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창호의 허튼소리] 전 충남도 부여군 부군수

여우가 죽을 때가 되면 제가 살던 굴이 있는 언덕으로 머리를 돌린다 한다. 고향이 그리워서다. 사람에게도 그리운 곳이 고향이고, 버릴 수 없는 것이 고향이다.

충남의 최고봉 서대산이 있고, 분지라서 여름엔 무척 덥고 겨울에는 몹시 추운 곳, 금산이 필자의 고향이다. 이름처럼 산 좋고 물 맑으며 공기 깨끗한 청정지역이다.

1500년 전 백제시대부터 인류의 영약이라 불리는 인삼이 재배되고, 지금은 많은 종류의 약초까지 재배돼 ‘인삼약초의 고장’이라 불린다. 여기다 잎 뒷면에 보라색이 선명한 영양가 많은 들깻잎이 집단적으로 생산되는 곳이다. 이는 금산이 청정지역이라서 가능한 일이다.

그런데 청정지역 금산의 자연훼손이 심한 것 같아 걱정된다. 가끔 고향을 찾을 때마다 느끼는 아쉬움이다.

도로변이나 면소재지나 강변에서 보이는 가시구역 곳곳의 산림들이 붉은 속살을 드러낸 채 파헤쳐져 있거나, 파헤치고 있다. 그 나마 어느 곳은 전원주택이라도 들어서있지만, 벌건 속살채로 있는 모습은 보기가 흉하다. 개발도 좋지만 가시권역의 산을 파헤쳐 얻는 실익이 얼마나 되는지 모르겠다.

고향을 찾았던 다른 사람들도 “금산이 산을 너무 파먹어 큰일이다”고 걱정들 한다. 기왕지사는 어쩔 수 없다 하더라도 더 이상 훼손이 없었으면 좋겠다. 자연은 한 번 훼손되면 원상회복이 어렵지 않은가.

또 하나는 공기와 토양 오염에 대한 우려다. 추부면과 경계인 군북면 조정리(민재)에 작은 공장이 몇 있는데, 몇 달 전 이 곳에서 불산이 누출되는 사고가 있었다. 마을주민들이 며칠씩 대피하는 소동까지 일었다. 문제는 누출사고가 이 번 한 번이 아니라는 점이다. 어떻게 해서 청정지역에 유해한 화학물질 취급 공장이 들어섰는지 모르겠다. 유독성 화학물질을 취급하는 공장은 농촌이 아닌 화학물질 취급이 가능한 산업공단으로 이전해야 마땅하다.

금산군의 제원면에는 한국타이어 공장이 오래 전부터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이 공장 때문에 지역주민들이 큰 불편을 겪는 모양이다. 분진 때문에 공장 인근의 마을에서는 빨래마저 널지 못한다 한다.

더구나 공장 작은 산 넘어는 명암리마을과 제원중학교가, 조금 더 멀리는 초등학교와 면소재지가 있는데, 공기의 질은 어떤 지, 토양의 오염은 없는지-표적지를 여러 곳 정하고-정기적으로 측정해봐야 하지 않을까? 이는 주민들 건강보호 차원에서도 지자체가 앞장설 일 아닌가 생각된다. 측정 자료를 축적함은 물론, 측정 결과를 공표해 지역주민들을 안심시켜야 한다. 만약, 오염도가 해로운 수준이라면 더 이상의 오염이 없도록 대책을 마련하고 시행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것만이 아니다. 한국타이어는 여기에다, 매일 100여 톤에 달하는 폐타이어에서 열분해로 추출한 부산물(카본과 가스 등)을 재활용하고, 나머지는 스팀보일러 연료로 활용하겠다는 것이다. 지역주민에게는 설상가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100여 톤이면 10톤 트럭으로 10대 분이고, 4톤 트럭으로 25대 분이다. 적은 량이 아니다.

일전에 금산을 갔다가 한국타이어 공장 앞 도로를 지나다보니 ‘폐타이어 보일러 결사반대’,‘한국타이어 경비 절감에 금산군민 다 죽는다’ 등의 현수막이 도로변에 즐비했다. 주민조직인 금산군공해방지비상대책위와 지역주민들이 게시해 놓은 것이었다.   나름 청정지역 금산의 미래가 걱정되면서 폐타이어 소각시의 해로움이 떠올랐다.

시멘트 제조과정에 폐타이어가 쓰인다. 시멘트 소성로(시멘트 제조 용광로)의 일정 온도 유지를 위해 유연탄 보다 높은 열량을 지닌 폐타이어를 연료로 쓰고, 폐타이어가 타고 남은 재를 석회석 가루와 섞어 시멘트를 만든다는 것이다. 문제는 폐타이어가 고무만 있는 게 아니라 유해 중금속을 함유하고 있다는 점이다. 폐타이어를 태우면 바닥재와, 비산재로 나뉘는데, 구리·납·아연·카드뮴 같은 중금속이 바닥재보다 비산재에 더 많다는 것이다.

폐타이어 소각재의 유해 중금속 함유량을 보면(단위 mg/kg), 구리는 바닥재 92.1, 비산재 155.3, 아연은 바닥재 15.821, 비산재 115.025, 납은 바닥재 34.7, 비산재 504.1, 카드뮴은 바닥재 0.8, 비산재 17.0과 같이 오히려 재로 남는 바닥재보다 대기 중에 흩어지는 비산재에 더 많이 들어 있다는 것이다.

폐타이어를 연료로 쓰는 시멘트 공장이 있는 충북 D군의 어느 마을은 시멘트 공장이 없는 지역의 토양과 비교해서 납의 수치가 무려 2600배 넘게 검출되고, 마을에 쌓인 분진에서도 납이 562ppm이나 검출됐다 한다.

청정지역 금산에서 이 같은 사태-폐타이어 소각 량에 따라 오염도 차이가 있겠지만-가 벌어질 경우 문제가 심각하지 않을 수 없다. 폐타이어의 1일 연료 투입량이 100여 톤이면 안전할까? 우리속담에 ‘가랑비에 옷 젓는다’는 말이 있다. 매일 배출되는 비산재는 공장 근·원거리에 내려앉거나 비와 눈에 섞여 토양에 축적될 것이다.

만약 금산이 청정지역이라는 지위를 잃게 되면 금산인삼도, 약초도, 깻잎도, 벼농사도 타격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지역주민들이 조직적으로 반대하는 이유도 이 때문일 것이다. 청정지역 상품이라는 신뢰성은 판매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또 토양이 오염되면 토양 생산물을 먹는 사람도 오염되기 마련이다. 후회하지 않으려면 미리 예방하는 것이 최선이다.

필자는 고향 금산의 청정지역 환경이 잘 보전되고, 인삼약초의 명성이 오래도록 유지됐으면 좋겠다. 지자체와, 공장과, 지역주민들이 중지를 모아 현명한 결론을 내렸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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