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3>통증(痛症)과 최초의 마취제들

옛날의 우리 조상들도 심한 상처를 입었거나 수술 등의 치료를 받을 때 끔찍한 통증을 덜어줄 수 있는 무엇인가를 갈구했을 것이다.

인류 최초의 진통제는 아마도 술이었을 것이며, 점차 인도의 대마초, 독말풀에서 추출한 만드라고라, 중국의 아편인 양귀비나 하시시, 남아메리카의 코카나무 잎(코카인)을 사용한 것으로 보인다.

술은 마취제로서 충분히 효과적이어서 1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 해군에서는 절단 수술시 럼이나 위스키를 먹였고, 러시아 군인들에게서는 얼음이 국소 통증을 완화시킬 수 있음을 배웠다. 얼음효과는 요즘에도 운동 중 접질린 관절에 클로레틸 스프레이로 단시간에 타박 관절을 잠시 얼려서 통증과 부종을 완화시키는데 이용되고 있다.

아편은 수천 년 전부터 중국에서 사용되어 왔다. 백인들은 아편을 수면유도와 통증완화의 효과적인 측면으로 활용한 반면 중국과 아시아 지역에서는 아편의 환각과 도취효과를 중요시하였다.

기원전 700년경 호메로스가 저술한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에서도 ‘오디세이아’의 여 주인공 헬레네가 먹었던 약이 아편이었고, 당시 그리스와 키프로스에는 이미 양귀비의 제배와 양귀비용 담뱃대가 종교적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약리학자인 페다니오스는 독말풀 뿌리를 달인 만드라고라 마취약을 제조하였고, 서기 200년경 로마의 아폴레이우스는 절단환자들에게 포도주와 만드라고라 즙을 먹인 후 성공적으로 절단을 하였다고 한다. 그 외에도 남미의 페루, 볼리비아 아마존 유역의 잉카인과 인디언들은 코카나무 잎을 씹은 코카인으로 도취와 쾌감을 얻었으며, 환자의 상처에도 그 즙을 발라 통증을 경감시켰다.

중국에서 통증완화의 치료는 아편 이외에 지압, 침술, 뜸(약초 소작법)이 전부였다. 침술은 12개의 경락과 365개의 경혈을 찾아 여러 개의 침을 꽂는 것인데, 현대의 각종 장기 이상으로 비롯되는 통증의 위치와 해부학적으로도 많이 일치한다. 뜸은 쑥과 같은 가연성의 식물로 만든 작은 원뿔모양의 조각을 통증이 있는 살 위에 놓고 불을 붙이면 물집이 생기면서 원래의 통증을 없앨 뿐만 아니라 뜨거운 기운이 막힌 해당부위의 기혈을 활성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상의 약제나 침술 등은 모두 국소마취의 기능뿐이었다. 이후 한 세기 이상 대수술에 필요한 전신마취에도 약효가 적은 알코올과 아편만 사용되었다. 그러던 중 미국 콘웰의 험프리 데이브(1778-1829)가 의사 보조원으로 화학 실험 중 우연히 아산화질소를 흡입한 후, 그것이 “맥박을 늦추고 적당히 몸을 음직이면서도 졸리고 편안한 느낌을 갖게 했다”는 경험을 얻었고, 조수 마이클 파라데이와 아산화질소와 에텔의 흡입 효과를 비교하면서 현대 전신마취의 길을 열었다. 그러나 이 당시 아산화질소는 마취제라기보다는 흡입 시 동통을 없애고 약간의 쾌감을 동반하는 쾌락상품으로만 이용되다가 1844년 12월 10일 미국 치과의사 호라스 웰스가 아산화질소를 흡입한 후 자신의 충치를 고통 없이 뽑았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 치과의사 크로퍼드 롱(1815-1878)은 환자에게 에텔을 흡입시켜 목에 생긴 혹을 제거하였고, 윌리엄 모턴(1819-1868)이 1846년 9월16일 보스턴 매사추세츠병원에서 에텔 흡입마취로 환자의 경부 종양을 제거하였다. 이후 매년 이날을 ‘에텔의 날’로 기념하고 있다.

그러나 에텔은 폭발의 위험성이 있어 조심스럽게 사용되던 중, 스코틀랜드 산부인과의사 제임스 심프슨(1811-1879)이 실험 중 실수로 쏟은 클로로포름 가스를 마신 후 평화롭게 깊은 잠에 빠졌던 경험을 계기로 클로로포름의 마취효과가 발견됐다. 심프슨은 클로로포름으로 환자들은 물론 1853년 빅토리아 여왕의 왕자 출산, 딸 비키 공주의 무통 분만 등을 성공시킨 후 마취의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영국 기사작위를 받았다.

마취 중 전신근육을 이완시키는 문제도 남미의 인디언들이 화살촉에 바르는 독약 큐라레의 신경자극이 근육으로 전달되지 못하게 하는 근육이완 작용이 있음을 확인하면서 해소됐다. 연이어 독일의 알프레드 아인혼이 프로케인(노보카인)이라는 보다 효과적인 국소마취제를 개발하였다. 그 후 하인리히 브라운(1962)이 국소 마취제에 아드레날린을 추가하면 그것이 혈관을 수축하여 지혈 효과와 수술부위의 마취를 더 오래 지속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하였다.

통증 완화에 대하여 아무것도 모르던 시절, 사소한 실수, 단순한 발견과 관찰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개발하여 발전시켰던 옛 사람들의 놀라운 기지(機智)가 오늘날 우리의 통증을 잊게 하는 커다란 발명으로 이어져 의학 발전에 기여한 것이 경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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