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용 칼럼] 붕괴된 교실에 보내는 행복 메시지

대전시 선화동(도청앞) 계룡문고 이동선 대표는 아이들에게 ‘왜요 아저씨’로 불린다. 그가 가는 곳마다 신나는 동화읽기가 진행된다.

“아빠는 꼬마 릴리 때문에 펄쩍펄쩍 뛸 때가 많답니다. 릴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 때문이죠. 릴리는 하루 종일 ‘왜요?’라고 물어 댔습니다.” (왜요 아저씨)

-“우리 공주님 옷 입어야지!”(아빠-왜요 아저씨)
-“왜요?”(릴리-‘왜요’가 나올 때마다 아이들의 우렁한 합창)
-“릴리, 거기(잔디밭)에는 앉지 마라.”
-“왜요?”
-“네 바지가 젖을까봐 그러지!”
-“왜요?”
-“어제 밤에 비가 왔거든!”
-“왜요?”
-“저 커다란 먹구름에 물방울이 가득 들어있단다.”
-“왜요?”
-“그런 그냥 그런 거야! 아빠는 릴리가 ‘왜요’라는 말 좀 안했으면 좋겠구나!”
-“왜요?”
...
그러던 어느 날 외계인 우주선이 침략해왔습니다.

-“지구인들아, 우리는 너희 지구를 파괴하러 왔다!”
사람들은 모두 덜덜 떨었지만 릴리는 외계인에게 또 물었어요.
-“왜요?”
-“왜냐고? 그게 우리 임무다.”
-“왜요?”
-“보잘 것 없는 별을 없애버려야 우리의 위대한 제국의 이름이 빛나기 때문이지!”
-“왜요?”
-“그건 우리의 위대한 황제께서 그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이다.”
-“왜요?”
-“너는 황제께 버릇없는 질문을 했다. 하지만 우리는 고향별로 돌아가 그 일을 생각해보겠다.”

“릴리가 또 입을 떼려는 순간 아빠는 릴리의 입을 막았어요. 그리고 그날 밤은 골치덩어리 릴리를 꼭 껴안아 주었어요.”(왜요 아저씨)

-동화 『왜요』<린제이 캠프 지음> -


‘왜요 아저씨’에 빠지는 아이들

동화 읽기가 끝난 뒤에도 30여명의 아이들은 짓궂게 거듭 “왜요?”를 합창하며 이 대표를 놔주려 하지 않았다. 대전서부초등학교에서 진행된 이 대표의 책 읽어주기 행사를 참관한 적이 있다. 책읽기가 아이들에게 이렇게 신나는 것인 줄은 몰랐다. ‘왜요 아저씨’와 함께 책을 읽는 동안 아이들은 딴 세상의 아이들이었다. 계룡문고에 가면 ‘왜요 아저씨’보다 더 재밌게 읽어주는 ‘책마법사’(현민원 이사)가 아이들을 즐거운 책 세상으로 안내한다.

책읽기의 효과를 부인할 사람은 없겠으나 그 효과가 정말 어느 정도인지, 효과가 있다고 해도 과연 아이들에게 책을 읽도록 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법이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드는 게 사실이다.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정말 책을 읽도록 만드는 건 어렵다. 

계룡문고 이동선 대표는 그걸 해내고 있다. 그는 “책읽기는 효과가 아주 크며, 아이들이 책을 읽게 만드는 방법도 있다”고 말한다. 대표적인 방법 가운데 하나가 ‘서점 나들이’다. 학생들이 부모나 선생님과 함께 책방을 찾자는 캠페인이다. 가령, 학생들과 선생님이 함께 서점을 방문해서 학생 스스로 책을 고르고 책값은 학교에서 대주는 방식이다. 

대전 학력 꼴찌 중학교가 4년 만에 최상위권 껑충

1년에 한두 번만 이런 식으로 책을 대하더라도 효과가 적지 않다는 게 이 대표의 말이다. 서점 나들이에 나섰던 학생들은 성적이 한결같이 눈에 띄게 올랐다고 한다. 하지만 서점 주인이 말하는 ‘서점 나들이의 효과’를 다 믿을 수는 없는 노릇. ‘제3의 증인’을 부탁했더니 여러 사람들을 대주었다.

오정중학교 교장을 지낸 A교장(퇴임)도 그 중 한 명이다. 이 학교는 그가 교장으로 부임할 때 학력이 대전시내 90여개 중학교 가운데 꼴찌였으나 4년간 독서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7위까지 올랐다. 물론 ‘서점 나들이’는 큰 효과를 봤다.

용운중학교 교장을 지낸 B교장도 같은 증언을 했다. 이 학교는 ‘서점 소풍 가는 날’을 정해 학생들이 담임과 같이 서점을 찾도록 했다. 평균 학력이 오르고 학력 미달학생이 없어졌다. 서점 소풍에 대해 갸우뚱하던 선생님들도 나중엔 생각이 바뀌었다. B교장은 학교를 옮겨서도 ‘서점 소풍’을 도입했고 같은 효과를 봤다고 했다.

