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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완구 전 총리 항소심 그 이후, ‘이제는 말할 수 있다’

[인터뷰] 최민호 전 국무총리비서실장의 격정 토로

한지혜 기자2016.10.24 16:31:47

‘성완종 리스트’로 기소돼 역대 최단명 총리라는 불명예를 안게 된 이완구(66) 전 국무총리가 지난 9월 27일 2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고 판세를 뒤집었다. 1심 법원이 고(故)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으로부터 3000만원을 받은 혐의를 인정해 징역 8월, 집행유예 2년을 선고한 결과를 파기한 것.

당시 이 전 총리는 최측근인 최민호(60) 전 국무총리 비서실장의 손을 꼭잡고 법원을 빠져나왔다. 대법원 최종심만을 남겨놓은 상황에서 최 전 총리 비서실장이 입을 열었다. 지난 20일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 추진위원 활동을 접은 소회를 묻기 위해 찾은 그의 세종시 연동면 한옥에서다.

2개월만의 사퇴… 국정 마스터플랜 세우던 시기, 남은 회한 커

▲최민호 전 총리비서실장은 "이완구 전 총리가 국정 마스터플랜을 수립하고 막 하나씩 실천에 옮기기 시작할 때 '성완종 사건'이 터졌다"며 "아쉬움이 커 밤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했다.

최 전 총리 비서실장은 “국민들의 아픈 곳, 나라의 어두운 곳을 살피자고 했던 이 전 총리의 말이 아직까지 귓가에 생생하다”며 “2심 무죄판결을 받은 기분은 당사자만큼이나 남다르다”고 밝혔다.

이 전 총리는 고 성완종 리스트에 언급되면서 2개월 만에 직에서 물러났다. 당시 총리 비서실장이었던 그 역시 함께 사표를 냈다.

그는 “당시 2개월 간 국정 마스터플랜을 세우던 중이었다”며 “당시 이 전 총리는 최소 1년의 플랜을 짰고, 이를 간부들과 상의하고, 실행을 앞둔 과정에서 일이 터진 것”이라고 회상했다.

첫 번째 안건은 2018년 열리는 평창올림픽이었다. 제대로 준비가 되고 있는 것인지 면밀히 지켜봐야 한다는 판단에서 강원도지사와 올림픽 조직위원장 등을 불러 모아 애로사항을 확인하는 자리를 가졌다.

두 번째와 세 번째는 규제개혁과 복지누수 방지. 최 전 총리비서실장은 “제대로 실행되지 않고 있는 규제개혁을 종합정리하고, 증세 없는 복지 달성을 목표로 복지 누수, 낭비예산을 가려내 다시 복지로 환원하기 위한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고 했다.

네 번째가 부정부패청산. 그는 “당시 기업들의 해외자원 비리문제가 계속 터지던 시기여서 부정비리척결과 공무원 자세 등 국가 기강확립 문제를 논의하고 이에 대한 엄단 의지를 총리가 발표했다"며 "사건은 그 직후 터졌다"고 했다.

그는 “세월호 사건을 비롯해 국가적으로 해결해야 할 과제가 넘쳐나던 시기였다”며 “본격적으로 국정에 임하려던 차 낙마하게 돼 회한은 더욱 크게 남았을 것”이라고 했다.

두 남자가 나눈 세종시에 대한 남다른 ‘애정’

▲이완구 전 총리의 세종시에 대한 애정을 이야기하면서 최 전 총리비서실장이 울컥해 했다.

이 전 총리가 세종시에 가졌던 특별한 애정도 언급했다. 세종시 원안 사수와 정상건설을 위해 도지사 자리를 내려놓을 만큼 이 전 총리의 의지가 강했다는 것.

그는 “이 전 총리는 원안 사수를 위해 도지사 자리를 내려놓는 등 약속을 지키는 지도자로 남기 위해 노력했다”며 “이는 세종시 정상건설을 위해 대통령에게까지 감히 항거했다고도 볼 수 있는 대목”이라고 했다.

세종시 정상건설에 대한 집념이 강하다보니 행복청장을 지냈던 그에게 특별주문을 하기도 했다.

그는 “충남부지사와 행복청장을 역임했고, 세종시장에까지 출마하다 보니 이 전 총리가 세종시 건설의 문제점과 방향을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으로 날 인정해줬다"며 "세종시지원단이 총리실 산하이다보니 나에게 특별히 세종시를 챙기도록 지시했다”고 회고했다.

그러면서 “당시 세종시에 필요한 정부지원을 묻기에 총리실지원단, 행복청 간부들과 협의해 보고를 앞두고 있었다”며 “시장이나 장관의 힘으로 될 수 없는 큰 일을 기획했고 총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그 일을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하니 나 스스로도 총리 못지 않게 회한이 크다"고 말했다.

“재판과정서 ‘거짓말’ 정치인 낙인…와전된 것”

▲지난 9월 27일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직후 이완구 전 총리가 최민호 전 총리비서실장의 손을 잡고 법정을 빠져나오고 있다. 자료 사진

이 전 총리는 사건 이후 바깥출입과 외부연락을 끊고 칩거에 들어갔다. 오로지 명예회복을 위한 재판에만 몰두했다.

