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점수 조작, 대전件과 정부件의 형평성

김학용 주필
우리나라는 똑같은 범죄라도 공직자에겐 너그럽고, 민간인에겐 엄하고 인색한 경우가 적지 않다. 7급 공무원시험에 합격하기 위해 인사혁신처 사무실에 몰래 들어가 자신의 성적을 조작한 응시생 A씨(26)가 구속됐다. 구속의 이유는 공무집행 방해다.

점수 조작 응시생과 ‘합격자 바꿔치기’ 대전 사건 수사의 차이

이보다 더한 일이 대전에서도 있었다. 대전도시철도공사는 신입 직원을 뽑으면서 채용시험 점수를 조작하여 합격자를 바꿔치기했다. 철도공사의 내부 소행이었다. 대전시 감사 결과가 사실이면 사장의 지시에 따라 이뤄진 조직적 범죄였다. 그러나 이 사건으로 구속된 사람은 아무도 없다. 공사 사장이 업무방해죄로 입건되면서 해임된 게 전부다.

공무원 응시생 A씨는 합격자 명단 59명에다 자신 이름을 추가해 60명으로 조작했다. 도시철도공사는 신입 직원 5명을 뽑으면서 2명을 바꿔치기 했다. A씨 사건은 단독 범행이면서 민간 피해자는 없었고, 대전 사건은 조직적 범죄이면서 흙수저 2명이 피해를 봤다. 어느 쪽 죄가 더 무거운가?

폭력도 조직 폭력일 때 죄가 더 무겁다. 여러 명이 가담한 조직적 범죄의 죄가 더 크다. 피해자가 있는 사건과 없는 사건도 죄의 경중이 다르다. 범죄의 동기나 범법자가 어떤 책임을 지고 있는 사람인가 하는 점도 처벌 수준을 결정하는 요소다. 어떻게 보더라도 대전 사건은 A씨 사건보다 심각하고 중대한 범죄다. 그런데도 A씨가 더 중죄인이 되어 있다. A씨는 구속수사를 받고 있고 도시철도 사건에선 사장만 불구속 입건 상태다.

A씨는 아직 공직자가 못된 게 죄다. 그가 시험을 관리하는 공무원으로서 점수 조작에 가담했다면 사표만 내면 됐을지 모른다. 우리나라는 공무원이어야 수사에서도 재판에서도 편의를 제공받을 수 있는 나라다. 같은 범죄여도 공직자면 솜방망이 처벌이 많다는 건 이제 뉴스거리도 아니다.

물론 A씨의 죄를 가볍게 볼 일은 아니다. 국민들이 더 놀란 건 점수 조작보다 정부 보안에 큰 구멍이 나 있었다는 점이다. 이는 보안을 지키지 못한 정부 책임이 크다. 사무실을 허술하게 관리해놓고 도둑에게만 중죄를 물을 수 없다. 사무실 침입으로 구속까지 될 일은 아니다. 

공직 내부의 조직적 범죄보다 엄한 개인 범죄 수사

A씨 사건은 허술한 정부 보안과 그의 짧은 생각에서 비롯된 개인 범죄에 불과하지만 대전도시철도의 합격자 바꿔치기는 공직 내부의 범죄다. 대전시가 7명을 검찰에 고발한 데는 이 사건이 ‘조직적으로 이뤄진 것으로 외부 입김은 없었다’는 의미로도 보이지만 정말 조직적 범죄였는지 여부는 확인이 필요하다.

철도공사가 합격자를 바꿔치기한 이유도 아직 나오지 않았다. 누가 무슨 이유로 그 일을 시키고 가담했는지 밝혀져야 한다. 결과가 무엇이든 도시철도의 점수 조작은 공공기관 내부에서 일어난 ‘공적 범죄’라는 사실이다. 요즘 지방행정이 막가는 수준이라고 해도 합격자 바꿔치기는 상상을 초월하는 범죄다. A씨의 개인 범죄와는 심각성에서 비할 바가 아니다.

공공기관의 보안을 확실하게 해서 외부 침입자를 철저하게 막는다 해도, 그 안에서 비리가 만연한다면 철통같은 보안이 무슨 소용인가? 외교 국방 등의 분야가 아니면 정말 보안이 필요한 기관이 얼마나 되는지도 의문이다. 이른바 돈이 되는 도시계획 정보도 민간인이 정부 보안망을 뚫고 침입해서 유출되는 게 아니라 거의 내부에서 나오는 것들 아닌가?

물론 정부 보안은 중대한 문제다. 또 모든 공직자가 정보의 유출자도 아니다. 그러나 보안이 의미를 가지려면 내부 비리도 철저히 단속해야 한다. 도시철도 사건에 대해 대전시가 취하고 있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시는 이 사건을 외부에 드러나게 한 간부까지 해임시키려 하고 있다.

시는 점수 조작 사건이 불거지자 감사를 벌였지만 사건의 진상보다 비리를 유출시킨 간부의 뒷조사에 열을 올렸다고 한다. 감사의 칼끝을 비리 혐의자가 아니라 비리 유출자에게 겨눴다. 국민권익위에서 그 간부를 해임해선 안 된다는 공문까지 보냈지만 대전시는 강행할 태세다.

공무원엔 후하고 민간인엔 인색한 나라 대한민국

합격자 바꿔치기 사건은 대전시로서도 부끄러운 사건이다. 그렇다고 비리에 눈감지 않은 간부에게 이렇게 노골적으로 보복해도 되는가? 대전시와 산하기관 직원들은 ‘앞으로 비리를 목격해도 눈을 감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보복이 뒤따를 것’이라는 협박이기도 하다. 시는 “우리 시는 비리의 편”이라고 노골적으로 말하고 있는 꼴이다. 대전시가 이렇게까지 반응하는 이유가 도대체 뭔가? 사법기관에서 밝혀 주는 수밖에 없다.

대학 입학시험에서 한 학생이 몰래 대학 사무실에 침입, 자신의 점수를 고쳤으나 합격자 발표 전에 들통나는 바람에 수포로 돌아갔다. 같은 시험에서 이 대학총장이 점수를 조작해서 합격자 2명을 바꿔치기 했다. 그래도 학생은 구속되고 총장은 자리만 물러나는 게 대한민국이다. 지금 우리는 보안의 문제보다 법치 수준의 문제가 훨씬 심각하다. 점수를 조작해서라도 공무원이 돼야 덜 억울한 나라가 대한민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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