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지방 슈퍼갑' 눈치 안 볼 '정당 언론' 실험을

김학용 주필
청와대에 대변인이 있다면 시도(市道)에는 공보관이 있다. 10년, 20년 전에도 있었다. 과거 대전시의 한 공보관이 했던 말이 기억난다. 그는 “일주일 가운데 월요일이 가장 맘이 편하다”고 했다. 월요일만 신문이 나오지 않기 때문이었다. 지금은 어떨까?

지금은 주5일 발행 시스템이지만 인터넷 서비스는 휴일이 없다. 그래도 공보관 마음은 지금이 그때보다 편할 것 같다. 지방언론의 비판 감시 기능은 과거에 비해 크게 무뎌졌다. 특히 지방권력의 대표인 시도지사에 대한 비판은 찾기 힘들다.

공보관들에겐 월요일이 좋았던 시절엔 지방언론에도 대전시와 충남도를 겨냥해 “~~라는 의혹을 사고 있다”는 식의 기사가 꽤 자주 실렸다. 그러나 이제 그런 기사는 거의 자취를 감췄다. 시장이 싫어하고 도지사가 꺼리는 기사는 찾기 어렵다. 대신 시장이 좋아하고 도지사가 원하는 기사가 시리즈로 나온다.

지난주 대전언론문화연구원은 ‘지역언론 혁신방안’ 세미나를 열었다. 김도운 금강일보 부국장은 “지방신문은 경영난이 본격화 된 이후 지자체를 비롯한 취재원에 예속돼가고 있고, 할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고 했다. ‘지방의 슈퍼갑’ 시도지사에 대한 예속은 특히 심하다.

중앙언론은 있고 지방언론은 없는 이유

지방언론에게만 책임을 묻기는 힘들다. 지방언론은 시도지사와 거래하지 않으면 생존이 어려운 시대가 됐다. 언론사의 의무만 강요한다면 문 닫으라는 말과 같다. 언론사는 살아남기 위해선 슈퍼갑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다.

슈퍼갑의 갑질만 원망할 수도 없다. 어떤 시도지사라도 성인군자가 아닌 이상 언론을 휘하에 두려고 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아무리 착한 사람이 시도지사가 된다고 해도 언론에 대한 지배 욕구를 내려놓을 수는 없을 것이다.

대통령이 아무리 욕을 먹는 정치를 해도 중앙에는 비판이 가능한 ‘야당 언론’이 늘 있다. ‘진보 대통령’이 나오면 보수 언론이 각을 세우고, ‘보수 대통령’이 나오면 진보 언론이 비판의 칼을 더 간다.

지방언론에는 이런 진영 논리도 없다. 보수 시장이 나오면 모두 보수 언론이 되고 진보 도지사가 나오면 모두 진보 언론으로 탈바꿈한다. 중앙엔 언론이 있고, 지방엔 언론이 없는 이유다. 욕을 먹긴 해도 중앙정치는 있고 지방자치는 없는 이유다.

지방언론이 없으면 지방은 시도지사의 독무대가 될 뿐이다. 언론은 전임 시장이 이쪽으로 끌어당기면 그리로 달려갔다가 후임 시장이 와서 저쪽으로 돌리면 다시 그리로 쫓아가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그 결과가 어떻게 되는지는 대전도시철도 2호선이 보여주고 있다.

2호선은 제대로 추진했다면 벌써 개통을 앞두고 있을 것이다. 박성효 시장이 순환형으로 추진했으나 염홍철 시장이 들어와 X자 형으로 바꾸면서 혼란을 빚었고, 염 시장이 고가(高架)로 결정하자 권선택 시장이 와서 트램으로 바꿨다. 시장마다 자기 이름표를 단 2호선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기 때문이다.

견제가 없는 슈퍼갑 사회는 썩고 병들게 마련이다. 지방에도 언론이 필요한 절실한 이유다. 그러나 이젠 슈퍼갑 시도지사를 견제할 수 있는 언론의 존재 자체가 어려운 환경이다. 지방권력의 마지막 감시자였던 시민단체조차 시도지사의 품에 안기면서 지방은 언론 암흑기에 빠져 있다.

지방권력 견제 위해 정당에서 언론 역할 해보길

어찌 해야 할까? 시도지사를 견제할 곳이 지방엔 없어 보인다. 기업도 언론도 시민단체도 이젠 지방의 슈퍼갑을 상대할 수 없다. 있다면 정당뿐이다. 새누리당 시도당, 더민주당, 국민의당 시도당, 정의당 시도당에게 대전시장과 충남지사는 갑이 아니다.

정당이 언론에서 할 수 없는 ‘슈퍼갑 감시 기능’을 어느 정도라도 떠맡는 방안을 생각해봤으면 한다. 시도당은 민감하고 중요한 정치적 사안에만 이따금 논평을 낸다. 이젠 논평의 범위를 시도 행정 분야까지 확대하고, 논평을 넘어 ‘뉴스’까지 발굴해서 발표하는 방식으로 언론 역할을 하면 어떨까 한다.

새누리당 대전시당은 도시철도 채용비리 사건이 터졌을 때도 행정적 사안이라 논평을 망설였다고 한다. 그럴 필요가 없다고 본다. 이미 정의당 대전시당이 그런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에도 도안신도시 도안갑천지구 친수구역 개발 사업에 따른 토지 강제수용 중단을 촉구했다.

이젠 정의당이 ‘뉴스’까지 발굴해서 보도하면 좋겠다. 뉴스는 기존 언론에서 취재와 보도를 꺼리는 중요 현안에 대한 것이면 충분하다. 새누리당도 국민의당도 정의당처럼 할 수 있고, 물론 대전 지역 여당 더민주당도 스스로의 시각을 갖고 언론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시도지사가 바뀌면 정당 언론도 여야가 바뀌게 되므로 정당간 유불리는 없다.

정당 논평 늘리고 ‘뉴스’도 생산해봤으면

‘정당의 언론 역할’에 문제점이 없는 건 아니다. 집권을 목표로 삼는 정당에서 내는 논평과 뉴스는 중립성과 공정성을 담보하기 어렵다. 지역사회에 갈등과 분열만 조장하는 결과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갈등보다 더 위험한 것은 견제 장치가 없는 권력에 의해 지역사회가 썩고 병드는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지방은 병들어 가고 있다.

각 시도당은 ‘새누리당 대전충남 신문’ ‘더민주당 대전충남 신문’ ‘국민의당 대전충남 신문’ ‘정의당 대전충남 신문’ 사이트를 만들어 논평과 보도 경쟁을 벌여봤으면 한다. 당장 언론 역할이 어렵다면 시도당 논평이라도 더 자주 내서 적어도 지역사회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알려야 한다.

‘정당 언론’이라고 해도 뉴스 생산에는 최소한의 인력이 필요할 수 있고 재정적 뒷받침도 뒤따라야 하겠지만, 지방언론의 공백사태를 막을 유일한 방법이라면 강구해봐야 한다. 언론사가 없던 과거에도 임금 아래 언관(言官)을 둔 이유가 있다. 어느 사회나 언론은 없어선 안 된다는 뜻이며, ‘공무원 기자’라도 하기 나름이었다. 이에 비하면 ‘정당 언론’은 오히려 현실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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