정 예산편성 논란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여당이 시·도교육청에 어린이집 누리과정 예산 편성 압박 강도를 높이자,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이 28일 ‘교부금 1%P 인상 조건’이라는 카드를 제시했다. 정부가 어떻게 대응할지 관심이 집중된다.

앞서 박 대통령은 25일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편성하는 교육청에만 교육부 예비비를 배분하겠다”고 압박했고, 다음 날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서울 등촌동 보라유치원 방문 현장에서 누리과정을 편성하지 않은 채 공약사업 예산을 편성한 교육청을 공격했다. 이영 교육부 차관도 27일 정부서울청사에서 브리핑을 통해 “누리과정 일부만 편성한 것은 법적 의무를 다하지 않는 임시방편”이라고 비난했다.

이번 조 교육감의 발언은 이 같은 압박에 대한 ‘절충안’인 셈. 조 교육감은 기자회견에서 “지방교육재정교부금 교부율을 현행 20.27%에서 1%P 증액할 경우 올해 국세 187조 968억 원을 기준으로 1조 8700억 원이 늘어난다”고 주장했다. 이는 그동안 시·도교육감협의회가 요구한 ‘5%P’에 못 미치고, 당장 누리과정 예산(2조 원)을 충당할 수도 없는 규모다. 그러나 그는 “나머지 예산은 절감을 통해 부담하겠다”며 “교부율을 1%P 늘린다는 합의문을 작성하면 올해 문제에 대해 한시적 특별 대책을 마련할 수 있다”고 사태 해결 의지를 내비쳤다.

이 제안에 대한 나머지 시·도교육감의 합의와 정부의 대응방향이 아직 불투명한 상태지만, 누리과정 예산 갈등 사태에 있어 상당히 진전된 시도라고 평가하고 싶다. 사실 일부 교육청이 보육대란을 막기 위해 2~3개월 사용분 긴급예산을 편성해 급한 불을 껐지만, 뾰족한 대안 없이 시간이 흐를수록 학부모들의 불안은 커져가는 상황이다.

세종시도 마찬가지. 유치원누리과정 예산 86억 원은 전액 세워졌지만, 어린이집분 172억 원은 예비비에서 42억 원을 긴급수혈, 3개월 어치만 마련했다. 예비비는 달랑 2억 원 남았다. 최교진 세종시교육감은 어려운 재정여건 탓에 추가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못 박았다.

그나마 예비비 3000억 원을 누리과정 예산으로 긴급 편성한 6개 교육청(세종, 대구, 대전, 울산, 충남, 경북)에 우선 배분한다는 정부의 발표를 위안 삼아야 하는 형편이다. 지난해에는 교육부의 예비비 5000여억 원 중 45억 원이 세종시에 배정됐다. 이마저 올해 예비비 규모가 2000억 원 줄어든 만큼, 세종시가 배정받는 액수도 상당히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일련의 상황이 예사롭지 않다. 아마도 2~3개월 뒤 교육부의 예비비도 바닥나 보육대란 걱정이 다시 떠오르면 정부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시·도교육청의 지방채 발행을 허가하는 방식으로 나머지 부족 예산을 지원하려 할 것이다.

그렇게 되면 교육청의 재정건정성은 악화되고, 예산대비 부채비율이 40%를 넘기면 중앙정부는 ‘위기 지자체’로 규정하고 예산편성권을 박탈할 수 있게 된다. 일련의 과정에서 ‘진보교육감 길들이기’라는 의혹이 힘을 얻는 이유다.

이런 상황에서 조 교육감은 ‘교부금 인상 카드’를 던졌다. 수치를 5%에서 대폭 낮추면서 학부모들에게 사태 해결을 위해 양보했다는 인상을 주게 됐다. 또 다소 부족하나마 교부금 안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해결하라는 정부의 요구도 수용할 수 있게 된다.

‘진보교육감 흠집내기’, ‘교육감 직선제 폐지 물밑작업’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해야 할까? 만약 조 교육감의 제안을 거부하고 지난해 패턴을 반복한다면 의혹은 더욱 커질 것이다. 누리과정 예산편성 논란의 본질이 ‘진보교육감 길들이기'라고 스스로 인정하는 모양새로 비춰질 수 있어서다.

조 교육감의 제안이 학부모의 불안과 소모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계기가 될 수 있을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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