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내정설 논란으로 퇴색해버린 공모제


천안시가 12일자로 실시한 인사이동에 뒷말이 많다. 원래 공무원 조직이라는 것이 승진에 민감하다 보니 인사를 두고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법이지만 이번엔 다소 성격이 다르다. 인사팀장, 예산팀장을 대상으로 공모한 ‘희망직위제’를 말하는 것이다.

민선6기 구본영 시장은 인사잡음과 청렴도 제고를 위해 예산팀장 및 인사팀장을 희망직위제로 선발하기로 했다.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 실시하는 것으로, 과거 줄 세우기식 인사, 보은 인사 등의 불합리한 관행을 타파하려는 목적이 바탕에 깔려있다. 

특히 두 자리가 주요 승진자리로 평가받는 요직인 만큼, 팀장급 공무원들의 사기진작과 능력중심의 공직사회 분위기를 정착시키겠다는 의지도 담겨있다. 결과는 인사팀장에 세명, 예산팀장에 한 명이 신청했고, 서면 평가와 PT를 거쳐 최종 두 명을 선정했다. 

그런데 공모를 앞두고 ‘이미 누구누구로 정해져 있더라’, ‘공모에 참여해도 들러리만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아직 공모신청을 하지 않은 인물도 유력후보로 거론됐다. 물론 인사담당부서는 당시 ‘근거 없는 풍문’이라고 일축했다. 

그러나 공교롭게도 소문의 당사자들이 그대로 발탁됐고, ‘짜고 치는 고스톱’, ‘짬짜미 인사’, ‘답정(답은 정해져있다) 인사’ 등 희망직위제를 비꼬는 말들이 공공연한 비밀처럼 직원들 사이에서 오르내리고 있다. ‘공모제 무용론’이 불거지고 있는 이유다. 

여기서는 발탁된 당사자들에 대한 평가를 논외로 하고 ‘공모제 무용론’이 갖는 의미만 짚어보겠다. 축하의 말을 건네진 못할망정 자칫 그들의 노력까지 폄훼하는 우를 범할 수 있을 것 같아서다. 

각설하고, 요직을 대상으로 ‘공모제’를 실시할 경우, 직원들은 열심히 준비하면 능력을 인정받고 실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게 된다. 자기계발의 동기가 부여되는 것이다. 반면, ‘공모제’가 공정성을 잃게 되면 오히려 직원들의 사기를 저하시키고 인사행정에 불신만 초래하는 역효과가 발생한다.

차라리 그냥 인사권자인 시장이 자신이 아끼는 인재를 쓰고 싶은 자리에 임명한다면 다소 불만이 있을지언정 ‘그럴 수 있다’고 넘길 수 있다. 허나 공정한 경기인 것처럼 판을 벌여서 들어갔더니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걸 깨닫게 되면, 그 순간 밀려오는 허탈감과 배신감은 경쟁에서 밀렸다는 패배감보다 훨씬 큰 고통을 안겨준다. 그것이 인지상정 아닌가. 

지금의 천안시 인사가 그런 형국이다. 하필이면 지난 7월 감사원으로부터 인사평점 조작 건이 적발된 직후에 발생한 사태다. 다만 “행정적인 절차를 밟지 않고 관행적으로 이뤄진 수정행위일 뿐, 의도성은 없다”는 천안시의 소청이 받아들여져 감사원이 재조사를 펼치고 있다 한다 하니 결과를 지켜봐야 할 대목이다.

어째 됐든 천안시는 인사행정에 불신을 초래하는 ‘원투펀치’를 연달아 맞고 있다. 그것도 12년 장기집권을 끝나고 공명정대한 평가를 바라는 공무원들의 기대감에 찬물을 끼얹으면서 말이다. 직원들이 구본영 시장에게 기대하는 것이 ‘예전의 그것’은 아닐 것이다.

“인사권은 고유 권한이니까 내정자가 있을 수도 있다고 봐요. 그럼 보안이라도 철저히 해서 소문이 나게 하지 말던지, 이건 희망고문입니다. 작년에도 비슷한 상황이 있었지만 첫 시행이라 그렇겠거니 했지, 올해도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누가 이걸 공정한 선발이라고 보겠어요?” 

담배 한 모금을 씁쓸하게 내뱉는 천안시 공무원 A씨의 하소연이다. 이번 추석 술상엔 천안시 인사이야기가 안주거리로 씹히진 않을까 마음이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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