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침묵의 장막 걷고 제역할 해야

‘침묵은 금이다’는 말이 있다. 때론 침묵이 물질보다 귀중할 때가 있다. 나설 때와 나서지 말아야할 때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의미가 담긴 금언이다.

춘삼월 꽃망울은 금방이라도 터질 듯 열정적인데, 충청권 시민사회는 그 정도로 적극적이지 않다. 그들의 일관된 침묵은 민주주의를 열망하는 지역사회까지 침묵의 장막을 치게 만들었다. 한 달 남짓 남은 총선을 앞두고 지역 시민사회단체가 그야말로 ‘금 같은 침묵’을 지키고 있다.

과거 총선이나 지방선거 때 후보자 낙천·낙선운동을 주도했던 시민단체들이 후보자들의 공약 검증과 가열찬 비판, 대안 제시는 어디서고 찾아볼 수 없다. 그들은 왜 나서야 할 때 나서지 않고 있는가.

'금 같은 침묵', 그들은 왜 나서지 않나

예를들어 천안은 충남의 수부도시답게 가장 많은 시민단체들이 포진해 있다. 지난 2001년 창립된 천안시민사회단체협의회(천시협)가 중심에 서 있다. 창립 당시 14개 단체로 시작한 천시협은 15년이 지난 현재 10개로 줄었다. 그래도 충남에서만큼은 시민사회 진영의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 총선만큼은 조용하다. 여야의 공천 경쟁이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치열한데도 시민사회는 이상하리만큼 조용하다.

지난 달 29일 천안지역 2개 시민단체(천안여성회, 평등교육실현을위한천안학부모회)는 기자회견을 통해 ‘측근 비리’의 정치적 책임을 물어 현직 국회의원의 공천을 반대했다.

정체성·존재감 상실에 신뢰마저 잃어가는 시민운동

이들은 천시협 소속의 단체다. 그러나 나머지 8개 단체는 기자회견에 동참하지 않았다. 자연히 파급력은 떨어졌고, 회견의 이면적 배경에 대한 부정적 해석도 나돌았다. 이는 곧 천시협 내에서도 방향성이 갈리고 있다는 반증이다.

하다못해 이들은 범시민협의체 투쟁의 결과물인 국회의원 선거구 분구를 이루어냈음에도 아무런 논평이나 환영 성명 하나 내지 않았다. 이쯤 되면 정체성에 이어 존재감마저 의구심이 들 정도다. 지역사회에서는 정치인만큼이나 쓸 만한 시민운동가가 없다는 얘기가 들린다. 시민사회가 유능한 시민운동가 발굴에 실패했기 때문이란 자조 섞인 분석으로 읽힌다.

물론 시민단체 자체적인 사업 수행과 이에 투입할 인력과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다보니 ‘내 코가 석자’인 현실을 이해 못하는 건 아니다. 다만, 4년 동안 지역의 일꾼을 뽑는 선거에 언론을 비롯한 시민단체가 ‘거름장치’ 역할을 하지 않는다면 이는 직무유기나 다름없다.

'혁명가적 항거', '통합적 저항체제' 필요

이는 비단 천안지역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군(郡) 단위 소규모 시민단체들이 지역적 한계를 느낀다면 총선 시민연대를 하면 된다. 충남이면 충남, 대전이면 대전 시민단체끼리 연대해 공동의 아젠다를 발굴해 그것을 정당과 후보자가 공약에 담도록 해야 한다.

필리버스터(무제한토론) 정국에 스타 의원으로 뜬 더불어민주당 은수미 의원(비례)은 10시간 18분간의 연설을 마치며 이렇게 말했다. “국민은 밥만 먹고 사는 존재가 아닙니다. 어떤 억압으로부터도 자유로워야 합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까닭은 이것이 바로 우리의 잃어버린 ‘상식’이기 때문이다. 정치의 숲에서 길을 잃은 시민단체가 하루속히 출구를 찾기 바란다. 올바른 대의 민주주의 구현을 위한 ‘혁명가적 항거’, ‘통합적 저항체제’가 필요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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