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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도 빌리지 못하는 지도자들의 위험성

[김학용 칼럼] 마키아벨리 “현명치 못한 군주는 남의 의견 못 모은다”

김학용 주필2016.11.03 14:34:25

▲최순실 사건에 대해 사과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오른쪽). 자료사진

지도자에게 필요한 능력은 여러 가지다. 사(私)보다 공(公)을 앞세우는 정의감도 있어야 하며, 어떤 난관도 극복할 수 있는 힘과 용기도 있어야 한다. 국민과 소통할 줄 아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소통의 결과를 가지고 결단을 내릴 줄 아는 판단력도 중요하다.

지도자에겐 어느 것도 빼놓을 수 없지만 가장 중요한 자질은 판단력이다. 정의감이 다소 떨어져도 조직은 돌아가고, 용기가 부족해도 주변에서 도와주면 극복이 가능하며, 소통능력이 떨어져도 일시적으론 지탱할 수 있다. 그러나 판단력이 크게 부족하면 정의감도 용기도 소통능력도 소용없다.

머리 빌리기를 좋아하지 않는 지도자들

한때 YS 때문에 유행했던 말이 있다. “머리는 빌릴 수 있지만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건강의 중요성을 표현한 말이지만, 그보다는 ‘지도자의 머리 빌리기’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말이다. 어떤 지도자라도 조직을 이끌기 위해선 누군가의 머리를 빌려야 한다. 그러나 과연 누구의 머리를 어떻게 빌릴 것인가?

판단력이 뛰어난 지도자와 그렇지 못한 지도자는 남의 머리를 빌리는 방식이 다르지만 대체로 양쪽 모두 남의 머리를 빌리려 하지 않는다는 점은 같다. 판단력이 뛰어난 지도자는 저 혼자 똑똑해서 남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경우가 많으나 사람들 마음을 얻기 위해 빌리는 척이라도 해야 한다. 판단력이 부족한 지도자는 남의 머리 빌리는 것 자체를 부끄러운 일로 여기므로 아무한테나 의견을 듣지 않는다.

판단력이 좋으면 독선적 경향이 있어서 위험하고, 판단력이 부족하면 사리분별을 제대로 못하므로 또한 위험하다. 우리는 똑똑한 정치인의 위험성에 대해선 자주 경험한 편이다. ‘최순실 게이트’는 사리분별이 잘 안 되는 지도자가 가져오는 혼란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를 보여주고 있다.

대통령이 사교(邪敎)에 빠져서 이성을 잃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지만, 근본적으론 대통령의 판단력에 더 문제가 있어 보인다. 판단 능력에 문제가 있는 지도자는 기본적으로 토론을 기피한다. 회의는 사전에 준비된 내용만 가지고 진행되며 기자회견도 미리 짜놓은 각본으로만 진행하는 편이다.

정책 독대 토론 못하는 지도자들, 측근에만 의존

이런 지도자와는 정책 판단을 위한 독대도 힘들다. 사안에 대한 이해와 판단능력이 있어야 실질적인 대화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조윤선 문화체육관광부장관은 정무수석 11개월 동안 대통령을 독대하지 못했다고 한다. 진영 의원은 복지부장관 시절, 크게 논란이 됐던 노인연금 문제를 가지고 대통령을 만나려 했으나 문고리 3인방에게 ‘보고서만 올리라’는 얘기를 들었다. 박 대통령을 가까이서 모셨던 전여옥 씨는 박 대통령은 보고서로만 보고를 받았다며 불통의 정치가 아니라 ‘수동태의 정치’라고 표현했다.

토론과 독대를 잘 못하는 정치인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가 측근이다. 지도자로서 해야 하는 ‘판단 기능’을 소수의 측근들에게 맡겨 처리한다. 판단해주는 사람이 여럿이면 조언 내용이 서로 달라 지도자 본인이 헛갈리므로 소수의 측근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편이다.

일국의 대통령이면 얼마든지 좋은 인재를 모을 수 있으나, 이들 인재가 대통령 자신을 위해 헌신한다는 보장이 없으니 그림의 떡이다. 이 때문에 주로 측근과 비선(祕線)에만 의존하여 조언을 받는다. 문고리 3인방이 벌써부터 국정운영의 장애물로 등장한 뒤에도 대통령은 이들을 내보낼 수가 없었다. 그들이 없으면 대통령으로서 업무수행이 사실상 어렵기 때문이었다.

연설문까지 고쳐주던 측근이 구속되고 문고리 3인방까지 떠났으니 ‘대통령의 판단’을 대행해줄 사람이 없어졌다. 박 대통령이 대통령직을 유지하는 경우에도, 또 다른 최순실을 구할 수 없다면 국민들이 밀어주더라도 대통령직을 정상적으로 수행하는 건 어렵다. 시국의 해법으로 떠오르고 있는 책임총리제는 박 대통령이 반길 일이다.

유능한 지도자라도 측근은 필요하다. 그러나 지도자가 측근의 조언과 보좌를 받는 게 아니라, 지도자 자신이 측근에게 매달려야 할 정도라면 그 결과가 심각해진다. 측근에만 의존하는 지도자는 똑똑한 지도자의 독선보다 피해가 더 클 수 있다.

마키아벨리 “현명치 못한 군주는 남의 의견 못 모은다”

마키아벨리의 조언은 지도자의 조건을 생각해보게 만든다. “군주가 총명하다는 평판을 듣는 것은 그 측근에 훌륭한 조언자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명백한 오해다. 현명치 못한 군주가 남의 의견을 잘 모으지 못 하리라는 것은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군주론>

소속 정당이 차떼기당으로 드러나 비난이 쏟아질 때도 그가 천막당사를 차려 기회를 달라고 간청하면 국민들은 손을 잡아주었고, 병상에서 ‘대전은요’라고 호소하면 또한 호응해주었다. 적어도 그 스스로가 부패 스캔들로 무너질 것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별로 없었다.

‘최순실 게이트’는 국민들이 그동안 보아온 박 대통령의 이미지에 대한 충격의 반전이고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도대체 대통령 자신이 측근과 함께 보란 듯이 국민세금을 도둑질하는 정권이 어디 있나? 이는 도덕성의 문제라기보다 판단 능력의 문제로 보인다. 지금 세상에 권력이 수십 개의 대기업에 수십억 원씩 뜯어내도 무사할 수 있는지에 대한 판단 능력조차 대통령에겐 없는 것 아닌가?

지도자가 측근과 비선의 판단에만 의존하는 조직은 위험하기 짝이 없다. 이런 지도자의 측근들은 음지에서 권력을 휘두르는 셈이다. 대명천지에도 비리와 부정이 난무하는데 음지의 권력이 어떻게 운영될지는 불문가지다. 최순실 게이트는 남의 머리조차 제대로 빌리지 못하는 지도자들의 종말을 보여주고 있다. 측근이 휘두르는 조직은 위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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