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병찬칼럼] 교육과 기득권

무더위에 무념하며 책장을 넘기다 문득 과거 학창시절에 부러워하던 추억이 떠오른다. 땡볕을 견뎌야 오곡백과가 제대로 자라서 가을에 풍성한 결실을 맺는 것이 우리의 자연현상이다. 이 고비가 지나면 삽상한 가을의 기운을 따라 자연에 대해 감사하는 추석을 맞이한다. 사촌형제들을 기다리며 설레는 마음으로 동구 밖을 흘끔대면 서울 갔던 꽃순이가 깔끔한 모습으로 구름처럼 들길을 걸어온다. 꽃순이의 양손에는 크고 작은 선물 꾸러미가 가득하다. 꽃순이네 집에서 피어난 맑은 웃음소리가 길가의 코스모스를 타고 올라 맑은 가을하늘 발그레한 저녁놀에 스며든다. 자식 공부가 소원인 우리 집은 명절다운 시끌벅적한 분위기는 애초에 없었다.

꽃순이가 참으로 부러웠던 그 당시에는 대학생이 참으로 희귀(?)한 시절이었다. 대학도 많지 않았지만 대부분 중고등학교만 졸업하고 취업해야 했다. 의식주 해결이 급선무였던 시절인지라 여자들은 초등학교만 마치고 대도시로 돈벌이를 떠나야 했다. 경제부흥의 토대였던 방직회사의 출퇴근 시간에는 산업 근대화의 기수인 아가씨들이 인근 도로를 가득 메웠다. 고향집을 위해, 남동생을 위해, 나 홀로 가정경제를 책임지기 위해 일을 해야 했다.

큰 회사에서는 그들의 향학을 위해 야간과정을 개설해 중고등 교육과정을 운영했다. 세월의 뒤안길로 사라진 주경야독의 모체, 산업체 고등학교다. 이제는 노후라는 제2의 인생을 준비하는, 그 시절 여성들의 땀과 희생으로 지금은 경제적 선진국 대열에 발맞추고 있으니 그들에게 감사할 따름이다.

최근 대학에서 새로운 학위과정 개설 문제로 학생들이 농성하는 사태가 야기됐다. 고졸 직장인을 위한 학위과정을 개설하려던 학교 측이 학생들의 본관 점거 등 거센 반발에 부딪혀 그 대학은 과정 개설을 최소했다. 교직원 감금 사태까지 일어날 정도로 재학생들이 반대하고 과정개설 철회 발표에도 총장 명의의 공문과 공개 사과, 교육부 공문을 요구했다고 한다.

대학의 질과 격을 떨어뜨린다거나 학벌 세탁에 이용될 수 있다는 게 반대 이유라고 한다. 국내 최고의 여자대학이라는 이미지가 실추될 것이란 이유도 작용한 것 같다. 대학이 돈벌이에 집착한다느니, 학생의견을 반영하지 않았다는 이유도 제기됐다. 어쨌든 경제선진국을 넘어 교육선진국을 지향해야 할 시점에 최고 교육기관인 대학에서 무력적인 사태가 발생했다는 것은 그 이유나 배경을 떠나 유감스런 일이다.

우리나라 고등교육기관은 고구려 소수림왕 때 설립된 태학, 신라의 국학, 고려의 국자감(성균관), 그리고 조선 태조 때의 성균관에 이어 오늘날의 대학으로 발전했다. 90년대 경제성장과 더불어 대학이 늘어나면서 많은 이들에게 고등교육의 기회가 주어졌다. 대학도 대학, 산업대학, 교육대학, 전문대학, 기능대학, 기술대학, 원격대학(방송대학, 통신대학, 방송통신대학 및 사이버대학) 등 교육과정과 수요자의 요구에 부응할 수 있도록 다양한 형태로 설립됐다. 교육과정 역시 형편상 대학에 진학하지 못했던 직장인들을 위한 산업체위탁과정을 비롯해 다양하게 개설됐다. 평생교육과 학점은행제 등 시간, 거리, 생활형편에 제한을 받는 이들을 위한 수요자 중심의 교육과정도 개설됐다. 이제는 교육수준과 대학 진학률에 있어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게 됐다.

