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114>

대전의 한 장애인단체가 동구청에 사무실 전세보증금 5,000만원을 지원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다른 장애인단체에는 사무실 전세보증금은 물론 각종 행사비를 지원하고 있으니 그들과 형평을 맞춰달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회원들을 동원해 동구 구민의 날 행사가 열리는 14일 구청 앞에서 항의집회를 계획하고 있다.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대전에는 장애인단체총연합회를 비롯해 지체장애인협회, 신체장애인협회, 시각장애인협회, 근육장애인협회, 척수장애인협회, 신장장애인복지회, 교통장애인협회, 여성장애인연합, 장애인부모회, 장애인정보화협회 등 장애인 관련 단체만도 20여 곳이다. 장애인뿐만 아니라 대전시에 등록된 각종 비영리 민간단체는 500곳이 넘는다.  

대전시 등록 비영리 민간단체 500여 곳

자율적으로 조직돼 활동하는 비영리 민간단체들이 모두 사무실 임차료와 인건비, 운영비를 요구하고 행사 경비를 지원하라고 손 벌리면 대전시 복지예산을 모두 여기 쏟아 부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장애인복지법에 따르면 장애인복지단체를 보호 육성하고 사업활동이나 운영 경비를 보조할 수 있다고 명시돼 있어 이들의 주장을 무시할 수만은 없다.

더구나 특정 단체에는 이미 사무실 전세보증금 지원은 물론 사업비까지 몰아주고 있어 여타 단체들이 불만을 가질만하다. 그렇다고 사무실 임차료와 운영비, 사업비를 달라는 개별 단체들의 요구를 다 들어주는 것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지난해부터 시행된 개정 지방재정법과 내년 예산편성에 반영해야 하는 지방보조금총액한도제로 인해 임차료 지원은 불가하다.

지방재정법에 따라 지자체가 민간단체에 사무실 임차료와 인건비 같은 것을 지원할 수 없게 됐으며 행사·축제 예산총액한도제를 도입해 신규 행사나 축제는 엄격한 심사절차를 거쳐야 한다. 중복사업들은 아예 지원이 불가능하고 기존 행사·축제 역시 사후평가를 통해 통·폐합해 소모성·낭비성 행사들은 퇴출시키겠다는 것이다. 

표를 먹고 사는 선출직 단체장들이 그동안 무리한 예산 퍼주기를 했던 게 사실이다. 선거에서 특정후보를 밀어준 결과 당선 후 이런저런 혜택들이 생기는 것을 본 여타 단체들이 불만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특정 단체만 지원할 바에는 아무도 주지 말라고까지 나오는걸 보면 민간단체 지원에 대한 정비가 필요해 보인다.

이들의 요구에 대전시와 자치구도 뾰족한 대안을 내놓지 못하고 다음 선거를 준비하는 단체장들은 “선거 때 두고 보자”며 벼르는 사람들을 물리치기 힘들다. 그렇다고 이미 지원 받는 단체의 혜택을 없애자니 이 역시 엄청난 저항을 예고한다. 이래저래 자치단체장도, 공무원들도 답답한 모양이다.

대전시에 등록된 비영리 민간단체는 500여 곳이다. 사진은 지난해 5월 제5회 대전NGO축제 모습.
민간단체 보조금 지원 법과 원칙 맞는 철저한 평가와 적용

이번 장애인단체의 사무실 전세보증금 지원 논란은 특정단체에만 국한되는 일이 아니다. 이들 이외의 다른 비영리 민간단체들도 다양한 형태의 지원을 요구하고 이미 받는 곳들이 있다. 이들 사이의 형평성 논란은 앞으로도 끊이지 않을 것이다. 먼저 생겼다는 이유만으로 특정 단체는 지속 지원하고 같은 활동을 하는 신규 단체들은 법을 핑계 삼아 배척하는 것도 공정하지 않다.

그렇다면 법과 원칙에 맞는 철저한 평가와 적용이 답이다. 한 단체가 특정행사를 수년간 진행했다고 해서 이 곳만 밀어줄 게 아니라 평가를 통해 엄정하게 지원하는 게 마땅하다. 공모방식을 거치고 평가를 강화하는 것도 방법이다. 이유 없이 특정단체에 보조금을 몰아주는 일은 없어야 하고 단체장 공약이라며 타당성 없는 행사와 축제를 밀어붙이는 일도 이제는 그만해야 한다.

저작권자 © 디트NEWS24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