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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 이런 식으로 국민대통합 이룰 줄이야..”

[디트의 눈] 광화문 촛불집회 체험기…국민 분노 축제로 ‘승화’

안성원 기자2016.11.13 18:05:27

▲12일 열린 3차 촛불집회에서 광화문 광장을 가득 메운 100만 명의 인파.


연일 최순실 게이트로 인한 보도가 쏟아지고 있다. 꼭 정부와 국회, 검찰 등 중앙발 소식만 있는 게 아니라 지역 곳곳에서도 수시로 시국선언과 촛불집회가 열리고 있다. 그렇다보니 현장은커녕 자료만도 일일이 챙기기가 어려운 실정이다. 

하지만 되도록 그들의 소식을 어떻게든 챙기려 노력한다. 직접 나서진 못할망정 ‘정의’와 ‘민주주의’를 행동으로 실천하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다루는 것이 그나마 ‘기자’라는 직업으로 벌어먹고 사는 이로서 소임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중·고등학생들까지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나온 모습에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사실 지금의 민주주의를 위해 몸 바쳐 이룩한 선배 세대들에 비해 90년대 중후반 학번인 필자는 격랑의 흐름에서 한 발짝 떨어진 채 20대를 보냈다. 그런데 또 다시 대한민국 헌정의 위기가 도래하자, 이번엔 그 선배들의 자녀세대인 10~20대들이 다시 일어서고 있다.

이것이 12일 3차 촛불집회가 열린 서울 광화문 행을 결심하게 된 동기다. 그들의 이야기만 다루는 ‘기자’가 아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내 목소리를 외치고, 우리나라 심장부를 밝힌 100만 개의 촛불 중 하나를 직접 들어보자고 마음먹었다. 따라서 이 글 역시 언론 종사자가 아닌 한 사람의 촛불집회 참가자의 관점을 담았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100만 명 운집, 한 목소리…“박근혜 대통령 하야하라”


많은 언론에서 보도된 바와 같이 이날 모인 인원은 100만 명에 육박했다. 경찰은 26만 명 정도로 추산했지만, 기자가 기억하는 그 어떤 때보다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채웠다. 2014년 교황방문(90만 명) 때나 2008년 광우병(70만 명) 사태, 또 2004년 노무현 대통령 탄핵 규탄(20만 명) 모습과 비교해보면 확연히 차이가 난다. 감히 단언하는데 100만 명 이상이었다. 건국 이래 최대 규모라는 표현에 부족하지 않았다.

지인과 함께 서울역에 오후 5시쯤 도착, 광화문까지 차량이 통제된 거리를 도보로 이동했다. 이미 사전집회의 열기가 무르익고 있던 시점이었기에 곳곳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하야를 외치는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가는 길에 맘씨 좋아 보이는 아줌마의 “미리 요기를 하고 움직여야 한다”는 말에 배를 먼저 든든히 채우고 움직였다. 나중 일이지만, 당시 그 말을 듣길 잘했다고 느꼈다. 집회현장에도 상가와 노점상들이 있었지만 사람이 너무 많아 이용이 어려웠다.

광화문까지 걸어갈 땐 카메라를 들고 관찰자 입장에서 바라보던 그 때와는 느낌이 달랐다. ‘객관적으로 담아야 한다’, ‘다양한 장면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부담을 잊고, 목이 터져라 구호를 외치다 보면 답답한 마음이 조금이나마 풀리는 기분도 든다. 이 광경을 직접 목도하고도 말도 안 되는 궤변으로 민의를 왜곡하려는 이가 있을까? 그 많은 사람들이 한 목소리로 만들어낸 거대한 울림. 그것은 감동 그 이상이었다.

넓은 거리를 빈틈없이 가득 메운 사람들도 진풍경이었지만 생각지 못한 모습들도 눈에 들어온다. 외국인 참가자들도 심심치 않게 목격됐고 숙달된 시위경력자처럼 보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돌도 채 지나지 않은 아이에게 이유식을 먹이며 유모차를 끌고 시위행렬에 합류하는 앳된 부부도 있다. 

교복을 입고 참석한 학생들부터 왠지 지난 대선 때 박근혜 대통령을 뽑았을 것 같은, 콘크리트 지지층이라고 불리던 어르신들까지 다양한 사람들이 박근혜 정권의 퇴진을 외쳤다. 이런 식이라는 게 안타깝지만, 어찌 보면 박근혜 대통령의 원대한 꿈인 ‘국민대통합’이 이뤄진 듯 했다.

역대 최대규모 평화집회…‘분노의 외침’ 아닌 ‘희망의 노래’


무엇보다 가슴을 울린 건 이날 집회에 참가자들이 ‘분노의 외침’이 아닌 ‘희망을 노래’했다는 점이다. 여기저기서 다양한 표현방법이 동원했다. 이쪽에서 신명나는 사물놀이가 벌어지면 저쪽에서는 난타 공연이 펼쳐졌고, 다른 곳에서 락밴드의 샤우팅이 울리면 또 다른 한켠에서는 DJ와 래퍼들이 해학적인 가사로 현 실태를 꼬집었다. 이쯤 되면 ‘시위’라기 보단 ‘축제’라고 봐야할 듯싶다. 

저녁 7시 30분부터 진행된 문화제도 결을 같이 했다. 국민들의 분노가 녹아 있는 공연이었지만 문화예술인들의 무대는 평화집회의 격을 높였다. 불과 1년 전 민중총궐기에서 물대포에 맞아 끝내 숨진 백남기 농민의 모습이 스쳐지나간다. 일부 과격한 언동을 하거나 불안한 조짐을 보이는 취객들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그 때마다 ‘하지 말라’는 목소리들이 폭력사태의 우려를 잠재웠다.

중간 중간 거리의 쓰레기를 줍는 이들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텐트농성을 이어가며 밤을 새는 이도 있었고, 자유발언과 흥이 어우러진 ‘난장’도 집회의 여운을 달래줬다. 필자와 일행들도 예매했던 11시 30분 KTX 막차 기차표를 취소하고 이 거대한 흐름에 몸을 맡겼다. 비록 첫차를 기다리기까지 추위와 졸음과 싸워야 했던 어려움이 있었지만, 후회는 없다.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한 페이지를 장식할 역사의 현장에 함께 했다는 자부심, 그리고 성숙해진 시민의식 속에서 엿보았던 미래세대에 대한 기대감을 가슴에 담아올 수 있었다. “대한민국의 주인은 국민이다”라는 외침이 여전히 귓가에 맴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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