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김소연 | 제18대 대선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국민자치위원장

유권자들께 사죄드리며

전라북도 금산(錦山)에서 태어난 내가 충청남도 논산(論山)으로 이사 간 것은 1961년이다. 초등학교 3학년인 나로서야 그 해에 일어난 5.16군사정변 같은 걸 알 리가 없었다. 다만, “금산 갑부가 이사왔다”는 소문은 내 귀에도 들렸다.
 

그런 갑부 집 살림을 하면서도 어머니는 꼭 보리쌀을 섞어 밥을 지었다. 그게 먹기 싫어 짜증을 부리고서야 어린 나이에도 배운 게 있다. “굶주리는 이웃들이 있는데 우리라고 어찌 흰 쌀밥만 먹느냐?”
 
그리 하는 살림에 바가지라고 어디 가벼이 썼을까? 오래 써서 구멍이 나면 그걸 때워 쓰곤 했다. 금이 가거나 구멍이 커지면 그제야 버리고 새 바가지를 꺼내 쓰는 거다.
 
금산은 그 후 1963년에 행정구역 개편으로 전라북도에서 충청남도로 편입된다. 본적이 전라도에서 충청도로 바뀌는 걸 보며 왜 의아한 생각이 들지 않겠는가?

어른들은 군사정변 주역의 한 사람인 길재호(吉在號,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사법위원장)가 힘을 써서 그리 됐다고 하였다. 어린 소견에도 “부당한 일 아닌가” 싶었다. 그러나 훗날에는 그게 ‘혁명가의 선견지명’이라는 걸 알게 된다.

어른들의 얘기를 들어보니 내가 살던 군북면에서는 진즉부터 도계(道界)를 넘어 충남 대전(大田)에 물건을 내다 팔고 장을 봐왔다는 거다. 대전 생활권이라는 얘긴데, 세월이 흘러 요즘에는 대전과의 통합논의가 일지 않는가!

‘혁명의 주역’ 박정희(朴正熙) 전 대통령의 ‘선견지명’이야 누구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을 게다. 오히려 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유례없을 만큼 뛰어난 정치가였다는 사실 아닐까?

집권당인 민주공화당에서 그에게 반기를 든 정치인은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야당 총수들도 청와대에 가서 회동을 하고 나면 태도가 누그러져서 구설에 오르곤 하지 않았던가!

얼마나 큰 선물을 안겼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면서도 그는 필생의 정적이라 할 김대중(金大中), 김영삼(金泳三)과도 만나 “정치가 막히더라도 결국은 흐르도록 물길을 만들어 낸다.”

그런데 그의 딸 박근혜(朴槿惠) 대통령은 아버지 박 대통령의 정치력을 터럭만큼도 물려받지 못했나 보다. 집권당 새누리당에는 대통령의 임기가 어서 끝나기를 학수고대하는 국회의원이 과반수 아닐까 싶다. 그런 한편, 대통령 취임 이래 야당 총수와 회동을 한 적이 있었던가, 없었던가?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1000만 서명운동’이 전개되자 대통령은 지난 1월 이에 동참한다. 그걸 보면서 참으로 낯을 들기가 어려웠다. “이런, 이런, 저 양반 우리나라 대통령 맞아?”

대통령은 국가원수요 행정수반이다. 그런데 박 대통령은 ‘그런 대통령직’을 포기하고 ‘선거의 여왕’으로 남기를 자처하는 것인가? 게다가 집권당의 공천관리위원장이라는 인사가 하는 언행(言行)을 보니 “영락없는 청와대의 주구(走狗)아닌가!”
 
그래서 사죄를 드린다. “대생모(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는 모임) 회원 여러분, 상임대표로서 모임을 박 후보 선거운동에 운용한데 대해 사죄드립니다.”
“유권자 여러분, 지난 대선 시 새누리당 중앙선대위 국민자치위원장으로 활동한데 대해 사죄드립니다.”
 
바가지에 벌써부터 금이 갔다. 물새는 정도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때워 쓸 수가 없으니” 이제 “깨뜨려야 한다.” 그래야 새 바가지를 써서 나라 살림을 꾸려갈 수 있지 않겠는가?

그렇다. 박 대통령과 그에 충성경쟁을 벌이는 친박, 진박, 신박 바가지들, 이 바가지들을 깨뜨리는 게 이 나라 살 길이다. “파박(破朴)만이 나라 살 길”이라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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