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정치권 입성 고민하는 이유를 묻다


정운찬 전 국무총리가 정치권 입성을 두고 고민 중이다. 국민의당의 적극적인 구애 공세에 머뭇거리는 모양새다. 그는 속내가 무엇인지 궁금하다.
국회 의원회관 회전문으로 향하는 그를 본 순간 내 발걸음도 빨라졌다. 출입 검색대를 미끄러지듯 빠져나와 그에게 짤막하게 인사를 건넨 뒤 다짜고짜 ‘본론’부터 꺼냈다. “이번 총선에 출마하실 건가요?” 그가 답했다. “모르죠, 뭐.” 짧은 그의 이 한마디에 나는 알아챘어야 했다. 그는 더 이상 학자나 이론가는 관심 없이 ‘정치’가 하고 싶다는 걸.

그는 이날(23일) 국회에 국민의당 초청으로 ‘특강’을 하러 왔다. ‘특강’은 말 그대로 ‘특별히 하는 강의’다. 전날 언론지상을 도배하다 시피 한 것도 그의 ‘강의’와 관련이 깊다.

정운찬의 "모른다" 답변에 숨은 '정치학'

서울대 총장 출신인 그는 올해 1학기 모교에서 제안한 산업경제 관련 강의를 고사했다. 그 이유에 대해 그는 특강에 앞서 이렇게 말했다.

“정치(권)에 들어가건 안 들어가건 3월, 4월 신문 방송에 제(이름이)가 많이 오르내릴 텐데, 학생들에게 차분하게 강의하기 어려울 것 같아 안하기로 한 것이지 별다른 의미는 없다.”

23일 국민의당 초청으로 국회 의원회관에 특강을 하러 온 정 전 총리를 만났다. 특강장으로 향하는 길에 총선 출마 여부를 묻는 내 질문에 그는 "모른다"고만 했다.
그는 충청도(충남 공주) 출신 학자다. 서울대 명예교수이자,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기도 하다. 학자들의 특징은 매사에 신중함이다. 자신의 가치관이나 철학에 맞는지를 깊이 있게 분석하고, 고민한다. 거기에 덧대 충청도 사람들은 특유의 ‘느림의 미학’이 있다. 다른 동네 사람들이 볼 때 답답할 지경일 때도 있다. 그래서 학자적 신념과 충청도 DNA를 가진 그가 정치권의 격렬한 ‘러브콜’에도 흔들림 없을 줄 알았다, 나는.

그런데, 나는 간과했다. 이미 그가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반(半) 정치인이었다는 사실을. 국무총리 재직 시절 세종시 수정안을 주도해 충청인들로부터 지탄을 받은 사실을, 나는 잠깐 잊고 있었다.

그제야 내 질문에 “모른다”고 했던 말이나, 서울대 강의를 고사한 이유에 대한 해답이 보였다. 그가 정치를 할 생각이 없었다면 “출마를 할 거냐”는 나의 질문에 “모른다”는 모호함 대신, “아니오”라고 분명히 답했으리라.

학자로 남을 거라면 모교 강의 포기 안했어야

모교에서 강의를 했을라치면 방법은 초간단하다. 출마하지 않겠다고 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면 본인 이름이 3월과 4월 언론에 오르내리는 일은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적어도 그가 교수로서, 이론가로서, 모교의 후학을 위해 강단에 꼭 서겠다는 마음이 있었다면 말이다. 정치를 향한 그의 갈망은 이론서에도 등장한다. 그의 특강 자료에는 이런 내용이 있다.

“사회 전반에 대한 총체적인 변혁이 필요하다. 나는 그것이 ‘동반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은 동반성장을 ‘대중소기업의 동반성장’과 같은 ‘경제 정책’으로 인식하고 있는데, 내가 주장하는 동반성장은 총체적인 사회변혁을 위한 정책기조(정치철학)이다.”

서울대 강의는 고사했음에도 안철수 공동대표가 한 달 전 제안한 특강은 마다하지 않았다. 강의 준비가 덜 됐어도, 덜 된 대로 챙겨왔다. 그래도 마음이 쓰여 여러 곳에서 강의했던 기존 자료에 새로운 자료를 더해 가져왔다고도 했다. 안철수에 대한 배려를 넘어 그가 안철수에게 ‘잘 보여야’하는 이유도 엿보였다.

