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호 대전시의회 의원]

인간이 동물과 다름은 관혼상제를 하기 때문이다. 관혼상제는 인간이 태어나면서 죽을 때까지 반드시 거치는 중요한 생애주기다. 맨 먼저 겪게 되는 ‘관(冠)’은 미성년자가 성년이 되는 예를 말하며, 두 번째 겪는 ‘혼(婚)’은 배우자를 만나 새로운 살림을 차리는 예를 말하고, 세 번째 치르는 ‘상(喪)’은 삶을 마감하는 예를 말하며, 마지막의 ‘제(祭)’는 후손이 선조의 삶과 넋을 기리는 예를 말한다.

오늘날 지구상에 사는 많은 민족들도 예외는 아니다. 중세 때부터 시작해온 이스라엘의 성년식은 우리와 같은 징병국가로 징집연령은 18세이지만, 사춘기에 해당하는 12세의 청소년기에 통곡의 벽 앞에서 가족친지들이 모인 가운데 ‘민족의 역사적 책임’이라는 두려움과 떨림을 각인시켜주는 성년식을 성대하게 거행한다.

대입 시험공부에 밀려 중단된 고교생 성년례

1980년대 이후 모험스포츠로 등장한 번지점프는 뉴질랜드 부근의 원주민들에게서 유래되었는데, 남태평양 펜타코스트의 바누아투 원주민들은 10살이 넘으면 30m 이상의 높이에서 나무줄기로 발목을 묶고 뛰어내리는 담력 키우기로 성년식을 한다. 일본은 1월 8일을 성인의 날로 정하고 국가공휴일로 하여, 18세가 된 청소년들이 전통의상인 기모노를 입고 종일 신사나 고궁 등을 쏘다니며 친지와 시민들의 축하를 받는다. 노르웨이에서는 18살 난 청소년들에게 밤새 맘껏 뛰놀게 하다가, 다음날 아침 시청 광장에서 엄숙한 성년식을 치르는데, 이러한 삶의 매듭을 통해 그 지역을 지킬 시민의식을 키운다.

그러나 동방예의지국을 자처하는 우리나라에는 혼례, 장(상)례, 제례는 있지만, 관(계)례는 없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년의 날은 있지만, 관례의식인 성년례는 건너먹고 있다. 고대시대부터 전해져 내려온 유구한 성년례가 일제강점기와 대입 시험공부에 밀려 중단된 것이다. 뒤늦게나마 1985년 제정된 성년의 날에 따라, 매년 5월 셋째 월요일 성년식을 치르는 지방자치단체들이 늘고 있다.

고등학교와 대학, 심지어 교도소에서도 성년식을 행한다니 반길만한 일이다. 그러나 여전히 문제는 법제에 따라 형식적으로 행해질뿐, 민이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민습이 아니다. 형식적으로 진행되는 성년식장에는 부모나 친지가 없다. 일생에 단 한 번의 관례인 성년식에 부모친지가 없다니 말이 안 된다. 여러 번 치르는 졸업식은 물론, 혼례나 장례, 제례를 생각해볼 때 심히 잘못되었다고 본다. 대전의 62개 고등학교 중에서 8개 정도의 학교가 그나마 성년식을 치르고는 있지만 거의 매한가지다.

대전시의회 전국 최초로 ‘대전교육청 성년식 시행 조례’ 제정

그래서 필자의 발의로 2014년 10월에 대전시의회에서 전국 최초로 ‘대전광역시교육청 성년식 시행 조례’를 만들었다. 그리고 이듬해 정신무장을 위해 대입수능시험이 끝난 뒤, 12월 9일 대전컨벤션센터에서 한복을 입은 대전외고와 우송고 졸업반 학생 600명과 가족들을 초청해 전국 최대 규모의 ‘대전광역시교육청 제1회 성년식’을 훌륭하게 거행하였다.

전국의 성년식 우수 사례를 분석해가며 1년간을 꼬박 준비하면서도, 가장 염려스러웠던 것이 학부모들의 관심과 참여였기 때문에, 학교 측에 수시로 연찬을 하면서도 신신당부를 아끼지 않았었다. 성년식이 끝난 뒤, 다행히 언론과 여론, 그리고 몇몇 지자체와 교육청의 뜨거운 호응에 힘입어 앞으로 진일보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다. 필자는 그 덕분에 창의적인 조례 부문 ‘대한민국위민의정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얻었다.

금년 들어 전체 학교에 모델이 될만한 ‘제2회 성년식’을 더욱 발전적으로 키우고자 노력을 할 즈음, 이상한 소문이 들렸다. 교육청에서 성년식을 하지 않겠다는 소문과 함께, 심지어 의회가 만든 성년식 시행 조례가 상위법에 저촉되어 폐기되어야 한다는 말까지 들린다. 담당 부서장을 만나 들으니 실로 가관이다.

성년식 예산 배정해도 핑계 대고 안 쓰겠다는 대전교육청

아니나 다를까, 연초에 업무보고를 할 때부터 업무분장이 잘못인양 께름칙하게 답변하여 곤혹을 치른바 있었는데, 마침내 9개월이나 늑장을 부리더니만 성년식 예산을 전액 반납하겠다는 것이다. 그 근거로 의회 예결위에서 정한 예산과목이 집행하기에 어렵다는 점과 더 나아가서는 성년식에 대한 법적 검토를 해본즉 위법사항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예산을 통과시켜 주었는데도 핑계를 대고 못쓰겠다고 하고, 의회에서 입법연구관들을 통해 충분히 검토하여 만든데다가 전국에서 우수조례로 선정되기까지 한 조례를 뒷조사해서 위법이라니 도대체 누구의 법적 자문을 받았느냐니까, 해당 부서장은 말할 수 없다고 한다. 공정하고 믿을만한 법률자문이라면 왜 쉬쉬하며 비밀에 부칠까? 아니, 이는 입법기관인 의회에 대한 집행부의 심각한 도전이 아니라 할 수 없다.

필자는 몇몇 법률가로부터 이미 본 조례에 하등 문제가 없음을 확인했다. 아울러 교육부나 법제처에 공정한 검토회신을 요청하고 있다. 이 회신이 올 때까지 의회는 이번 회기에 예산반납을 허용해서는 안 된다. 가뜩이나 바람 잘 날 없는 대전시교육청에, 의회에서나마 전국에서 손꼽힐 신선한 미풍양속 교육 분위기를 진작시켜 주려 했더니 그것도 차버리려 하다니 한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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