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사)대전교육연구소장

이달 초 교육부는 교육과정을 개정해 초등학교 1학년 한글교육 시간을 약 55차시까지 늘리겠다고 발표했다. 지금은 1학년 교육과정에서 한글 교육시수가 27차시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이런 교육시수는 한글을 익히는데 어림도 없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취학 전 한글 떼기는 부모들에게 거의 상식처럼 받아들여지고 있다.

성광진 (사)대전교육연구소장
초등 교사들에게 물어보니 웬만한 아이들은 취학 전에 받아쓰기를 할 정도로 한글 선행학습이 되어 있다고 한다. 교사들이 체계적으로 가르치다보면 이미 한글을 해득한 학생들은 학습에 흥미를 잃어버리기 일쑤라는 것이다. 또 수업시수도 적다 보니 한글을 배우는 과정을 대충 훑어버리고 마는 것이 현실이다. 

그래서 한글을 미처 해득하지 못한 새내기 어린이들은 당황하기 마련이고 수업에 대한 흥미를 쉽게 잃어버릴 수 있다. 취학 전 한글을 깨우치지 못한 아이들은 부모가 보살피지 못하는 해체 가정이거나 다문화 가정 학생 등으로 이들이 가장 큰 피해자이기도 하다. 

교육부 초등 1학년 한글교육 27차시에서 55차시까지 늘리기로

교육부가 이런 사정을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으면서 방치해오다 이제야 한글교육 강화에 나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교육부의 생각대로 한글 선행교육이 사라질 것이냐는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전에 한글을 해득하는 것을 넘어 수학과 영어까지 선행학습에 나서는 부모들로 넘쳐난다. 비용도 사립대 수업료를 뛰어넘지만, 앞 다투어 보내려는 부모들로 영어유치원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모른다.

지금 사교육에 의한 선행학습은 취학 전부터 시작해 고등학교에 이르기까지 널리고 널렸다. 이러한 세태로 인해 공교육이 위협받는 상황에 이른 것은 두말할 나위 없다. 그리하여 선행학습을 제어하기 위한 법령까지 만들어졌다. 2014년 3월 제정된 ‘공교육 정상화 촉진 및 선행교육 규제에 관한 특별법’은 말 그대로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덜어주고 사교육비도 줄이자는 법이다.

그러나 경쟁 위주의 입시에 대한 근본적인 개혁 없이 선행교육이 없어지기를 바라는 것은 나무에 올라 물고기를 구하기(緣木求魚)와 마찬가지다. 특히 과도한 학습 부담의 원인이 되는 어려운 학습 내용이 개선되어야 한다. 대부분 인정하듯이 우리의 초·중등 교육과정에서 수학이나 과학 등의 학습 내용은 선진 여러 나라보다 어렵다. 이것을 개선하지 않고는 선행학습을 규제하기 어렵다. 또 선행학습의 효과를 톡톡히 볼 수 있는 영어는 내신과 수능에서 다른 어느 과목보다 더 중요한 과목이다.

더욱이 이 법으로 공교육기관은 법령 위반에 대한 징계 등의 조치가 가능하지만 사교육시장까지 규제하기는 어렵다. 결국 이 법은 시행한 지 2년 가까이 되지만 학교 현장에 어떤 효과가 있었나를 설명해 줄 수가 없다.

선행학습 없애려면 입시제도부터 개혁해야

앞에서 지적한 것처럼 우리나라 교육과정의 어려운 학습 내용은 학생들을 평가를 통해 줄 세우기 위한 방편으로 보인다. 반면에 교육 선진국의 교육과정은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일정한 수준에 도달하느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따라서 우리보다 대체로 쉽게 배울 수 있고, 성취목표에 도달하기 어렵지 않다. 이것은 그곳에 조기 유학 간 학생들로부터 숱하게 듣는 말로도 입증된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성적을 통한 줄 세우기가 필요하고, 나아가 대학 서열화가 가능하게 하기 위해서는 어렵게 내용이 구성되어야 한다. 따라서 우리 학생들은 선행학습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구조에 길들여지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상당수의 학생들은 일찌감치 수업에 흥미를 잃어버리고 억지로 교실에 앉아 있게 된다.  

결국 선행학습은 경쟁에서 이기겠다는 마음에서부터 그냥 놔두면 뒤처질 수밖에 없다는 초조함까지가 나타난 결과이지만, 더 큰 이유는 교육과정상 주요 과목의 학습 내용이 선행학습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 이상 우리 교육은 협력보다는 경쟁만을 최선이라 여기고, 나 이외의 모두를 적으로 여기는 의식을 심어주어서는 안 된다. 더욱이 온 국민을 고통으로 몰아넣는 과중한 사교육비의 부담으로부터 벗어나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에서의 학습으로도 학생 대다수가 일정하게 도달할 수 있는 성취 수준으로 교육과정의 학습 내용과 평가를 바꾸어야 한다. 물론 입시제도의 개혁도 필수적인 요소이다. 선행학습을 거부하고 초등학교에 한글교육을 맡겼던 한 학부모가 내뱉은 말을 되새길 때마다 가슴이 먹먹하다. “공교육을 믿은 제가 바보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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