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폐지 노인과 고물상의 눈물

“욕망의 정치 속에서 목소리가 묻혀버린 이들을 위해 힘을 보태야 합니다.”

제88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 황금 트로피를 거머쥔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는 수상소감의 마지막을 이렇게 장식했다.

세종에도 목소리가 묻혀버린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 있다. ‘정부세종청사’다. 많게는 일주일에도 몇 번씩 정부와 사회를 향한 외침들이 목적, 지역, 출신 할 것 없이 울려 퍼지고 있다.

그 중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 하지 말라”며 청사를 찾은 이들이 있었다. 고물상생존권보장시민연대는 지난달 ‘정부의 재활용 정책 전환 및 관련 민생입법 제정’을 촉구하며 환경부, 국토부, 복지부 등 7개 부처를 도는 순례기자회견을 진행한 바 있다.

이들은 “폐지 노인과 고물상들은 자원순환에 조력하는 일을 하고 있지만 정부와 정치권에서 우리를 투명인간 취급하고 있다”고 성토했다. 재활용자원 수집으로 생계를 이어가고 있는 영세 서민들이 정책과 입법 과정에서 소외되고 있다는 주장이다.

고물상 저울은 각 지자체를 통해 정기검사를 받아 왔다. 하지만 2014년 국가기술표준원이 ‘계량에관한법률’을 개정한 후 정기검사는 ‘재검정’ 제도로 바뀌었다. 상거래용 대형저울(계근대) 사용자가 계량업인 공인계량소와 동일한 검사 대상이 된 것은 물론 재검정 과정은 민간기관인 한국기계전기전자시험연구원(KTC)에서 맡게 됐다.

재활용종사자들은 “국가기술표준원의 일방적인 재검정 전환으로 기존 정기검사에서는 3만5000원이던 비용이 60만원 가까이 올랐다”고 토로했다. 기준은 전보다 높아졌고, 이에 미달 될 경우에는 비용을 다시 지불하고 재검사를 통과해야만 생업을 이어갈 수 있다.

더욱이 현재 고철가격은 20년 전 수준인 1㎏당 70원이다. 2008년에 1kg당 600원대였던 때와 비교하면 터무니없이 폭락해 폐지(1kg당 80원)보다도 못한 실정이다.

노인들은 더하다. 온종일 고철을 주워봤자 5000원 벌기도 빠듯하고, 매입해 줄 고물상들도 줄줄이 폐업하는 추세다.

(사)자원재활용연대 이창섭 상임의장은 “회원사 50% 정도가 폐업 혹은 잠정 휴업 상황에 처했는데, 이는 전국적인 추세로 건설경기를 타고 고물상이 늘어난 세종시도 마찬가지”라며 “특히 대부분의 피해는 영세고물상, 최종적으로는 폐지 노인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고 있다. 몇 년 전만 해도 하루 종일 주우면 만 원은 받을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 반밖에 안 된다”고 했다.

‘고작’일 수 있는 5000원이 누군가에게는 간절한 가치임이 실감나는 대목이다.

고물상은 2013년 ‘분뇨 및 쓰레기 시설’에서 ‘자원순환시설’로 명칭이 변경된 바 있다. 그러나 환경부는 여전히 폐기물관리법에 의해 생활공간과 사업장 배출물 모두를 폐기물로 규정, 재활용 대상의 범위를 좁히고 있는 상황이다. 이들에 따르면 국토부 역시 각종 민원, 파파라치 등으로 인한 고물상의 입지 불안에 어떤 대책도 내놓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재활용 폐지를 줍는 노인들은 전국적으로 약 170만 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덕분에 한국의 폐지 회수율은 전 세계 최고 수준인 약 88%를 기록하고 있다.

정부가 내건 경제정책의 핵심은 ‘규제개혁’이다. 경쟁, 혁신, 성장을 저해하는 각종 규제들을 철폐·완화하겠다는 취지다. ‘자원선순환’을 외치는 사회에서 핵심 일꾼들이 규제에 설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감당이 불가능한 규제라면 ‘에라 죽어라’ 하고 놓은 ‘덫’과 무엇이 다른가. 약자에게도 보다 너그러운 규제개혁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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