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뒤늦게 알려진 여혼과 꽃바구니

'사자소학(四字小學: 조상들이 어린이들에게 한자를 가르치기 위해 엮은 기초 한문교과서)'에 이런 말이 있다. 인지덕행(人之德行), 겸양위상(謙讓爲上). 사람의 어질고 너그러운 행동 중에서 ‘겸손’과 ‘사양’이 최고라는 뜻이다.

충남 아산 사람으로 조선 초기 청백리(淸白吏)의 상징이자 평생 겸손을 실천한 맹사성의 일생을 잘 표현하는 말로 유명하다.

며칠 전 국회를 출입하는 충청권 기자들이 새누리당 소속의 지역 국회의원과 식사 자리를 가졌다. 그는 이번 20대 국회에서 처음 배지를 단 초선의원이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에는 30여 년 간 공직자 생활을 했다.

식사 자리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을 때였다. 아주 사소한 질문이 발단이었다. 내가 물었다. “얼마 전 새누리당 의원들이 청와대 오찬 초청을 받아 다녀오셨는데, 의원께선 대통령과 무슨 얘기를 나눴습니까?”

그는 이렇게 답했다. “공무원 생활하다 국회의원 하니까 뭐가 다르냐고 물어보셨고, 정부 3.0얘기를 하시더라고요. 정부 3.0이 그동안 많은 성과를 냈다고 말씀하셨어요. 저희 집안 얘기 한마디 하셨는데..그랬습니다.”

대통령과 나눴다는 집안 얘기가 무얼까 궁금했지만-굳이 말하고 싶지 않은 눈치 길래-더는 묻지 않았다. 식사를 마친 뒤 일행은 흩어졌고, 퇴근 뒤 내려오는 KTX안에서 나는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오찬을 함께 했던 선배였다. 그리고 뜻밖의 소식을 전했다. “지난 주말 그분 여혼이 있었다더라. 그게 아까 얘기한 집안 얘기였다”고 했다.

그 의원은 1남 1녀를 두고 있다. 하나 뿐인 딸을 시집보내는 데 가족·친지를 빼고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바른 정치’를 정치 철학으로 삼는 그의 인격과 품성을 볼 때 고개가 끄덕여지기도 했다.

그는 평소 “조심스럽다”는 말을 입버릇처럼 한다. 오랜 공직생활을 통해 입에 붙은 습관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공직자든 정치인이든 말과 행동은 항상 조심해야 할 것 같아서”라고 했다.

여소야대로 시작한 20대 국회는 협치를 강조하고, 특권 내려놓기를 공언했다. 하지만 개원 한 달이 지난 지금 국회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선은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어 보인다.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마저 실종된 모습이다. 역대 최악이란 19대 국회보다 더 최악일 거란 얘기가 벌써부터 나올 정도다.

“정치가 국민을 걱정하지 않고, 국민이 정치를 걱정한다”는 그의 말이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는 지금의 정치현실에 대한 한탄처럼 들리는 이유다. 본인만큼은 인륜지 대사인 혼사(婚事)를 조용히 치렀다. 정치인을 떠나 가장(家長)으로서, 아버지로서 가족과 딸에 대한 미안함이 얼마나 컸을까.

2년 전 지방선거 출마를 위해 차관 자리를 내놓고 고향으로 내려온 그는, 자신이 걸어온 노정(路程)을 책으로 펴냈다. 책 내용에는 이런 글귀가 있다.

“바쁜 자리에 있다 보면 아무래도 늦게 귀가할 때가 많았는데 문을 열어주는 자식들에게 ‘미안하다. 아버지 나랏일 하다 늦었다’고 말하곤 했다. 늘 바쁘다보니 아이들 교육 등 대소사를 와이프에게 맡기고 같이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인편에 ‘국회 출입 충청권 기자단’ 이름을 매단 작은 꽃바구니 하나를 그에게 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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