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진의 오량가산책] 배재대 입학사정관 | 전 대전대신고 교장

우리들이 사물을 바라보면서 종종 실제의 모습과는 다르게 느끼는 경우가 있다. 이것은 시각에 의해서 일어나는 착각으로 사물을 잘못 보는 현상이다. 우리가 눈으로 보는 물체는 뇌에서 인식한다. 눈에 맺힌 상을 뇌가 판단하는 과정에서 밝기·색깔·크기·모양·방향 등 객관적인 형태와 눈으로 본 성질 사이에 차이가 나타나는 경우가 있는데 이를 착시현상(錯視現象)이라고 한다.

우리가 어떤 물건을 볼 때에는 그 물건만 보는 것이 아니고, 배경까지 포함해서 보게 된다. 따라서 배경의 모양이나 색깔 등에 의해서 물체가 혼동되어 같은 밝기의 색깔이 다르게 느껴지기도 하고, 크기가 동일한 데도 더 짧거나 길게 보이기도 한다.

친구를 따라서 수영장에 다닌 적이 있었다. 수영복과 수영모 그리고 물안경을 준비해서 이른 아침에 수영장으로 나갔다. 샤워장에서 몸을 씻고 수영장 안으로 들어가니 남녀 모두다 수영복 차림으로 활보하는데 처음 접한 광경에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알 수가 없었고, 몸은 한없이 움츠러들면서 따돌림을 당한 외톨이처럼 한쪽 구석에 웅크리고 있거나 가장자리로 빙빙 돌았다. 그나마 친구를 만나서 그의 꽁무니를 따라 다니다가 그가 안내하는 대로 맨 가장자리인 초급반의 레인에 가서 물속에 몸을 담글 수가 있었다. 시간이 되자 수영강사의 출석 확인이 있은 뒤에 처음 수영을 배우는 동료들과 함께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들은 운동을 시작하기 전에 물속에서 먼저 음악에 맞추어 준비운동을 했다. 그리고 앞사람의 어깨를 잡고 안마를 하면서 레인을 한 바퀴 삥 돌았다. 레인의 길이가 25m라는 데 무척 길어보였다. 이어서 신입회원들은 발을 곧게 뻗어서 무릎을 굽히지 않고 물장구치는 발동작을 배우고, “음- 파, 음- 파” 하면서 물속에서 숨 쉬는 연습을 했다. 알몸에 수영복만 걸친 채 운동을 한다는 것이 쑥스럽기도 했지만, 모두들 수영복 차림이기에 그런대로 적응해 나갈 수 있었다.

이튿날부터는 물안경을 착용하고 킥보드를 잡고서 물속에 들어가 발차기를 했다. 지상에서 연습했던 것을 물속에서 실현해 보았지만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무릎을 구부리지 말고 다리를 쭉 펴서 허벅지로 발차기를 해야 한다고 배웠고, 그렇게 물장구를 치는 것 같은데도 수영강사는 여전히 나를 향해서 무릎이 먼저 구부러진다고 허벅지로 물을 차라고 주문했다. 그렇게 둘째 주가 지난 뒤에 셋째 주에는 물속에 들어가서 킥보드를 잡고 25m의 레인을 헤엄치기 시작했다. 길지도 않는 거리를 예닐곱 번씩 쉬었다가 간신히 맞은 편 반환점에 들어설 수 있었다. 그리고는 가쁜 숨을 몰아쉬면서 헉헉 거렸다. 물속에서 숨쉬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물을 먹어가면서 수영을 배우게 되었다.

밖에서 바라보는 쪽빛 풀장은 물이 무척 깨끗했다. 그런데 물안경을 쓰고 물속에 들어가니 작은 이물질들이 눈에 띄면서 밖에서 바라보던 투명하고 맑은 물이 아니었다. 그리고 물안경을 통해서 손에 잡힐 듯이 보이던 벽면은 아무리 팔을 뻗어도 여전히 닿지가 않았고, 바로 옆에 서 있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의 다리도 물 밖으로 나와 보면 여전히 뚝 떨어진 거리에 있었다. 물속에서도 착시현상으로 인해 물안경을 끼고 바라보면 가까이에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멀리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수영장에서 만난 수강생들의 모습은 모두 다 아름다웠다. 건장한 남자들이 물을 차는 모습은 모두다 현해탄을 건넌 조오련 선수처럼 넓은 가슴에 씩씩하고 늠름해 보였고, 물살을 가르는 여성들은 안델센의 동화 속에 나오는 인어공주와 같았다. 아침마다 수영장 안에서 만나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대로 선남선녀들이었다. 한 달이 가까워지면서 수영강사가 함께 차를 나누자면서 블레이크 타임을 갖기로 했다. 그런데 찻잔을 마주하고 앉은 강습생들의 모습은 수영장 안에서 바라보는 모습과는 전혀 달랐다.  

국회의원 선거가 며칠 남지 않았다. 각 정당의 후보자들마다 자신이 일을 가장 잘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서 하얀 이를 드러내며 환하게 웃고, 어려운 이웃을 돌보는 넓은 마음을 가진 지역개발의 적임자라고 외친다. 길을 가다가 후보자의 운동원들 가운데 아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달려와서는 반갑게 인사를 한다. 그러면서 자기가 지지하는 후보를 꼭 찍어 달라면서 이번에 틀림없이 우리 후보가 당선될 것이란다. 어떤 사람은 여론조사를 거론하면서 우세를 장담하며 손가락으로 승리의 ‘V’ 표시를 하면서 확신에 찬 표정을 잃지 않는다. 이런 일을 보면 우리들의 생활 속에도 수없이 많은 착시현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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