공교롭게 이날은 국민의당 선대위가 출범했다. 국민의당이 이날 아침 기분 좋게 선대위 출범을 끝내고 점심을 맛있게 먹고, 그토록 공을 들이고 있는 그를 ‘국회’까지 불러들였다. 그리고 그는 안철수와 천정배 사이에 앉았다. 엷은 미소를 지으며. 짐작했듯이 그는 정운찬(68) 전 총리다.

'굼뜬' 정운찬, 정치학적 분석은 '간보기'

특강 장소에 들어선 정 전 총리가 국민의당 안철수-천정배 공동대표 사이에 앉았다. 그가 만약 입당과 출마를 결단한다면 가장 필요한 것은 고향인 충청도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부터다. 그리고 백의종군을 통한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그는 이날 “제가 굼떠서 아직 정치 세계에서 동반성장을 하게 될 지, 그냥 사회 활동을 할지 못 정했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이미 국민의당 공동대표 사이에 앉아 있었다. 20대 총선은 이날로 50일 남았고, 여야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였던 선거구획정도 합의됐다. 그러나 국민의당은 충청권에서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그는 출마를 묻는 내 질문에 “모른다”고 했다. 비로소 그 말이 ‘정치적 발언’으로 들렸다. 자기 자신도 모르는 속내를 누군들 알까. 그런데, 그의 최근 일련의 언행을 보면 국민의당의 ‘짝사랑’만은 아닌 듯싶다.

자문했다. 만일 그가 정치를 하겠다고 마음먹고 국민의당에 입당하면 총선에 출마할까? 또 출마 한다면 어느 지역구를 택할까? 자답했다. 정치는 하고 싶은데, 말마따나 선거는 얼마 안 남았고, 지역구 선택도 쉽지 않다. 자기더러 ‘매향노’라고 부르는 충청도 역시 아직 낯설다. 그럼 다음 방법은?

비례대표 출마설, 설(說)로 끝나길..결심했으면 사과부터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 국민의당은 죽자 살자 매달리는데, 쉽게 결심은 못하겠고-쉽게 ‘오케이’ 하기엔 명망가로서의 인지도와 자존심이 있을 테고-공천장 하나로는 성이 안 찰 수 있다. 그가 여전히 속내를 드러내지 않는 이유는 뭘까. 주변에선 그가 국민의당에 입당하면 비례대표로 출마할 거란 얘기도 들린다.

나는 그 ‘설(說)’이 그냥 ‘설(說)’이기를 바란다. 그가 나이 일흔이 다돼 후학 양성마저 뿌리치고 정치판에 들어오기로 마음먹었다면 이유는 단 하나일 테니 말이다. 바로 ‘대망론’이다.

그가 만약 대권에 대한 욕심이 생겼다면, 맨 먼저 할 일은 충청도민에 대한 진심어린 사과다. “그 시절, 그 위치에선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고향민들에게 정말 죄송하다”고. 이런 최소한 예의마저도 없이 안철수-천정배에 기대 치트키(Cheat Key. 여기선 비례대표를 말함)를 쓴다고 한들 충청인들이 받아줄까. 씨도 안 먹히는 소리다.

물론 비례대표도 정치권 입성을 위한 하나의 방법이겠지만, 그를 보는 충청도의 눈은 아직도 냉소적이다. 정치인이 되려면 모든 걸 내려놓아야 한다. 정치인이 되는 순간 그는 학자도, 이론가도 아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고개 숙여야 하고, 조아려야 한다. 본인이 저지른 잘못이 아니어도 다 내 ‘부덕의 소치’로 감내해야 한다.

대망론 꿈꾼다면 백의종군해 리더십 발휘해야

그가 결단을 내린다면, 국민의당은 영입에 성공할진 몰라도, 3월과 4월 이후 정운찬 본인에게는 ‘남는 것 없는’ 신세가 될 수 있다. 그때 그냥 학교에서 강의나 할 걸, 하는 후회는 후회로 남을 뿐이고, 그동안 쌓은 지성(知性)에도 흠만 낼 뿐이다. 3월, 4월 그의 행보에 대해 불편해 하는 충청인들의 마음을 읽는다면, 지금 그의 결단과 선택은 중요하다.

그가 이미 ‘결단’을 내렸다면, 죽든 살든 지역구로 나서야 한다. 이미 충청권은 여러 곳에서 출전 선수가 없어 쩔쩔 매고 있지 않은가. 백의종군하며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 ‘대망론’도 충청도가 외면하면 허상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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