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눈] 폐기물 3만 드럼, 폐연료봉 1699개 어찌할텐가?

“살아보니까, 대전이 참 좋아요. 교통여건도 그렇지만 지진, 홍수, 태풍 등 자연재해로부터 이 만큼 안전한 도시가 없는 것 같아요.”

지난해 과천에서 정부세종청사로 근무지를 옮긴 한 중앙부처 공무원과 대화 중 나온 이야기다. 이 공무원은 세종이 아닌 대전에 정착하면서, 여러모로 대전의 매력에 흠뻑 빠져 있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이 공무원이 더 이상 이런 이야기를 할 수 없게 됐다. 그는 방서성 폐기물이 다량 보관돼 있는 원자력연구원으로부터 반경 수km 밖에 떨어지지 않는 아파트단지에 거주하고 있다. 그는 이 같은 사실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대전에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3만 드럼이 보관돼 있고, 사용후 핵연료인 폐연료봉 1390개와 손상 핵연료 309개가 보관돼 있다는 사실이 최근 알려지면서, 대전 시민들의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유승희 국회의원이 원자력안전위원회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대전의 방사성폐기물 보관량은 전국 2위 수준이다. 대전 유성구에 있는 원자력연구원과 한전원자력연료에 무려 2만 9728드럼이 보관돼 있다는 것이다.

방사성폐기물 보관을 목적으로 건설된 경주방폐장에 6136드럼이 보관돼 있는 것과 비교하면 대전이 5배나 더 많다. 모르는 사이 대전은 이미 거대한 방폐장이 된 셈이다.

대전에 ‘사용 후 핵연료’와 방사성폐기물이 어느 정도 보관돼 있다는 것은 대전 시민이라면 누구나 여러 경로를 통해 대략 인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한국원자력연구원이 지역에 존재하고 여기에 연구목적 원자로가 가동 중이라는 것은 비밀스런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다만 ‘그 수량이 매우 적고, 연구목적이기에 큰 위험성이 없을 것’이란 막연한 인식이 지배적이었다.

이젠 이야기가 달라졌다. 고위험군에 속하는 폐연료봉 1390개와 손상된 핵 연료 309개를 합쳐 모두 1699개가 보관 중이란 사실이 이번에 공개됐다. 이것은 무려 3.3톤에 이르는 양으로, 지진 등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면 후쿠시마 원전사고에 버금가는 방사능 누출이 우려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민태권 유성구의회 의장 등 구의원들이 17일 원자력 안전 대책을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하고 있다.

물론 끔찍한 시나리오는 절대로 현실화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나 ‘만약’을 생각하지 않는 ‘안전’이란 존재할 수 없다. 원자력발전소 등 다른 원자력시설의 경우, 인구밀집 지역과 어느 정도 격리 돼 있고, 관리주체의 주장대로라면 이중 삼중의 안전망을 확보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나 대전은 예외다. 대전 시민들이 잘 알고 있듯, 반경 2㎞에 대단위 아파트가 밀집해 있다. 여기에 무려 3만8000여 명의 시민들이 거주하고 있다. 사실 원자력 안전사고를 가정한다면, 수 만 명이 피해를 보고 그칠 일도 아니다. 153만 대전시민이 옴짝달싹 못하고 방사능 피해자가 될 수도 있다.

과도한 불안감을 조성하려는 의도는 결코 아니다. 원자력 안전 문제에 관한 한, 밀실행정으로 일관해 왔던 정부방침이 의혹과 불신을 자초했다.

오죽했으면, 해당 기초자치단체장인 구청장이 “투쟁”이란 단어까지 써가며 “이 문제를 절대 좌시하지 않겠다”는 의사까지 표현했을까. 다른 자료 등에 따르면, 정부는 지난 1988년부터 2010년까지 7차례에 걸쳐 고리와 영광, 울진에 건설된 원자력발전소에서 대전 원자력연구원으로 폐연료봉 등을 옮겨왔다.

30년 동안 대전 시민은 이런 사실조차 몰랐다. 153만 시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대전시도 몰랐고, 입만 열면 ‘시민행복’을 부르짖는 지역 정치권도 몰랐다고 한다.  

유성구가 확인한 ‘중·저준위 방사성폐기물 보관현황’을 살펴보면, 더 놀라운 사실이 확인된다. 이미 보관 중인 중·저준위 폐기물 3만 드럼 외에 추가로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 2만 2000드럼 이상 된다.

쌓여가는 방사성 폐기물을 전량 방폐장 등으로 빼 내려면 40년 이상 걸린다. 이송계획에 따르면 한 해 이송할 수 있는 방상성 폐기물 량은 1500드럼 안팎이다. 드럼 1개를 이송하는데 약 2000만 원이 소요된다고 하니, 중장비를 동원해 건설폐기물 옮기듯 일시에 다른 안전한 곳으로 옮기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비용도 문제다. 3만 드럼을 옮기는 비용만 어림잡아 6000억 원 이상이 든다.    

허태정 유성구청장은 17일 “1699개에 이르는 고준위 핵폐기물에 대해 즉각적인 반출대책을 수립하고 나머지 중저준위 폐기물에 대해서도 이전계획을 명확하게 제시하라”고 촉구했다.

대전시와 지역 국회의원들에게는 “정치적 문제가 아니니 함께 적극적으로 나서자”고 제안했다. 타당한 이야기다. 시민안전과 직결된 문제에 여·야가 있을 수 없고, 정치적 이해를 고려한 계산이 필요하지도 않다.

권선택 대전시장, 이장우, 정용기, 이은권 새누리당 의원, 박범계, 박병석, 이상민, 박범계, 조승래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시민들은 당장 이들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제시하길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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