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관습화된 분당쇼 통합쇼 보복

김학용 주필
국회의원의 최대 목표는 다음 선거에서 당선되는 것이라는 말이 있다. 국회의장이나 대권 도전자만 예외다. 물론 대선후보가 되어서도 의원직을 포기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더불어민주당의 문재인 전 대표는 대통령후보가 되어서도 금배지는 내놓지 않았다.

모든 국회의원 최대 목표는 ‘다음 선거 당선’

국회의원은 선수(選數)가 많든 적든, 부자든 아니든, 왼쪽에 있든 오른쪽에 있든 스스로 포기하지 않는 직업이다. 그 자리에 가 보지 않은 사람은 국회의원이 누리는 특권이 어떤 것인지 잘 알 수는 없지만, 모든 정치인들은 특히 국회의원 맛을 한번 본 사람이면 더 필사적으로 매달린다.

정치인은 모두 혁신을 강조하고 미래에 대한 비전을 말하지만 이는 내 밥그릇(금배지)을 챙긴 이후의 문제다. 금배지 전쟁의 원칙은 간단하다. 우선 내가 차지해야 하고, 여유가 있으면 내편을 챙기면서 상대편 것을 빼앗는 게임이다. 정당 간에도 정파 간에도 예외가 없는 싸움의 법칙이다.

금배지를 누구한테 줄지는 국민들이 결정한다. 무엇이든 너무 노골적으로 요구하면 주는 사람의 기분을 상하게 한다. 그래도 정치인들은 너무 노골적이다. 지금 정치권에선 금배지 쟁탈을 위한 쇼가 진행중이다. ‘분당쇼’ ‘통합쇼’ ‘공천개혁쇼’의 내막을 들여다보면 금배지 전쟁에 다름 아니다.

가장 볼 만한 쇼는 창당한 지 한 달 된 국민의당에서 벌어지고 있다. 현역 의원이 20명 가까이 되고 중진의원도 여럿인, 제법 그럴듯한 정당에서 벌어지는 희극이다. 국민의당은 ‘본가(本家)’인 더민주당 대표의 “통합하자”는 한 마디 말에 통합 찬성파와 반대파로 나뉘어 내분을 빚었다. 지도부가 격론 끝에 통합 거부로 일단 정리는 했지만 서로 다른 속마음이 확인됐다. 국민의당 운명은 알 수 없게 됐다.

새정치 때려치우고 다시 ‘본가’ 돌아가고 싶은 통합파

국민의당 사람들은 기존 양당제의 폐해와 제3당의 필요성를 강조하면서 ‘안철수 깃발’ 아래 모였다. 그러나 새정치의 깃발은 금배지를 위한 도구임이 금방 드러났다. 새정치고 뭐고 때려치우고 본가에 다시 들어가고 싶은 게 통합파의 심정이다. 국민의당 지지율은 떨어지고 본가의 인기는 높아지니 왜 안 그렇겠는가?

통합파 의원들은 솔직한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안철수를 제외한 나머지 통합 반대파도 대부분은 금배지만 보장된다면 열 번이라도 통합할 사람들이다. 안철수에겐 금배지보다 더 중요한 게 있기 때문에 ‘또한번의 철수(撤收)’는 불가능한 선택이다. 통합파든 반대파든 이해가 다를 뿐이다.

창당 신고서의 잉크가 마르기도 전에 다시 당의 존폐를 논의하는 정당이 어느 나라에 또 있을까? 얼마 전 한 정치학자에게 우리나라 같은 곳이 또 있느냐고 물었더니 “우리처럼 심한 곳은 없는 것으로 안다”고 했다. 분당과 통합은 이제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관습화되고 있는 정치쇼다.

이런 쇼가 우리나라에선 먹히는 이유가 있다. 유력 정치인이 당 내부에서 승부를 보기 힘들면 일단 보따리를 싸 들고 나와 새집을 차린다. 피해가 불가피한 본가에서 ‘알았다! 네 자리는 챙겨주마!’ 하고 약속하면 보따리를 거둬 다시 들어간다. 그랬다가도 수틀리면 또다시 짐을 싼다.

