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황인호 대전시의회 부의장

며칠 전 대전시교육청 공무원들과 중국 상해를 방문했을 때다. 상해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스마트폰의 카톡이 울리기에 열어본 필자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 듯 했다. 모 언론에 실린 ‘대전시도, 의회도 시민혈세 흥청망청’이란 제하의 해외연수를 신랄하게 비판하는 기사를 누군가가 보내왔기 때문이다. 하필 해외 출국하는 날 이런 기사가 올라오다니 옳지 못한 일을 하다가 들킨 심정으로 콩닥거리며 글을 단숨에 읽어보았다.

그런데 더욱 마음을 켕기게 하는 것은 기사의 끝자락에 “황인호 부의장 의정활동 18년 동안 해외연수 한번 안 가고도 ‘의정대상’”이란 부제에 그만 아연실색했다. 순간 두개골이 하얘지면서 ‘올 것이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18년째 지방의회에 몸을 담으면서 나름대로 원칙이야 있겠지만, 필자가 그중에서도 철칙으로 여긴 것이 해외연수를 가지 않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18년 전 “해외연수 안 가겠다” 주민과 약속

사실 이번 해외연수를 앞두고 필자는 남모를 고민 속에 빠졌다. 18년간 지켜온 정조를 무너뜨리는가 싶었고, 그러기에는 18년의 세월이 너무도 안타까웠다. 기억을 더듬어 올라가면, 이러한 정조를 필자에게 심어준 여인이 있었다. 18년 전, 지역당인 자민련이 대전에서 창궐할 때 매우 희귀하게 무소속으로 지방의원에 당선된 필자에게 어느 초등학교 5학년 학부모가 건넨 약속이다.

‘우리 아이가 자기 학교 선배님이라고 뽑아달라고 성화를 부려대는 바람에 누군지도 모르고 뽑아주었으니, 제발 아이들 실망시키지 말아주고, 특히 해외연수는 가지 말아 달라’는 것이었다. 나는 “알겠습니다. 황희 정승의 21세손 답게, 그리고 태국의 잠롱시장을 본받아 깨끗이 하겠습니다”라고 다짐했다.

한 해, 두 해가 흐르면서 주민들은 필자가 잠시라도 안 보이면 혹시 해외연수 가지 않았나, 농담 삼아 확인전화를 해오곤 했다. 그리고 작으나마 처음 정치에 입문한 필자에게 해외연수 금기에 대한 정조관념을 심어준 그 학부모가 어디선가 계속 필자를 지켜보는 듯 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나, 20년을 바라보면서, 필자에게 해외연수 안 가는 것은 이제 나 자신과의 약속이 되어버렸다. 이젠 50대 중반이 넘어섰을 그 학부모가 어디 살고 있는지도 모르겠고(사실 가끔은 떠오를 정도로 매우 궁금하다), 주민들도 필자에게 더 이상 확인전화를 해오지 않는다.

우수의원 선발 평가항목에서도 연수 횟수 따져

이제는 필자에게 평상심으로 안착된 해외연수! 도대체 무엇이 문제인가? 우선 연수의 필요성을 생각해본다. 흔히 의원의 자질과 전문성을 도마 위에 올려놓고 북어 패듯이 패대기 쳐대는 현실 속에서, 교육의 또 다른 이름인 연수는 어느 조직에서나 필요하다. 아니나 다를까, 제법 이름 있는 기관들이 우수의원을 선발하는 평가항목에서도 연수 횟수를 따지곤 한다. 공부를 하자는데 연수를 탓 할리 없고, 그래서 예산편성지침에서도 합목적성을 부여한다.

그렇다면 같은 명목의 연수일진대, 국내연수에 비해 왜 해외연수가 도리깨질 당해야 하는가를 생각해본다. 우선 비용 자체가 현격하게 차이가 난다. 일정이야 차이가 있겠지만, 국내연수는 의원 1인당 50만 원가량 들지만, 해외연수는 국내연수비의 3~10배가량 더 든다. 연수내용이 국내에서든 해외에서든 유사하다고 하더라도, 해외연수는 교통비와 숙박비를 포함한 현지물가가 반영되므로, 국내연수보다 많은 비용을 초래할 것은 뻔하다.

만약에 해외연수 비용을 억지로 낮추려다보면, 여행사의 패키지 여행식이 되어 본래의 연수 취지를 벗어나기 일쑤다. 물론 이럴 경우, 요즘은 각 지방의회에서 위촉한 공무국외여행심사위원회가 사전에 제동을 걸기 때문에 패키지여행은 옛날 얘기다.

요즈음 해외연수를 다녀온 의원들은 예전보다 훨씬 힘들어 죽겠다고 한다. 입술에 침 바르고 앓는 소리한다고 하겠지만, 공무국외여행심사도 까다로워졌고 언론과 시민단체 등 감시의 눈초리가 갈수록 날이 서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이를 안쓰럽게 바라보는 유권자들도 있겠지만, 그렇게 힘들어 죽겠는데 뭐 하러 가느냐고 힐난하는 유권자들이 대부분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유권자의 혈세인 공금을 쓰기 때문이다.

해외연수비 공돈이나 눈먼 돈 아니라 공금

오랜 기간 우리 사회를 부조리의 늪에 빠뜨린 것 중에 대표적인 것이 ‘공금=공돈=눈먼 돈’이라는 등식이다. 여기에는 청와대를 포함한 권력의 3부로부터, 지자체와 지방의회 등 공직기관이나 민간기업, 학교, 연구소, 문중 등 어느 한 곳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이 시점에서 해외연수에 관한 한 사회적 합의부터 이뤄야 한다. 해외연수비가 공돈이나 눈먼 돈이 아닌 공금이기 때문이다. 그러려면 우선 명칭부터 ‘공무국외여행’이 아닌 ‘공무국외연수’로 바꾸고, 연수내용에 대한 심사를 강화해야 한다. 연수심사위원회도 ‘짜고 치는 고스톱’ 소리 듣지 않게, 공정한 심사위원들을 광역시도별로 두고 이들이 해당 광역의회와 기초의회를 평가하는데, 연수 전 심사와 연수 후 평가를 엄격히 하도록 한다.

또는, 매년 우수의원들을 공정하게 선발하여 공로연수를 시행하는 것도 권장할만하다. 그래서 공로연수대상자가 칭송받고, 여기에 포함되기 위해 의정활동에 진력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언제까지 해외연수를 도마 위에 올려놓을 것인가? 이도 저도 안 되면, 자비로 가면 그뿐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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