그는 “측근과 가끔 소식을 전하고 외부인사와는 만남을 끊고 재판에만 몰두했다”며 “이를 지켜보면서 나 스스로도 연동면 노송리 집에서 두문불출하며 칩거생활을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1심 판결은 이 전 총리에게 더 큰 직격탄이 됐다. “돈을 받았으면 목숨을 내놓겠다”는  발언이 도리어 더 큰 화로 돌아왔다.

그는 “돈을 받고 안 받고를 떠나 거짓말한 정치인이라는 인식이 생겼다”며 “이 전 총리가 했던 ‘성완종씨를 모른다’는 말은 사실 와전된 말”이라고 강조했다.

성완종 전 회장과 이 전 총리는 같은 시기 충청권에서 국회의원을 지냈다. 또한 이 전 총리는 세종시발전특별위원회에서 위원장을 맡았고, 성완종 의원은 위원으로 함께 활동한 바 있다.

그는 “현역 의원을 함께 지냈는데 아무리 뻔뻔한 철면피라도 어떻게 모른다는 말을 할 수 있겠느냐”며 “진실은 법정 속기록에도 기록돼 있듯이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 의정활동을 하기 전까지는 연락도, 만남도 없던 사이’라고 말했던 게 와전된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전 총리와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가까이 하기에는 너무 먼 사이일 수밖에 없는 배경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과거 이 전 총리가 충남도지사로 있을 때, 안면도 개발 건으로 경남기업과 소송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가까이 지내기에는 다소 껄끄러운 관계였다”며 “함께 컨소시엄으로 들어왔던 회사가 탈락하면서 경남기업 쪽에서 부당하다고 낸 소송이었는데, 1심에서는 도가 지고, 2심에서는 이긴 적이 있다”고 했다. “이 전 총리는 그 과정에서 도지사를 그만두고, 혈액암 투병에 들어갔고, 이후 완전히 회복되기도 전에 부여·청양 보궐선거에 나온 것”이라며 “성완종 전 회장과는 가까워질 틈도, 만날 틈도 없었다”고 덧붙였다.

“축의금·부의금·보상비도 거부, 철저한 공직생활 보내”

▲최민호 전 총리비서실장이 담담하게 이완구 전 총리의 청렴했던 공직생활을 회고하고 있다.

최 전 총리비서실장은 최측근으로서 철저하게 공직생활을 했던 이 전 총리에 대한 비하인드 스토리도 꺼냈다.

그는 “이 전 총리는 충남도지사 시절 아들을 결혼시켰는데, 당시 가까운 가족들 이외에는 비서도 모르게 진행했다”며 “부지사인 나 역시 결혼사실을 몰라 서운함을 토로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모르고 넘어간 사실이 맘에 걸린 실·국장들만 걷어 건넨 축의금까지 거부해 참모들이 머쓱했던 적이 있다”고 했다. “장인, 장모가 돌아가셨을 때도 일체 연락이 없어 장례식장에는 화환도 없었고, 부의금도 내지 못했다”고도 했다.

또 한 가지 이야기는 홍성에 있던 이 전 총리의 종중땅에 관한 것이다. 당시 홍성에 있던 땅은 충남도청 이전부지에 포함돼 보상금을 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다.

그는 “(이 전 총리는) 내가 도지사인데 도청 짓는다고 보상비를 어떻게 받느냐며 결국 국가에 헌납했다”며 “이렇게까지 철저하고 청렴한 공직생활을 했던 사람이 당선이 확실시 되는 상황에서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주는 돈을 왜 받았겠느냐"고 했다. "오죽했으면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느냐고까지 했겠느냐"고도 했다.

“3심판결만 남겨둔 상태, 최측근으로서 결백 느껴”

그는 “하루는 이 전 총리에게 문득 전화를 했더니 이 기막힌 상황을 어떻게 넘어가야할지 모르겠다고 호소한 적이 있다”며 “돈을 줬다는 사람은 언제, 어떻게, 얼마를, 어디서 줬다고 진술하는 상황에서 받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할 증거가 없으니 답답해 하신 말씀이었다”고 했다.

“이 전 총리 입장에서는 돈을 줬다는 진술을 면밀히 분석해 모순과 허점을 찾는 것 밖에 방법이 없었다”며 “진술을 파고들어가니 2심에서는 1심에서 주장한 내용 그대로가 반영돼 무죄판결이 나왔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직 3심 판결이 남아있어 쉽게 얘기할 수는 없지만, 이와 무관하게 인간으로서, 최측근으로서 느낀 바를 이제야 말할 수 있게 됐다”고 했다.

이 전 총리는 “증거가 나오면 목숨을 내놓겠다”며 내내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고 있다. 충남도지사와 3선 국회의원, 국무총리직을 무리 없이 수행했다면 차기 여권의 대권 주자로도 꼽혔을 그다. 명예회복의 가부는 이제 3심 판결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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