금배지를 향한 정당 차원의 ‘분투’도 눈물겹다. 친노 파벌주의로 당 전체가 침체를 벗어나지 못하던 더민주당은 외부인을 ‘임시 사장’으로 영입했다. 친노 CEO는 당권을 놓고 싶지 않았지만 공멸의 위기에선 도리가 없었다. 임시 사장은 ‘경제민주화’ 빼고는 과거 전력도 취향도 당과 크게 다르다. 그래도 금배지만 더 많이 가져올 수만 있다면 대수가 아닐 것이다.

‘객(客)’이 당권의 칼을 과감하게 휘두르면서 오히려 ‘주인들’이 떨고 있는 상황이다. 그 덕에 국민들의 정당 지지도는 꽤 올랐다. 더민주의 지지자들에겐 당의 인기가 올라가는 건 좋지만 임시 사장이 당의 색깔까지 크게 바꾸면 어쩌나 하는 걱정도 있을 것이다. 그래도 당장은 금배지의 갯수가 중요하다는 게 대다수의 생각일지 모른다.

새누리에선 ‘금배지 안주기 작전’ 소문

새누리당에선 ‘금배지 챙기기’보다 ‘안 주기 작전’이 주목 거리다. 본선거와 다름없는 후보공천 경쟁에서 권력에 찍힌 ‘비박들’의 낙천 여부가 큰 관심사다. 공천 살생부가 당대표에게 전달되었다는 주장 때문에 한바탕 소란이 일었고, 비박만 떨어뜨릴 수 없으니까 친박에서도 희생자를 내는 ‘논개 작전’이 기획되고 있다는 소문도 나 있다. 영남의 친박 중진 의원이 컷오프 되자 소문이 현실화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금배지를 다시 받을 수 있는 자격이 충분한 국회의원에게 아예 공천장을 거부하여 국회 입성을 막는 것은 졸렬한 정치 보복이다. 보복을 하다가 역풍을 맞으면 보복자 자신도 피해를 보기 십상이다. 그래도 이를 감수하고 감행하는 게 보통의 권력자들이다. 지켜 볼 일이다.

국회의원 선거는 대통령 선거와 함께 짧게는 4년, 길게는 십년 이상 국가 운영의 방향이 결정될 수 있는 중요한 정치 행사다. 금배지는 국민의 뜻이 제대로 반영돼 임자를 찾아야 한다. 무능한 정당은 심판을 받고, 유능한 정치인이 국회에 들어가야 한다. 금배지가 정치보복의 수단으로 쓰여도 안 된다.

너무 염치없고 문란한 금배지 전쟁 방식

대한민국의 300개 금배지를 놓고 벌이는 경쟁 방식은 너무 문란하고 염치없고 치졸하다. 정치판이 본래 그렇지만 우리는 정당이나 후보자 할 것 없이 국민을 현혹시키고 속이는 기법에만 몰두하고 있다. 툭하면 짐 싸서 나왔다가 ‘떡(공천장)’ 하나 받으면 곧바로 다시 합치는 게 하나의 수법이 되었다. 

본인들은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여당이 너무 많은 의석을 가져갈 수 있다는 이유를 내세울 수 있다. 사실 안철수와 김한길이 탈당하지 않고 문재인이 CEO 자리를 끝까지 고집했다면 더민주는 더 불리한 상황에서 총선을 치러야 할지도 모른다. 그런 현실적인 이유가 어느 정도는 사실이라고 해도 선거 때마다 벌어지는 분당쇼는 정치 불신을 키운다. 상대를 이기는 근본적 방법도 못 된다.

분당-통합은 현 여권보다 야권에서 많다. 한 정치권 인사는 “여당에선 분당파의 성공 가능성이 희박하기 때문에 잘 쪼개지지 않지만 야권에선 분당의 성공 사례도 있어 이런 일이 자주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야권은 변해야 된다. 누군가 분당해 나와야 당이 바뀌고, 색깔도 다른 외부인을 임시 사장으로 모셔 개혁의 칼을 넘겨주고서야 당의 인기가 올라가는 정당이 정상은 아니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