교육의 내용과 방식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모하고 사회도 발전하게 된다. 과거에는 인문사회, 경영행정, 법학, 의학, 공학, 농학 등으로 나뉘었던 단과대학들이 이제는 정보통신, 방송영상, 자연환경, 신소재, 산업융합 등으로 세분화됐고, 첨단과학 관련 과정들도 개설되고 있다. 사회가 급속히 발전하는 만큼 대학도 변화하고 발전해야 한다. 사회변화에 부응하는 교육과정과 교육제도를 통해 신속하게 새로운 지식을 제공해야 할 책임이 있다. 평생교육의 개념, 교육과정 시스템도 시대의 발전 속도에 맞게 발전해야 한다.

정부가 미래라이프대학이란 이름으로 새로운 평생교육의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정책을 내놓은 것은 이 같은 맥락에서다. 평생교육을 대학 내 단과대학으로 흡수시키려는 사업이다. 평생교육 수요가 점차 늘어남에 따라 대학부설 평생교육원의 기능과 역할을 보완해 평생교육의 질적 제고를 실현하겠다는 취지다.

힘든 입시경쟁을 이기고 고등교육을 수혜 받는 대학생들의 노고와 위상에 대해서는 더 이상 재고의 여지가 없다. 고등교육 수혜자로서의 기득권도 인정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교육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민주주의의 형평성에 부합하는 것이다. 누구든지 더 나은 미래를 꿈꾸고 개인의 발전을 위해 대학에서 학문을 연구하고 싶어 한다. 미래라이프대학의 교육 수혜자들은 어려운 환경에서 포기해야만 했던 전문교육을 개인 환경과 사회 여건이 개선됨에 따라 새로운 기회를 얻고자 하는 이들이다. 직장과 사회에서 전문 직종에 종사하다 고등교육을 통해 자기 발전을 꾀하려는 이들에게 차별적인 기회가 주어져서는 안 될 것이다.

1930년대 농촌계몽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가 심훈의 소설 <상록수>가 생각난다. 여주인공 채영신은 농촌계몽의 일환으로 야학을 열고 가난한 환경에 처한 어린이들에게 글을 가르친다. 농촌 여성들과 아이들의 문맹퇴치를 위해 채영신이 소리친다. “아무나 오게, 아무나 오게….”  그렇다. 교육의 기회는 모두에게 주어져야 하며 공부하기 원하는 사람은 아무나, 누구나 차별 없이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학생들이 대학의 교육과정 운영에 제동을 걸어서는 안 될 것이다. 사회생활에 있어서는 직장인들이 기득권에 속하고 학업과 연구에 있어서는 학생들이 기득권에 속한다. 어느 기득권이든 상대나 후진들에 대한 교육의 권리를 침해한다거나 배움에 대한 자격에 관여할 수 없다. 다만, 대학 본연의 역할을 다하지 못해 수혜자들에게 적합한 수준의 교육을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 수혜자의 권리로서 정당한 과정을 통해 개선을 요구할 수 있을 것이다.

고등교육, 민주시민 누구에게나 보장되어야 할 선택의 자유에 속한다. 대학의 문은 누구든지 들어갈 수 있는 열린 문이 되어야 한다. 단지, 졸업 관문만큼은 아무나 나갈 수 없는 좁은 문이 되어야 하겠지만. 소통과 대화가 고등교육 수혜자들의 진정한 기득권이 되어야 할 것이다. 고등교육의 기득권층일수록 때로는 이해와 배려를 ‘noblesse oblige’의 하나로 생각할 수는 없을까? 필요한 체면치레는 때로는 모두를 위한 참으로 좋은 체면치레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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