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자신 암투병 담은 시집 을지대학병원에 기증


암 투병 이야기로 환우에 위로와 용기 전하고 싶어

“이 시집을 통해 각종 암으로 투병 중이신 수많은 환우, 그리고 함께 가슴앓이 하는 가족들이 조금이나마 위로와 용기를 받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암 투병중인 노(老) 시인이 환우들과 희망을 나누기위해 아내와 자신의 투병 이야기를 담은 시집을 펴내 병원에 기증했다.

“나는 운명을 먹고 산다.” (시 ‘운명’ 中)

-당신은 /일곱 번째 항암주사를 맞고 있습니다 //당신은 폐암 말기 /수술도 할 수 없다고 하지만 /희망을 버리지 말고 /조금만 더 참고 견디어 봅시다. (시 ‘항암주사1’ 中)

2002년 암선고를 받은 한정민씨의 아내는 처음 찾아간 병원에서 ‘치료불가’라는 말과 함께 서울의 한 병원으로 이송됐다. 한 씨는 당시 부쩍 늘은 아내의 기침소리에 병원에 가보라는 말만 하고, 함께 가지 못한 것을 후회하며 여전히 깊은 슬픔이 담긴 한숨을 내쉬었다.

“자식 걱정이 늘 먼저였던 집사람은 병원을 가자고 해도 한사코 괜찮다고만 했어요. 그러다 아들 녀석이 갑자기 병원신세를 지게 돼 부리나케 병원에 달려갔다가, 이때다 싶어 아내도 검사를 받게 했죠. 그런데 의사가 검사결과를 보더니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며 집에 가지 말고 기다리라더군요.”

폐암 말기에 발견돼 3년 가까이 암과 싸우던 한 씨의 아내는 항암치료와 방사선 치료로도 낫지 않고 병세가 악화되어 중환자실에 머무는 기간이 적지 않았다.

- 병실 밖 /흰 눈을 바라보며 /환하게 웃던 얼굴. //오늘은 중환자실에 옮겨와 /인공호흡기를 입에 물고 있습니다. //나, 그리고 아이들을 바라보며 /말도 못하고 / 두 눈만 깜박입니다. (시 ‘눈이 옵니다’ 中)

매일 하루 두 번, 정해진 시간에 만날 수 있던 아내는 어느 날부터 한 씨가 찾아와도 두 눈을 감은 채 말이 없었다. 한 씨는 머리카락이 우수수 떨어져도 곱기만 하던 아내의 얼굴이 뼈만 남아 앙상해져 있을 때 아내가 떠나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직감했다.

- “여보! 내가 왔어요./ 눈 한 번 떠 보시오.”// 불러도 흔들어도/ 당신은 말도 못합니다./ 두 눈을 감고/ 가쁜 숨만 몰아쉽니다. (시 ‘말도 못하고’ 中)

한 씨에게 오지 않았으면 싶던 ‘내일’이 찾아오고, 끝내 아내의 마지막 가는 길은 외롭지 않게 한 씨와 아들이 함께 지켰다.

- 지금은/ 당신 곁으로 가지 못해도/ 먼 훗날/ 먼저 간 당신이 부르면// 그때/ 웃으면서/ 당신 곁으로 가렵니다. (시 ‘먼 훗날’)

떠난 아내의 흔적을 정리하던 한 씨는 생전에 한 씨가 아내에게 선물했던 ‘빨간 등산복’만큼은 태우지 못했다. 함께 손잡고 산을 오르던 밝은 아내를 추억하기 위해 남긴 등산복은 한 씨가 지금까지 가장 즐겨 입는 옷이다. 때문에 손주들은 한 씨를 ‘빨간 할아버지’라 부른다.

떠나간 아내를 그리워하던 한 씨는 지긋지긋한 ‘암’의 부름에 또 한 번 절망을 겪는다. 이번에는 한 씨가 ‘방광암’ 진단을 받았다.

- 아내가 떠나간/ 눈 시린 하늘을 보며/ 곧 만날지 모른다는 전갈을 했습니다. (시 ‘세포 검사’ 中)

한 씨가 병원에서 방광암 시술을 받은지 올해로 3년, 다행히 재발 소식이 없이 건강한 삶을 누리고 있다. 아직 2년은 더 지켜봐야하는 암이란 녀석이 지겨워 “내 나이가 벌써 일흔이 넘었는데, 차라리 아내 곁으로 훌쩍 떠나고 싶다”고 말하는 한 씨의 입가에 애잔함이 묻어있다.

한 시인은 아내를 떠나보내고 홀로 ‘삶의 지팡이’인 시에 의지하며 산지 벌써 십년이 넘었지만, ‘아내가 차려주던 흰 쌀밥’이 여전히 그립다.

한 시인은 지난 2014년 아내의 투병을 도우며 쓴 시집 ‘먼훗날’을 기증한데 이어 이제는 본인 스스로가 암투병 중 느낀 두려움과 고통, 희망을 담은 시집 ‘병상일기‘를 최근 출간해 을지대학교병원에 100권을 기증했다.

황인택 을지대학교병원장은 “암투병 중 틈틈이 써내려간 이번 시집의 모든 작품들에는 담당의와의 신뢰를 통해 병마와 싸우며 희망을 찾아가는 고된 과정이 세세히 그려져있다”며 “모든 환자분들이 이 시를 읽고 용기와 희망을 찾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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