효과에 대한 증거는 또 있다. 대전권이 아닌 타 지역의 학교 학생들도 계룡문고를 찾아오고 있다. 지난 6월 전북 고창과 진안의 시골 학교 학생 70여명이 연이어 계룡문고를 찾았다. 홍성 아산 논산 등 충남 지역의 학교 유치원에서도 찾아온다. 서점 나들이의 효과에 대한 소문이 알려지면서 먼 지역의 학교들까지 대전을 찾아오고 있는 것이다. 한번 서점 나들이를 한 학생들은 학교에 돌아가서도 서점 나들이의 효과가 지속된다는 걸 알기 때문에 한 번 왔던 학교에서 또 오고, 그 소문을 듣고 다른 학교에서도 찾아오고 있다.

전북 고창 시골 학교에서도 찾아오는 도청 앞 계룡문고

그토록 효과가 있다면 이유가 뭘까? 이 대표는 말한다. “아이들이 서점을 찾는 것은 책과 결혼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보는 책의 대부분은 자신이 선택한 것이 아니다. 읽고 싶은 책이라기보다 읽어야 할 책일 뿐이다. 마치 중매결혼과 같다. 그러나 서점 나들이는 연애결혼과 같다. 책에 관심이 없던 아이들조차 책에 대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아이들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

서점 방문이 어려운 형편이면 ‘왜요 아저씨’가 찾아간다. 지난주에는 대동지역아동센터를 찾아 학부모와 아이들에게 책을 읽어주었다. 이후 아이들은 독서삼매경에 빠졌다. 학부모도 책읽기 효과에 놀란다고 한다. 센터 관계자는 “동화책은 아이들만 읽는 줄 알았는데 어른들도 느끼는 게 많다”고 했다.

학력 신장이 학교 교육 목표의 전부는 아니지만 학력 신장이 어려운 교육은 결국 아이들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아이들뿐인가? 결국 사회가 불행해진다. 독서는 학력을 높이는 데 무엇보다 중요하다. 즐겁게 읽고 성적도 올린다면 더 없이 좋은 교육이다.

지금 우리 학교는 그런 학교가 못된다. 교실은 붕괴되어 있고, 학생들은 스마트폰에 포획돼 있다. 학생들이 공부를 열심히 안 하는 것은 아니지만 대개는 점수 따는 요령을 배우느라 학교에선 자고, 밤에는 사설학원을 전전하면서 보낸다. ‘제대로 된 책읽기 교육’이 아니면 교육은 성공할 수 없다.

독서교육, 대전시교육청 지역 서점과 함께 해보길

그제 설동호 대전시교육감은 “학생들이 스마트폰 등 영상을 보는데 익숙하지만 책을 통해 창의력 등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나 무엇으로 그것을 실천해낼 것인가? 시교육청이 지역 서점과 함께 하는 정책도 검토해봤으면 한다. 이동선 대표의 경우 독서교육에 많은 경험과 노하우를 가졌다. 그는 하루에 평균 한 두 번은 책읽어주기 등 독서프로그램을 진행한다. 서점과 학교를 오가며 1년에 1만 명 이상의 학생들에게 독서교육을 하고 있다. 그것도 학생들의 몰입도가 높은 방법으로 하고 있으니, 독서교육에 관한 한 교육기관이 부끄러울 처지다.

신경 쓰이는 부분은 있다. ‘서점 나들이’ 캠페인이 사회적으로 유익한 행사라 해도 서점은 영리를 추구하는 개인기업이다. 이런 점 때문에 오해나 받지 않을까 하여 서점 나들이에 참여를 꺼리는 학교들도 있다고 한다. 계룡문고는 ‘서점 나들이’에서 나오는 매출액 가운데 일부는 작가 초청 행사 비용에 쓰는 방식으로 고객에게 되돌려주고 있다. 오해를 불식시키자는 뜻도 있다. 그래도 오해 소지를 피할 수는 없다.

대전시교육청이 이런 문제점을 풀어주었으면 한다. 지역의 모든 서점을 참여시키고 교육청과 머리를 맞댄다면 방법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학교와 지역 서점이 협력 관계를 맺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왜요 아저씨’의 책읽어주기 같은 프로그램을 일선 학교에 확대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해볼 수 있다.

서점은 인터넷 때문에 죽어가고 있다. 계룡문고도 힘겨운 상황이다. 그나마 서점 나들이 같은 프로 때문에 유지는 하고 있다고 이 대표는 말한다. 그러나 서점 혼자 하는 독서교육 캠페인은 한계가 있다. ‘책읽어주기’도 힘든 일이다. 이 대표는 1년에 한 두 번씩은 쓰러진다고 한다. 

정부는 나라 경제에 보탬이 된다는 이유로,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명분으로 특정 기업에도 수십 억씩 지원한다. ‘서점 나들이’는 서점도 살리고 학생도 살리는 정책이다. 아이들을 살리면 지역이 살고 나라가 건강해진다. 이보다 큰 이득이 어디 있나? 교육청이나 지방자치단체가 지역 서점과 협조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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