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멜버른과 시드니에서 벌어지는 일

세계에서 노면전차 즉 트램이 가장 많이 깔려 있는 도시는 호주의 멜버른이다. 트램 노선은 250km나 된다. 25개 노선에 정거장이 1700개가 넘는다. 연간 이용자가 1억 7300만 명이다. 가히 세계 최고의 트램 도시다.

트램 1위 도시 멜버른과 시드니의 지하철 건설 홍보

그런데 이 도시에서 트램 1위 도시라는 명성과 어울리지 않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도심 9km 구간에 지하철을 놓는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 2018년 착공해서 2026년에 완공한다는 계획이다. 멜버른의 라이벌 시드니에서도 지하철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시드니는 멜버른보다 한 발 앞서가고 있다. 이미 터널을 뚫는 공사는 마쳤다. 2019년 개통될 예정이다.

*멜버른 지하철 건설 홍보 영상 : https://youtu.be/gwoI0CAXsOU

*시드니 지하철 건설 홍보 영상 https://youtu.be/bzAVpRPc-RU

트램의 도시 멜버른이 시드니를 뒤쫓아가면서 지하철 건설 경쟁을 벌이는 듯한 모습이다. 두 도시가 지하철을 건설하는 이유는 한 가지다. 지하철이 아니면 늘어나는 도심 교통수요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두 도시의 지하철 홍보영상을 보면 트램의 도시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 점이 좀 의아해진다.

그러나 두 도시의 대중교통 이용자 통계치를 보면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멜버른은 트램 1위의 도시인 데도 불구하고 트램보다는 메트로(16개 노선) 이용자가 많다. 2014년 메트로 이용객은 2억3200만 명이었다. 트램보다 34% 많다. 메트로 승객은 전년보다 2.7% 늘었으나 트램 승객은 5.4% 줄었다.

트램으로 이름난 유럽 도시들을 보면 지금 호주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한때 트램의 전신(前身) 전차(電車)는 선진국 도시들의 대중교통 수단이었다. 이 전차 노선을 되살려 트램으로 부활시킨 곳이 적지 않으나 인구가 50만~100만이 넘는 대도시의 주력 대중교통 수단은 트램이 아니라 여전히 지하철이다.

멜버른이 트램 1위 도시가 된 것은 트램을 늘려서가 아니라 다른 도시들이 트램을 줄였기 때문이다. 원래 1위 기록은 상트페테르부르크가 가지고 있었다. 이 도시는 1980년대까지 340km를 유지했으나 90년대 중반부터 트램 노선을 없애, 2010년에는 205km까지 줄였다. 이 도시는 지금 트램을 줄이고 지하철을 놓고 있다.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파리 등 유럽 트램 도시들도 지하철 확장

트램 모범도시로 추천되곤 하는 마드리드는 도시 남부 외곽에서만 순환하는 8.2km의 트램을 깔아 2007년부터 운행하고 있다. 그러나 메트로 노선의 증가폭은 더 크다. 2006년 227km 236개 역에서, 2015년(3월) 292km 290개 역으로 늘었다. 메트로와 트램의 중간 형태인 ‘메트로 리게로(Meto Ligoro)’도 3개 노선(28km)을 신설했다. 주로 외곽에서 운행되며 지하역이 상당수다.

또 다른 트램 도시 바르셀로나는 도심이 아닌 북부와 남부에서 트램을 운행하고 있다. 1970년대 폐쇄했던 전철 노선을 2004년부터 현대식으로 되살린 것이다. 각각 14km 정도 된다. 이 도시는 2000년 이후 확장하거나 신설한 메트로 노선만 50Km에 가깝다.

파리는 8개의 트램 노선을 운행하고 있다. 대개 과거에 없앴던 전차노선을 1990년대부터 되살린 것으로, 도심의 외곽에서만 운행한다. 앞으로도 트램 2개 노선을 더 늘릴 계획이다. 파리는 트램 도입에 가장 적극적인 도시지만 지하철 확장은 중단하지 않고 있다. 현재 메트로는 14개 노선인데 2~3개 노선 확장을 계획하고 있다. 메트로 이용자는 연간 15억 명이다.

체코의 프라하도 트램의 도시다. 총연장 142km 노선에서 930대의 트램이 운행된다. 대전의 시내버스 대수와 비슷하다. 메트로는 3개 노선 65km에 불과하지만 이용자는 트램보다 더 많다. 이 도시도 메트로 1개 노선 신설을 진행하고 있다. 장기적으론 5개 노선까지 늘린다는 구상이다.

도시철도 전문가들에 따르면 세계의 ‘트램 도시’들 가운데는 과거 전차 운행 시절부터 써온 트램 인프라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대도시에서 트램은 메트로의 보조수단으로 아주 훌륭하지만 교통 수요가 많은 도심에서 트램으론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멜버른의 지하철 건설도 이런 경우다.

인터넷에는 도시철도 정보를 모아놓은 사이트(urbanrail.net)가 있다. 트램 도시 몇 곳을 살펴보면 전문가들의 분석이 거의 맞는 것 같다. 아무리 트램의 도시로 이름난 곳도 대도시라면 메트로 건설을 중단한 경우가 별로 없다. 트램만 늘리고 메트로를 중단한 도시는 눈에 띄지 않는다. 멜버른 파리 마드리드 바르셀로나 프라하도 모두 예외가 아니다.

대도시는 트램만으론 한계... ‘고급 지하철’ 추진

멜버른과 시드니가 벌이고 있는 지하철 경쟁이 우리나라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우선은 대도시의 경우 트램만으로는 교통문제를 풀 수 없다는 점을 거듭 확인시켜 주고 있다. 트램으로 가능한 일이면 트램의 도시에서 터널을 뚫는 지하철 방식을 선택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드니 지하철역은 지하에 만들어지면서도 한 쪽은 외부와 통하게 만들어 바깥을 바라 볼 수 있게 만드는 역도 있다. 시민들이 보다 편리하고 안전하게 이용하면서도 보다 빨리 오갈 수 있는 ‘고급 지하철’로 만들겠다는 의지가 엿보인다. 

시드니 지하철은 지하에서 지상으로 올라오면 도로로 가지 않고 고가(高架)의 레일 위를 달린다. 시드니는 ‘스카이 트레인’이라고 홍보한다. 차량과 사람의 통행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서라고 설명한다. 트램과 구분을 짓는 듯한 느낌도 든다. 이런 생각을 하면서 한 전문가에게 “트램 도시들의 ‘변신’에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이냐?”고 물어봤다.

그는 “의미는 무슨 의미냐? 트램 가지고는 안 되니까 지하철을 놓는 것이지 무슨 다른 의미가 있겠느냐?”고 했다. 그는 “유럽에선 대도시의 대중교통은 메트로(지하철)가 최우선이고 메트로로 경제성이 안 나오면 트램, 트램도 어려우면 시내버스로 가는 게 상식인데 우리나라에서만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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