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공지능의 끝은? 뒷맛 개운치 않은 엉뚱한 상상력

알파고가 인간계 최고의 바둑고수 이세돌 9단을 두 번 연거푸 물리쳤다. 제 아무리 연산능력이 뛰어난 컴퓨터라지만, 10의 170승에 해당하는 경우의 수를 일일이 계산해 바둑을 두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직관능력이 있는 인간계 바둑 초고수인 이세돌 9단이 무난하게 승리할 것이란 예측이 우세했다.

그러나 뚜껑 열린 이 ‘세기의 대결’은 바둑계를 완전히 뒤흔들었다. 공학도들은 피조물인 컴퓨터, 즉 기술발전에 환호하고 있지만, 바둑 애호가들은 은근히 기분 나빠하는 표정이 역력하다. 사실 생중계로 대결을 지켜본 수십만 명 이상의 ‘인간들’도 자신의 영역을 기계가 빼앗아 버린 것 아니냐는 묘한 위기감을 느꼈을 것이다.

물론 컴퓨터(기계)가 인간의 영역을 침범한 것은 아주 오래된 일이다. 단적으로 제조업분야의 ‘자동화 설비’라는 것은 궁극적으로는 인간의 일자리를 기계에 내어 준 결과물이기도 하다. 인공지능 로봇은 이미 인간의 음성명령에 반응해서 움직이거나, 심지어 인간의 감정까지 읽어내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서비스분야에까지 진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무인조종 자동차 시스템이 운전면허를 획득하는 법적 지위까지 얻었다.

고차원적 영역에서조차 컴퓨터가 인간의 영역을 대신하고, 심지어 인간을 능가하고 있는 이 현실에 위기감을 느끼는 것은 비단 프로 바둑기사만은 아닐 것이다. 컴퓨터가 의사나 변호사, 기자와 같은 전문 직종의 일자리까지 빼앗아 버릴 것이란 가설은 공공연하게 회자되고 있다.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기자에게도 똑같은 위기감이 존재한다. 이름하여 로봇저널리즘 때문이다. 컴퓨터가 데이터를 수집하고, 그 안에서 의미 있는 결과 값을 추출한 뒤 여기에 의미를 부여해 기사를 작성하는 게 이미 가능해진 세상이다. 이 시스템을 스포츠 중계와 같은 초보적 정보전달에 지금이라도 활용할 수 있다는 게 관련 업계의 전언이다. 실제 국내 한 유력 일간신문이 로봇저널리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인간이 아닌 컴퓨터가 문장과 문장 사이의 ‘행간을 읽는 능력’ 또는 ‘행간을 표현해 내는 능력’을 갖게 될지 미지수다. 기자가 하는 일이 단순한 ‘정보전달’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컴퓨터가 인터넷과 SNS 공간에 떠돌아다니는 방대한 커뮤니티를 분석해, 특정 사안에 대한 여론의 흐름을 읽어내고 이를 기사화할 날이 머지않아 찾아올 것이다. 진보, 보수와 같은 ‘논조’를 입력하면, 컴퓨터가 특정 주장을 뒷받침할 사례를 뽑아내 가장 설득력 있는 언어로 인간의 의식세계를 지배하게 될지도 모른다.

인공지능이 과연 어떤 단계에 이를 것인가에 대한 대중의 상상력을 자극하고 있다는 점에서 알파고의 출현은, 두렵지만 한편으로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프로바둑 기사들은 이구동성 “우리가 ‘정석’이라 말해왔던 것이, 고정관념에 불과했다는 것을 깨닫는다”고 이야기한다. 컴퓨터가 인간의 고정관념을 깨뜨리고 더 큰 창의력을 일깨울 수 있다면, 이보다 더 바람직한 일이 어디 있겠나.

조금 엉뚱할 수 있겠으나, ‘인공지능 정치인’이 출현하면 어떨까 상상해 본다. 이른바 로봇정치인이다. 대중이 모두 자유롭게 의사표현을 할 수 있다면, 컴퓨터가 대중의 뜻을 모두 파악해 최적의 의사결정을 하는 게 불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정책결정을 두고 매번 투표를 할 필요는 없다. 평상시 SNS 등을 통해 표출하는 개인의 사고방식을 분석해 다수가 원하는 정책을 선택할 수도, 애초부터 ‘다수의 복리’를 전제로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혜택이 돌아가는 최적의 법안과 제도를 고안해 낼 수도 있을 것이다.    

물론 로봇정치인의 등장에 박수를 보낼 인간이 있을지는 의문이다. 로봇정치인이 ‘소수자’까지 배려하는 매우 정교하고 민주적인 알고리즘’을 보유한다 해도, 인간이 권력을 로봇에 내어줄리 없다. ‘공리’를 표방하는 정치의 본질이 ‘인간의 권력욕’에 맞닿아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정치’야말로 알파고를 가장 많이 닮은 존재다. 나의 세력을 키우기 위해 끊임없이 최적의 수를 찾아낸다. 내 세력이 상대보다 큰지, 작은지 시시각각 형세판단을 하고 유불리를 계산한다. 유리한 형세면 안정적 수를, 불리한 형세면 공격적 수를 둔다.

‘알파고’는 이세돌 9단과의 두 번째 대결에서 변칙수를 두거나 함정도 팠다. 오로지 이기기 위해 자기 살을 도려내는 사석작전도 사용했다. 상대방에게 큰 것을 줘 안심시키는 듯 했지만, 결국 실리를 취했다. 그래서 인간을 깜짝 놀라게 했다.

그러나 우리에겐 매우 익숙한 면도 없지 않았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평상시에 보여줬던 모습과 너무 닮아있지 않나. 구글이 한국정치의 승리방정식을 알파고에 주입시킨 게 아닐까. 엉뚱한 상상이지만, 그 뒷맛이 개운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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