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언론에 대놓고 말 못하는 민원의 '두려움’

1개월이 조금 넘은 듯하다. 세종시 아파트 하자보수 관련해 제보 전화를 받았다.

J건설이 시공한 아파트 중 한 곳에 사는 입주민이라고 소개한 그 제보자는 업체 측이 하자보수에 너무 무성의해 화가 난다며 20분 가까이 넋두리를 늘어놨다.

요약하자면 그동안 단지별로 진행됐던 하자보수 작업이 통합센터로 전환되면서 오히려 서비스의 질(質)이 대폭 하락했다는 불만이었다. 그는 지난겨울 강추위로 거의 모든 아파트에서 결로 등 보수가 필요한 하자가 발생했는데, 업체 측은 통합AS센터에 보수인력 2~3명만 놓고 아파트단지 몇 곳씩 관리하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당연히 자체해결 역량이 부족하고, 외부 인력과 장비가 출동해야 하는 상황이 많으니 처리 시간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

콜센터도 제대로 돌아가지 않아 접수를 위해 몇 번씩 전화해야 하는 시민들은 분통을 터뜨리기 일쑤다. 어쩌다 연결이 돼도 입주민들의 잘못이라는 업체 측의 주장(?) 때문에 하자 여부를 증명하기가 어렵다. 결국 업체에 대한 주민들의 불신은 커져만 갔다.

내용을 전해 듣고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었다. 직접 하자가 발생한 현장을 찾아 취재를 하겠다고 답했다. 그러자 의외로 머뭇거린다. 마치 본인의 불만을 다 쏟아내고 나니 쌓인 것이 풀렸다는 듯 침착해진 목소리로 말한다.

“다른 집도 하자가 많이 발생했는데…. 알아봐 드릴까요?”

불만이 터질 것 같아도 막상 아파트의 문제를 세상에 드러내려니 집값에 영향을 줄까 두려운가 보다 싶었다. 실은 이 제보전화 이전에도 이와 유사한 내용의 제보를 꽤 받았다. 그 때도 직접 현장을 취재해 보려고 주민들과 접촉하는 과정에서 비슷한 상황이 나타났다.

지난 13일 모 예비후보와 아름동 주민 간 간담회에서도 이 문제에 대한 원성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한 주민은 정치권이 직접 업체 대표를 만나 하자보수에 적극적으로 나서도록 압력을 넣어주길 원했다. 예비후보자는 민감한 시기인 만큼 선거 이후 접촉하겠다고 했다.

J건설이 지은 아파트 단지가 1생활권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3분의 1 정도 된다. 즉 J건설의 하자보수 서비스 수준이 향상되면 시민들의 삶의 만족도 역시 크게 개선될 수 있다는 뜻이다. J건설의 태도가 변하길 기대하는 이유다.

그런데 사실 기자가 말하고 싶은 건 J건설의 문제점보다는 주민들의 안타까움이다. 혹시라도 ‘집값에 영향을 미칠까’라는 식으로 문제가 있어도 대놓고 말하지 못하는데다, 수리를 요구할 권한이 있어도 마음껏 행사하지 못하는 마음이 오죽할까 싶다.

설사 본인의 아파트값 변동에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더라도 예민한 이웃을 둔 경우라면 그들의 눈총이 두려울 것이다. 또 건설사 차원에서 어떻게 대응할지, 혹시 나만 불이익을 받게 되는 건 아닐까 불안해 할 수 있다. 하지만 강조하고 싶은 게 있다. 소비자의 권리는 스스로 찾아야 한다.

세종시는 타 시도에 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서서 자신의 권리를 쟁취한 선례가 많다. 지금도 여전히 그 권리를 행사하려고, 본질을 회복하려는 노력이 진행 중인 사안들도 있다.

아파트 하자보수 문제 역시 얼마든지 좋은 선례가 될 수 있다. 명품도시 건설은 점잖게 있는 다고 이뤄지는 게 아니다. 도시를 이끌어 가는 주체는 시민이다. 당당한 시민이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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