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웅의 경제포커스] 한국일보 미래기획단장 | 부국장

공기업은 상대적으로 업무 강도는 낮으면서 연봉과 고용 안정성이 높아 직장인들에겐 ‘신의 직장’으로 통한다.

일반인들은 잘 모르지만 이런 신의 직장인 공기업보다 더 좋은 직장이 있다. 바로 ‘주인 없는’ 기업이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정부의 공적 자금이 투입된, 향후 민영화 매각 예정 대상 대기업’이다.

국가 공적자금이 투입돼 망할 우려가 별로 없는데다 비전문가들인 금융기관 인사들이 경영진에 대거 투입돼 간섭도 별도 받지 않는다. 주인이 없다보니 조그만 이익이 나면 성과급 잔치를 벌이기 일쑤다. 설사 적자를 본다 해도 눈먼 공적자금이 추가 투입되면 그만이다.

여기에 정치권이나 정부의 고위 인사 출신들을 낙하산으로 방패막이용 임원진을 꽂아 놓기 일쑤여서 감사 당국의 관리·감독도 별로 받지 않는다. 임원들에게는 그야말로 ‘신도 부러워하는’ 직장인 셈이다.

요즘 한창 구조조정의 논란이 되고 있는 대우조선해양이 한 때 이랬다. 그것도 무려 16년 동안이나.

정·관계, 금융권에 휘둘린 16년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 대우그룹이 해체 되면서 전신인 대우중공업은 기업개선작업(워크아웃)에 들어갔다. 당시 정부는 대우중공업의 중공업 부분은 청산한 것과 달리, 조선 부문은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해 산업은행 자회사에 편입시켰다. 사명은 대우조선해양. 이때부터 어긋난 장기 동거가 시작됐다.

조선 업황이 괜찮았던 동거 초기에는 문제가 크게 드러나지 않았다. 산은은 대우조선을 자회사로 편입한 덕에 연결이익이 증가했고, 2500억 원이 넘는 배당수익도 챙겼다.

보이지 않는 혜택은 ‘자리 만들기’였다. 대우조선이 주인 없는 회사가 되면서 산은은 물론이고 전직 고위 관료, 정치권, 국정원, 예비역 장성 등 소위 권력층에서 달려들었다.

산은이 국정감사로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2000년 이후 대우조선해양에는 고문, 자문역, 상담역 등으로 60명이 넘는 비상근 임원들이 위촉됐다. 이들은 대다수 전직 고위 인사들이다.

산은 입장에서는 굳이 서둘러 대우조선을 팔(민영화) 필요가 없었다. 이들의 매각 지연 명분은 ‘헐값 매각 시비나 국부 유출 논란에 휘말릴 수 있다’는 것이었다. 2008년 추진한 민영화가 미국발 금융위기로 무산되고, 그 이후 조선 경기가 침체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대우조선은 산은은 물론, 국가 경제의 큰 암덩어리로 커지기 시작했다.

경영진, 산은 등에 먼저 책임 물어야

금융권에 따르면 대우조선의 자기자본 대비 부채비율은 7308%. 대출, 보증, 회사채 등 위험노출액(Exposure)은 산은 6조3000억 원, 수출입은행 12조6100억 원 등 무려 22조7000억 원에 달한다. 대부분 1금융권이 연루돼 있어 구조조정 파장은 국책은행과 은행권의 동반 부실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어이없게도 ‘대마불사’라는 말까지 한편에서 나온다.

현 상태에서 대우조선의 정상적인 운영은 불가능하다. 문을 닫든지, 합병하든지, 감자해 재매각을 추진하든지 공적자금의 추가 투입과 기존에 들어간 공적자금의 손실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그전에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있다. 한 때 세계 최고라고 했던 대우조선해양을 이렇게 만들고, 천문학적인 공적자금을 허공으로 날린 관련자들에게 확실한 책임을 묻는 일이다.

주인 없는 회사에서 연임을 하기 위해 헐값 수주, 실적 부풀리기로 부실을 키운 전·현직 경영진, 대주주의 책임을 방관한 산은을 비롯한 금융권, 낙하산 사외이사를 꼽아 넣은 정치권과 관료들에게 부실에 대한 책임을 지워야 한다.

그렇지 않은 상태에서 공적자금 투입이나 청산은 책임 방기다. 이참에 공적자금이 투입된 기업경영은 더욱 무거운 책임감과 도덕성이 따른다는 사회적 인식과 관행을 만들어야 한다. 그게 국민의 혈세를 낭비한 것에 대한 최소한의 도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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