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김경훈 의장의 ‘맑은 물 프레임’ 전략

권선택 대전시장(왼쪽)과 김경훈 대전시의회 의장.

김경훈 대전시의회 의장이 집행부의 대변인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민영화 논란에도 불구하고 대전시가 ‘고도정수처리 민간투자사업’을 강행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시의회 의장이 이를 견제하기는커녕 사업의 필요성을 적극 강변하고 나선 것이다.  

‘상수도 민영화 프레임’에 맞서기 위한 김 의장의 전략은 ‘맑은 물 프레임’이다. 그는 ‘취임 100일 기자회견’ 등 공식 석상에서 “맑은 물은 빨리 공급돼야 한다”는 말을 반복적으로 내뱉고 있다.

언뜻 매우 상식적인 구호처럼 들리지만, 이 말 속엔 ‘고도정수처리 민간투자사업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의미가 함축돼 있다. ‘맑은 물’이란 고도정수처리를 한 물을 뜻하는 것이고, ‘빨리 공급돼 한다’는 것은 재정사업이 아닌 민간투자사업이 시급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의미기 때문이다.

김 의장의 ‘맑은 물 프레임’은 반대파를 압박하는 효과도 발휘하고 있다. ‘맑은 물 프레임’으로 보면, ‘상수도 민영화 반대’를 외치고 있는 시민단체와 정치권은 시민들에게 맑은 물을 공급하려고 하는 대전시 정책을 가로 막거나 지연시키는 ‘공공의 적’일 뿐이다.

그러나 김 의장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이 있다. ‘맑은 물 프레임’은 현재 대전시가 공급하고 있는 물이 ‘나쁜 물’이란 전제 없이는 불가능하다. ‘지금 시민들이 나쁜 물을 마시고 있다’는 공포를 심어줌으로써, 자기 정책에 동조하게 만드는 일종의 ‘공포 프레임’인 셈이다.

‘맑은 물 프레임’이 ‘공포 프레임’이라는 증거는 김경훈 의장의 말 속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김 의장은 지난 10일 시의회 기자실에서 가진 취임 100일 기자회견 석상에서 ‘민간투자 중단 촉구 결의안’을 발의하고 통과시킨 동료 의원들을 비난하며 “맑은 물이 빨리 공급되는 것이 중요하다. 나쁜 물보다 맑은 물이 하루라도 빨리 내 입속으로 들어오는 것이 중요하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현재 시민들이 마시고 있는 물을 ‘나쁜 물’로 규정하는 김 의장의 ‘저질 프레임’은 막말로 까지 치닫고 있다. 현재 대전시가 공급하고 있는 수돗물에 발암물질이 녹아들어 있어 이를 제거해야 한다는 취지의 위험천만한 발언까지 나오고 있는 것이다.

김 의장은 지난 11일 역대 의장들을 초청해 간담회를 가진 자리에서도 ‘맑은 물 프레임’을 꺼내 들었다. 김영관 전 의장이 ‘상수도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논란을 지적하며 “의회가 중심을 잡고 이끌어 달라”는 취지의 조언을 하고 난 뒤였다.

“고도정수 처리를 하면 발암물질이 다 제거가 된다. 그걸 재정사업으로 하면 10년 이상이 걸린다. 민간투자사업은 정부가 권장하는 방향으로 가는 것이다. 조례상 의회 동의를 구해야하기 때문에 의회가 남은 절차를 밟고 있다.”

다름 아닌 김경훈 의장의 이야기다. “고도정수 처리를 하면 발암물질이 다 제거 된다”는 말은 현재 대전시가 공급하고 있는 수돗물에 발암물질이 녹아들어 있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밖에 없다. ‘맑은 물 프레임’에서 그치지 않고 ‘나쁜 물 프레임’까지 꺼내 들면서 김 의장이 스스로에게 족쇄를 채우고 있는 셈이다.

사실 ‘맑은 물 프레임’은 김 의장이 기획한 전략은 아니다. 대전시가 기획하고 실행 중인 전략을 김 의장이 충실하게 따르면서 ‘오버 페이스’했을 뿐이다.

대전시 상수도사업본부가 고도정수처리시설 설치 관련 시민토론회를 개최하면서 공개한 홍보자료.

대전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지난달 말 ‘상수도 고도정수처리시설 설치 관련 시민토론회’를 시청 3층에서 개최하면서 ‘어떤 물을 마시고 싶으세요’란 제목의 홍보물을 제시했다.

이 홍보물은 클로로포름 등 7개 소독부산물의 발암 가능성을 적시하며 고도정수처리를 하면 이런 발암물질 수치를 현저하게 낮출 수 있다는 내용을 도표 형태로 담았다.

‘고도정수처리 필요성’을 강조하기 위한 홍보물이지만, 시민들에게 공포를 심어주고 오해를 불러일으킬 만한 내용이란 점에서 즉시 뒷말이 무성하게 흘러나왔다.

기초의과학 분야 한 전문가는 “고도정수처리를 통해 발암물질인 클로로포름 등 소독부산물 함유량을 좀 더 낮출 수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고도정수처리 이전 수돗물에 포함된 소독부산물 함유량 자체가 워낙 극미량인데다 염소와 트리할로메탄 등은 끓이거나 상온에서 공기 중으로 휘발되기 때문에 전혀 걱정할 필요가 없다”고 설명했다. 

“수돗물의 질적 부분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정수 처리단계가 아닌 도수관로 노후화”라는 게 다른 물 관련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시각이기도 하다. 

사정이 이러한데도 대전시 상수도사업본부는 시민들을 향해 “어떤 물을 마시고 싶냐”고 엉뚱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맑은 물 프레임’은 여기에서부터 출발했고, 김경훈 의장이 이를 수용해 확대 재생산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전시와 상수도사업본부 등은 왜 갑자기 나쁜 물을 몰아내고 맑은 물을 공급하려는 거룩한 공익에 열을 올리고 있는 것일까.  그 해답 또한 ‘맑은 물 프레임’에서 찾을 수 있다.

“맑은 물을 하루라도 빨리 공급하자”는 것이 ‘맑은 물 프레임’이다. 여기에서 ‘맑은 물’에 방점을 찍을 것이냐, ‘하루라도 빨리’라는 말에 방점을 찍을 것이냐가 중요하다.

‘맑은 물’에 방점을 찍는다면 맑은 물 공급에 필요한 원수 관리, 도수관로 교체 등 다양한 해결책을 모색해야 한다. 그러나 ‘하루라도 빨리’라는 말에 방점이 찍힌다면, 민간투자사업 외 다른 대안은 모두 사라지게 된다.

다시 말해 “시급하다.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하는 쪽은 ‘맑은 물’ 그 자체가 아닌 ‘민간투자사업’에 더 관심이 많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맑은 물 프레임’에 묻는다. 당신은 ‘맑은 물’에 관심이 많은가, 아니면 ‘하루라도 빨리’에 더 관심이 많은가. 마음이 조급한 사람들을 주변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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