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헌석의 예술계 산책] 대전MBC 출신 박천규의 도전의식

대전 MBC 취재기자, 보도국장, 심의실장, 총무국장, 상무 등으로 승승장구하던 방송인 박천규 선생은 뇌경색으로 좌편마비를 맞았습니다. 갑자기 온몸의 왼쪽을 쓸 수 없어 삶을 송두리째 잃는 것 같은 상실감에 젖었습니다. 설상가상, 선생을 간병하던 아내마저 뇌수술을 한 후 좌편마비가 되어 가정의 평화가 흔들리게 되었지만, 두 분은 열심히 재활운동을 하였습니다.

구름이 떼를 지어 몰려다니듯이 선생의 삶에도 먹구름이 다시 몰아닥쳤습니다. 후두암에 걸려 수술을 한 후, 언어장애로 의사소통이 되지 않았습니다. 잘 나가던 방송기자였던 선생의 입장에서는 ‘삶’ 모두를 거둬 간 것과 같은 형극의 시간이었습니다. 사회생활은 언어를 통해 이뤄지는데, 그 도구를 잃은 사람, 그것도 언어를 통해 방송발전에 이바지하던 선생의 좌절은 형언할 수 없이 극심하였습니다.

리헌석 전 대전문인협회장·문학평론가 겸 아트리뷰어
자신의 아픔을 극복하는 것도 힘든 상황인데, 아내에게 찾아온 병마도 떼를 지어 몰려왔습니다. 신장암 수술, 척추 수술, 그 후유증으로 야기된 ‘하지 부종’ 등 아픔의 터널이 계속되었습니다. 긴 터널을 지나면서도 부부가 절망을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신앙의 힘이었다고 회고합니다. <주님에 대한 사랑과 믿음을 키우고 키워> 어떠한 병마가 나타나더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치료와 재활훈련을 계속하면서 독서에 열중하였다고 밝힙니다.

2004년 첫 수필집 ‘어머니 태어나신 곳을 다녀왔습니다’ 발간

독서에 의해 형성된 사색의 깊이가 ‘자신의 글’을 빚게 작용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동창회 회보, 교회 주보 등 여러 곳에 발표를 하게 되고, 이 글을 읽은 독자들과 소통의 통로를 찾았습니다. 특히 셋째 누님 내외의 독려와 성원에 의해, 2004년에 첫 수필집 『어머니 태어나신 곳을 다녀왔습니다』를 발간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수필 창작에 열중하여 대전가톨릭문학회에 입회하게 되고, 뛰어난 작품으로 2012년 문학전문지 『문학사랑』 신인작품상 수필부문에 당선하여 수필가로 등단도 하였습니다.

수필가로 등단한 후 선생은 더욱 따뜻하고 아름다운 수필을 빚었습니다. 그리하여 ‘2016년 상반기 우수작품상’을 수상하였습니다. 이 상은 500여 명의 문인과 독자들이 투표하여 선정하기 때문에 수상을 한 문인에게는 자긍심을 고취하는 보상이었습니다. 이를 계기로 준비해 왔던 두 번째 수필집 『배려와 양보의 향기』를 발간하였습니다.

박천규 선생의 수필은 주로 착하고 고마운 사람들의 아름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물론 아름다운 이야기 속에 상대적 인물이 등장하기도 하지만, 작품의 중심은 사랑과 배려에 바탕하고 있습니다. 인성의 선한 바탕에 가톨릭 신앙의 사랑과 봉사 정신이 결합한 것으로 보입니다. 또한 독서를 통해 습득한 훌륭한 인물들의 일화(逸話), 그 간접 체험의 내면화도 선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선생의 본심을 글로 빚은 것입니다.

특히 마더 테레사의 ‘두 체험’에서 받은 감동이 컸던 것 같습니다. 가톨릭교회의 수녀가 <나는 사랑의 위대함을 힌두교도인 네 살짜리로부터 배웠다.>고 한 고백은 선생의 의식 속에 혁신적 아이콘으로 기능합니다. 이와 함께 27년간 감옥에 갇혀 있다가 석방된 다음, 미움과 원한을 물리치고 수감실의 간수를 대통령 취임식에 초대하고 소개한 남아프리카공화국 만델라 대통령의 ‘열린 정신’에도 연유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근원적인 작용은 체험에 의해 형성된 내면의 반향(反響)으로 보입니다.

박천규 수필가의 저서
하나 잃었지만 다른 하나 계발해 다른 사람과 공감대 형성

박천규 선생의 작품에서는 주재에 집중할 뿐만 아니라,  ‘표현의 멋스러움’을 내포한 신선한 제재, 세밀한 묘사, 따뜻한 인간관계 등으로 놀라운 감동을 생성(生成)합니다. 특히 수필이 문학작품이라는 점, 문학작품은 예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빚는 것 같습니다. 구성의 묘미, 개성적인 문체, 다른 사람이 놓치기 쉬운 여러 요소들을 세밀하게 묘사하여 감동을 생성(生成)합니다.

선생의 개성적이고 살아 있는 묘사가 작품에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산책로와 화단을 가르는 좀작살나무에는 궁형의 가는 줄기에 싸리꽃 같은 하얀 꽃이 줄기를 돌돌 말아 피어 눈길을 끌었고, 이웃한 봄철의 첨병 산수유에 폈던 노랑꽃은 어느새 봄 햇살에 바랜 노병(老兵)의 모습이었다.>에서 세심한 관찰과 자신의 체험을 융합하여 아름다운 수필을 빚어냅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자연은 봄, 여름, 가을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작가의 눈에 비친 겨울 역시 살아 숨 쉬는 생태계입니다. 자연의 4계절뿐만 아니라 마음의 4계절도 작품에 투영되어 나타납니다.

박천규 선생은 ‘삶의 자연스러운 형상화’를 수필로 인식하는 것 같습니다. 자신의 생활, 느낌, 생각, 그리고 세상의 여러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서술하고 묘사합니다. 특히 동창이나 이웃이 자신에게 베푼 배려와 우정에 대한 고마움이 여러 작품에 담겨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적시하지는 않았지만, 아내에 대한 사랑과 고마움도 여러 작품에 담겨 있습니다.

소리를 잃은 방송인, 음성언어를 잃은 원로 방송인은 마이크 대신 붓을 잡았습니다. 그리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글로 표현하여 세상과 소통합니다. 글은 곧 필자의 가슴이라고 합니다. 선생의 가슴에 새겨지는 세상의 아름다운 이야기, 행복한 이야기를 끊임없이 수필로 남기리라 믿습니다. 독자들과 공유하는 미덕(美德)을 지속적으로 생성하리라 믿습니다.

하나를 잃었지만, 다른 하나를 더욱 계발하여 다른 사람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박천규 원로 방송인이 아름다워 보이는 까닭은 좌절하지 않는 내면입니다. 좌절하고 나락으로 떨어지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뼈를 깎는 고통의 문턱에서 다시 일어나 아름다운 수필을 빚어 독자들과 공감대를 형성하는 일은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박천규 수필가에게 박수를 보내는 까닭입니다.

* 예술계의 아름다운 이야기, 소개하면 좋을 행사, 예술활동으로 받은 상, 비판받아야 할 사건 등을 제보해 주시기 바랍니다. hs2980@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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