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부산시장과 대전시장의 현안 전략 차이

김학용 주필
작년 이맘 때 박근혜 대통령은 ‘유승민 파동’을 불러온 국회법 개정을 비판하면서 이름도 생소한 ‘아문법’을 거론했다. 그는 “국회가 꼭 필요한 법은 당리당략으로 묶어 놓고 본인들이 추구하고 당략적인 것만 빅딜해서 통과시키는 난센스적인 일이 발생하고 있다”며 ‘아문법’을 사례로 들었다.

광주에서 전남으로 옮겨간 옛 전남도청 뒷편에 7000억 원을 들여 새로 지은 아시아문화전당은 국가기관이다. 이 기관을 지원하기 위한 법이 아시아문화중심도시특별법, 곧 아문법이다. 한국행정연구원은 이 기관에 운영비 등으로 매년 800억 원이 들어간다고 분석하고 있다.

광주의 ‘아문법’과 대구의 밀라노프로젝트

민주당(새정치연합)은 텃밭의 중심 광주를 위해 예산 확보 노력을 기울였고 작년 3월 마침내 이 아문법을 통과시켰다. 민주당은 이 법안을 ‘최우선 추진 법안’으로 선정하고 여당의 협조를 얻어내는데 성공했다. 당시 당대표는 문재인 씨였다. 그러고도 그는 지난 총선 때 호남에서 딱지를 맞고 쫓겨났고 새정치연합도 비토를 당했다.

아시아문화전당은 김대중 정부 시절 추진된 사업이다. 그 덕에 대구도 혜택을 입었다. 섬유 도시 대구에는 밀라노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7000억원 가까이 지원됐다. 영남과 호남의 균형을 맞춘 지역사업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물론 충청권에도 정치적으로 결정된 사업들이 있다. 행정도시 세종시가 대표적이다. 광주 대구와 다른 점은 정치권이 충청표 공략을 위해 스스로 만든 작품이란 것이다. 충청민의 요구보다 정치적 필요에 의해 위에서 만들어 준 ‘떡’이다. 과학비즈니스벨트도 마찬가지다. 행정도시 계획을 취소하는 충청도에 줄 위로용 대체 선물이었다. 대전시 스스로 쟁취한 사업은 아니다. 정부가 약속과 달리 사업 규모를 크게 줄이고 진행이 지지부진해도 대전시는 이렇다 할 대응을 하지 못했다.

‘호남선 단식 투쟁’ 조언 거부한 권선택 시장

호남선 KTX의 개통으로 서대전역이 간이역으로 전락한다는 사실을 피부로 느끼게 된 건 작년 초부터다. 권선택 시장이 선거법 위반으로 기소된 얼마 뒤였다. 권 시장으로선 엎친 데 덮친 상황이었다. 그때 한 지인은 권 시장 측에 “20일 정도라도 단식투쟁을 해보면 좋겠다”고 조언했다고 한다.

호남선 문제는 대전으로선 어떤 문제보다 중대한 사안이면서 권 시장 스스로 내세운 공약이어서 강력하게 투쟁할 명분이 있는 판단이었다. 강경 투쟁이 권 시장의 재판에도 유리하면 유리했지 불리하지는 않을 것으로 보았다.

그러나 권 시장은 조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강경 투쟁 대신 ‘부드러운 호소’ 방식을 택했다. 호남 시도지사들과 손을 잡고 대전을 도와달라고 주문했다. 이들은 “호남선 KTX 계획을 풀어나가고 지역 공동 발전을 모색해보자”며 나란히 포즈를 취했지만 지금까지 대전시가 얻은 건 아무 것도 없다.

서대전역 문제에 대한 정부 태도는 노선 증편에 대해서도, 대전~논산 구간 직선화에 대해서도 부정적이다. ‘호남선’은 동남권 신공항 문제와는 달리 지역 간 타협도 가능한 문제다. 서대전역 경유 노선을 늘리고, 노선을 직선화해서 충청-호남간 교통 단절을 줄이는 방법이 있다. 그런데도 정부가 꿈쩍도 하지 않는 것은 기본적으로 대전의 미약한 정치력 때문이다.

지역 문제에 대한 정부 불신과 단체장의 강경 투쟁

혹자들은 단체장의 강경투쟁 방식을 걱정할 것이다. ‘어느 지역이나 숙원사업이 있는데 지역마다 지방자치단체장이 강경 투쟁에 나선다면 나라꼴이 어떻게 되겠는가? 지역이기주의를 부추기지 않겠는가?’ 그럴 수도 있다. 그러나 지역의 중요 현안이라면 지역 간 경쟁을 통해 결론을 얻는 게 합리적이다. 정부는 갈등이 지나치게 커지지 않도록 관리하면 된다.

정부가 늘 정의롭고 공정한 관리자라면 정부의 결론을 무조건 존중하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과연 그런가? 정부의 결론은 정치적인 경우가 적지 않다. 손 놓고 있는 지역은 당하기만 할 것이다. 남의 것을 억지로 빼앗아 가려는 몰염치는 안 되지만 적어도 내 것을 빼앗아 가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지 않은가?

동남권 신공항 유치를 놓고 부산시과 대구시가 자존심을 건 싸움을 벌이고 있다. 정부는 이 달 말 후보지를 확정할 예정이다. 부산은 가덕도를, 대구는 밀양 입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서병수 부산시장은 2014년 지방선거 때 가덕도 유치에 실패하면 시장직을 내놓겠다고 공언했다. 부산이 탈락하면 자리를 내놔야 할 처지다. 새누리당은 신공항 때문에 텃밭이 갈라질까 전전긍긍하고 있다.

지역 문제는 정치와 뗄 수 없는 게 현실

정부가 공정하게 결정하되 정치는 빠지라는 충고가 많지만 지역 이해가 걸린 문제에 정치가 빠지는 것 사실상 불가능하다. 지역과 정치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새누리당은 영남, 민주당은 호남 눈치를 보는 입장이다. 민주당과 호남 구애경쟁을 벌이고 있는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의 대전 공약은 없었다. 그는 한때 대전(카이스트)에서 근무했다는 점만 강조할 뿐 서대전역 문제에 대해선 ‘서’ 자도 꺼내지 않았다.

이게 이쪽도 아니고 저쪽도 아닌 - 혹은 반은 이쪽이고 반은 저쪽인 - 대전 충청권이 받아들여야 하는 현실이다. 박병석 의원이 국토부장관에게 서대전역 경유 노선 증편을 요구하고 있고, 이은권 의원은 대구 출신 의원들과 함께 충남 도청사 해결에 공을 들이고 있다. 지역 의원들이 각개 전투방식으로 중앙부처에 건의하고 으름장도 놓지만 효과가 얼마나 될지는 미지수다.

대전 충청 시도지사가 더 어려운 점

이렇게도 저렇게도 안 된다면 영호남과는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 지역 대표 중의 대표인 시도지사의 역할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만일 권 시장이 서대전역 앞에서 강도 높은 투쟁을 벌이면서 시민들과 함께 대책을 요구했다면 어떻게 됐을까? 10년 전 나소열 서천구수는 장군산단 착공을 요구하며 단식 투쟁을 벌여 대안사업으로 생태산업단지 착공을 이끌어냈다.

권 시장이 강력한 투쟁에 나섰더라면 정부가 대전을 지금처럼 무시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재판받는 시장을 응원하는 시민들도 분명 많았을 것이다. 영남과 호남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보노라면 대전 충청의 정치인들, 특히 시도지사의 책무는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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