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박범계 국회의원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국회의원.
여기, 아이를 위한 나라가 있다. 단 한 명의 아이들의 장애도 소홀히 하지 않는 나라들. 반면, 여기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 수많은 아이들의 미래를 갉아먹는 장애를 그저 손 놓고 방치하는 나라. 대한민국은 어디에 있는가?

지난 4월 서울 마포에 한 병원이 개원했다. 2011년 9월 병원 설립을 주도한 푸르메재단이 마포구와 병원건립 양해각서를 체결한 이후 약 5년이 지난 시점이었다. 기업과 정부, 개인기부를 통해 430억 원에 달하는 병원건립 비용을 마련했다. 서울시는 연간 10억 원에 달하는 운영비를 보조한다.

우리는 이 병원을 ‘기적의 어린이재활병원’이라고 부른다. 왜 이 병원을 ‘기적’이라고 부를까. 병원설립을 폄훼할 의도는 전혀 없음을 주지한다. 그저 다른 나라, 더 정확하게는 이웃나라 일본을 비롯한 서방 선진국에서는 너무나도 당연한 일상이 왜 대한민국에서는 기적이라고 불려야하는지 궁금하다. 일본은 이미 기적을 200번 이상 달성한 국가는 아닐 것이다.

일본의 어린이재활시설 202, 대한민국 어린이재활병원 1

202:1. 대한민국은 아이를 위한 나라가 아님을 증명하는 숫자다. 전자는 일본의 어린이재활병원 혹은 그에 준하는 시설 숫자이다. 후자는 예상했다시피 한국 어린이재활병원 숫자이다. 대한민국은 단 91개의 병상, 전문의 4명을 갖춘 지하 3층, 지상 7층의 단 하나의 어린이재활병원을 가진 나라이다. 반면 일본은 202개, 독일은 140개, 미국은 40개의 어린이재활병원을 갖고 있다. 뭔가 잘못됐어도 단단히 잘못됐다.

한국의 등록장애인 252만 명, 이 가운데 장애어린이는 9만명으로 집계된다. 장애출현율을 상향하면 대한민국에 크고 작은 장애를 가진 어린이는 160만 명까지 추산되고 있다. 더 나아가 지난 2005~2011년 선천성 장애 진료인원은 2.3배나 급증했다. 산모 연령별 선천성 장애 출산율 또한 같은 기간 2.7배나 급증했다. 이제 어린이들의 선천성 혹은 후천성 장애는 너무나도 가깝고, 친근한 생애의 첫 번째 문제로 올라섰다.

‘장애’의 개념 자체가 바뀌었다는 것이다. 잘 걷지 못하고, 잘 말하지 못하는 것만이 장애가 아닌 크고 작은 신체‧정신적 불편함이 장애가 됐다. EU와 OECD 주요 국가는 이에 대응해 GDP 대비 장애인복지재정 수준을 평균 2.19%까지 끌어올렸다. 중증이 아니더라도 조기에 치료해야할 아동 등 장애범위를 확장한 것이다. 반면 대한민국은 0.49% 수준이다. 산술적으로 대한민국의 장애와 재활을 요구하는 범위는 EU와 OECD 국가들이 4분의 1 수준으로 제한하고 있다.

시간이 흐르고, 인간의 생애주기가 바뀌었다. 장애에 대한 개념조차 바뀌고 있는데, 대한민국의 장애인식과 그에 상응하는 국가정책은 제자리에 머물고 있다. 우리가 서울 단 한 곳, 어린이재활병원을 기적이라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대한민국 아동재활 및 치료개념으로 이 병원은 너무나도 큰 기적이고, 감동이다.

19세 미만 소아청소년 장애아 30만 명이 재활난민으로 길거리를 전전하고 있다. 아동치료는 성인치료에 비해 적기‧집중치료가 중요성이 남다르다. 이 골든타임에 30만 명, 더 나아가 그 이상의 장애아동들이 시간을 허비하고 있다. 기적이어도, 기적이 아니어도 좋다. 늦었지만 이제 시작해야한다. 방법은 이미 나와 있다. 실행하면 된다.

전국 거점도시에 지방어린이재활병원 설립을 서둘러야한다. 건우법, ‘지방어린이재활병원 설립 및 운영에 관한 법률’은 그 기반을 제공할 것이다. 대전‧충청권에만 최소 입원 100병상, 소아낮병동 200명 규모의 병원이 필요하다.

대전‧충청권에만 최소 입원 100병상, 소아낮병동 200명 규모 병원 필요

법안이 통과되면 지방자치단체는 어린이재활병원 설립을 주도적으로 입안‧시행할 수 있다. 푸르메재단과 마포구의 부지제공 등 양해각서 체결이 좋은 롤모델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지자체가 병원 설립을 꺼리는 이유는 추후 발생하는 운영비 부담이다. 운영비는 국가가 주로 부담하는 것이 합당하다. 이웃나라 일본의 어린이재활병원에 해당하는 요육센터 치료비는 의료보험 70%, 지자체 20%, 자부담 10%로 구성돼 있다.

장기적으로는 어린이재활치료와 관련한 의료수가를 높여야한다. 그래야만 국가는 물론 민간차원의 어린이재활치료 활성화 또한 기대할 수 있다. 이 길이 어린이재활치료 체계화는 물론 저출산 국가 대한민국 미래를 담보하는 첩경임을 분명히 한다.

코엔 형제의 영화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는 거슬러 올라가면 W.B.예이츠의 시, <비잔티움에로의 항해>의 구절을 그대로 인용했다. 시인은 시에서 노년의 불만과 비애감, 무기력을 얘기한다. 우리 아이들이 ‘아이를 위한 나라는 없다’고 절망하고 있다. 제때 치료받을 수 없는 절망과 불편함, 무기력을 호소하고 있다. 언제까지 기적이 아닌 것을 기적이라고 부를 순 없다. 대한민국은 아이를 위한 나라로 존재하길 기대한다. Korea For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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