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자체, 형식적 지원 등 중장기 미래 기업환경 개선 전략 부재

서구 둔산동 대전시청사 및 주변 전경.(자료사진)


외국계에 매각되거나 지역을 떠나는 향토 기업들이 늘고 있다. 아예 회사를 팔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거나 기업을 타지로 이전하는 사례가 부쩍 늘고 있는 것이다.

대전시는 신규 투자가 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기업가들은 실제 지역에서 체감하는 기업 경영 환경이 매우 열악하다고 강변한다. 재정적 지원은 물론 산업단지 조성 과정에서 이뤄지는 지자체의 지원이란 게 그야말로 생색내기에 그치는 수준에 불과하다는 것이 기업가들의 중론이다.

‘지역 떠나고, 외국계에 팔리고…’

20일 지역 증권가, 경제계 등에 따르면 지역 A기업이 최근 내부 이사회를 거쳐 중국계 회사에 매각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주목된다. 이 기업은 내부적으로 최종 확정 절차를 남겨 두고 있어 공시를 통한 외부 공개는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 회사는 지역에서 나고 자란 향토기업. 여전히 창업주가 경영을 하고 있으며, 수년 전 연매출 1000억원을 넘어서 탄탄대로를 걷고 있는 중견기업이다.

특히 세계적으로 대기업들만 갖출 수 있는 원천기술을 국내서도 드물게 보유하고 있어 국내 기술의 해외 유출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앞서 올 초에는 대명광학이 미국 안경렌즈 제조업체 비전이즈에 1335억원에 팔렸다. 대명광학은 국내 안경렌즈 시장의 22%를 점유하고 있는 2위 업체.

안경렌즈 산업은 지역연고 전통산업이다. 당시 지역 기업들은 지역 전통산업이 심각한 타격을 입을 것으로 우려했다. 외국자본에 의한 시장 잠식이 진행되면 전통산업이란 의미 자체가 퇴색될 수밖에 없다는 이유에서다.
 
외지 이전도 눈에 띄게 늘고 있다.

70%가 넘는 국내 특장차 시장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이텍산업은 지난 3월 세종시 명학산업단지 내에 이전을 완료했다. 수출시장 확대와 신규 사업 진출을 위해 명학산단 내 3만7326㎡ 부지에 310억원을 들여 공장 등 건물을 신축했다. 대전 테크노밸리 내 있던 공장과 본사를 모두 세종시로 이전한 것. 이텍산업 역시 연매출 1000억원이 넘는 지역 대표 중견기업.

향토기업의 주변지역 이전은 꽤 가속화된 상태다. 6월 말 현재 세종시 연동면 명학일반산업단지 내 분양계약을 맺어 입주했거나 입주가 예정된 업체는 총 35개. 이중 대전에서 이전한 기업은 절반에 가까운 14개 업체다

아예 수도권으로 일부 조직을 이전하는 지역내 대기업들도 있다. 지역에 본사를 둔 H사도 최근 수도권에 기업연구소를 설립키로 하고, 전보 발령 등 인력 조정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회사 직원들 중 일부는 “직원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자리면 ‘오랜 기간 대전에 살다가 수도권으로 이사를 가야 하는지에 대해 고민이 깊다’는 심경을 토로한다”고 했다.

대기업인 L사도 대덕연구단지 내 연구소 인력을 최소 규모만 남겨 놓고 모두 파주단지로 이전시킬 방침을 세운 상태다. 그룹사 전체 연구인력을 파주단지 한 곳에 모으겠다는 방편의 하나로 추진하는 것. L그룹사 내 대전 연구 인력의 포지션이 줄어들 수밖에 없는 셈.

기업인들, “지자체 생색내기 그만...와 닿는 정책 펴 달라”

대전은 올해도 어김없이 SK, 한화 등 ‘대기업 모셔오기’ 정책을 공언했다. 시가 올 초 발표한 것은 새로운 경제 활성화 정책인 행복키움 ‘대전경제 그랜드플랜 30’이다.

하지만 구체화되거나 실행된 건 많지 않다. 시는 올해 중반 ‘기업유치 및 투자촉진 조례’를 개정했다. 지역으로 이전해 오는 기업과 창업기업, 대규모 투자기업 등에 대한 지원을 대폭 강화하겠다는 게 골자였다.

문제는 경영 활동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만한 게 없다는 것. 대전 소재 기업에 대해서는 지역 내 이전 시 부지매입비를 지원하는 내용이 들어갔을 뿐, 특별한 개선책이 없다.

지역 경제계의 고민은 깊다. 가장 먼저 땅값 문제다. 땅값이 비싸서 공장 확장이나 신축은 엄두도 내지 못한다. 계룡시, 논산시, 세종시 등 주변지역으로 이전이 가속화되는 이유다.

대전은 특히 전국에서 그린벨트 비중이 가장 높다. 앞서 정부는 2015년 5월 일정 규모(30만㎡) 이하 중소규모 그린벨트의 해제권한을 각 시·도지사에게 이양하는 내용의 개발제한구역 규제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당시 단체장이 개발제한구역 해제를 선심성으로 무분별하게 남발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컸으나 그 뿐이었다. 기업인들은 여전히 부지 문제를 역내서 가장 중요한 경영 제약 요인으로 든다. 

기업 세제 혜택, 인센티브제 등도 형식에 그친다는 불만이 많다. 지역 중소기업인들은 실질적인 (세제) 혜택은 고사하고 재정적 피드백 효과를 볼 수 없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서비스업 비중이 높은 대전의 경우 역내 제조업 비중이 가장 낮을 정도로 열악한 단층적 경제구조를 기업 경영 활동의 큰 애로사항으로 꼽는다.

실질적인 지역 연고 대기업도 없다. 대기업이 없을 경우 연계 산업 발달에 따른 후광효과가 아예 없는 것이다.  

경제계 한 관계자는 “역내 돈을 돌게 만드는 원천이 기업 경영 활동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지자체들이 보다 적극적으로 나서서 그린벨트 해제, 세제 혜택 등 전폭적인 지원을 해야 한다”며 “그동안 시가 약속했던 부분도 지켜지지 않는 등 지원이 크지 않은데, 기업가들이 개별적으로 고군분투하는 모습이 안타깝고 답답할 뿐”이라고 했다. 

기업도우미제 등 대전시도 지원책을 마련해 추진하고 있다. 다만 ‘무늬만 지원’이라는 곱지 않은 시선을 인식하면서도 답답해 하기는 마찬가지다.

시 관계자는 “지자체 역시 지역기업에 대한 관심이 왜 없겠냐”면서 “(그러나) 지자체 차원에서 제도적으로 지원할 할 수 있는 부분이 많지 않은 게 참 힘든 부분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대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을 육성해야 하지 않겠나”라면서 “중소·중견기업을 적극 발굴 육성해 지역경제발전의 견인차 역할을 하도록 행정력을 모으고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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