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국가 건설 원칙 흔들려선 안 돼

“수도권의 지나친 집중에 따른 부작용을 해소하기 위하여 새롭게 조성하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건설 방법 및 절차를 규정함으로써 국가의 균형발전과 국가경쟁력 강화에 이바지한다.”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을 위한 연기‧공주지역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이하 행복도시특별법) 제1조는 행복도시 건설의 취지와 이를 위한 특별법 제정의 목적을 설명하고 있다.

행복도시특별법은 노무현 대통령 유훈

이충건 | 세종포스트 대표 겸 편집국장
국가균형발전은 고(故)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가 추구한 제1의 국가목표였다. 행복도시는 그 상징과도 같은 도시다. 국무총리 책임 아래 특별회계를 두고 국가기관이 도시를 주도적으로 건설하도록 한 이유다. 노 전 대통령은 행복도시가 ‘팔로우 미(follow me, 나를 따르라)’하고 혁신도시들이 ‘팔로잉(following, 따르는)하면 국가균형발전의 기반 정도는 마련될 것으로 봤다.

대통령이 임기 5년이란 제한적 시간 동안 자신의 국정철학을 모두 실행에 옮길 순 없는 노릇이다. 노 전 대통령은 누구보다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어떤 일이든 임기 동안 끝을 보려고 서두른 적이 없었다. 행복도시로 대변되는 국가균형발전도 그랬다. 정권이 바뀌더라도, 정권의 의지와 방향이 변하더라도 국토가 균형 있게 발전할 수 있는 토양만은 만들어놓고 싶어 했다.

노 전 대통령은 2030년까지 행복도시가 완성되고 지방의 혁신도시들이 그 뒤를 받쳐주면 전 국토가 어느 정도는 균형 있는 모양새가 될 것으로 판단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행복도시특별법에는 노 전 대통령의 국가균형발전에 대한 철학이 녹아 있다고 봐야 한다.

누가 특별법을 누더기로 만들려 하나

행복도시특별법을 ‘누더기 법’으로 만들려는 세력이 있다. 행복도시가 잘 되는 걸 두 눈 뜨고 못 보겠다는 심보다. 행복도시가 성장할수록 견제와 질시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반증이다.

충북 청주시 청원구가 지역구인 변재일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지난 4일 행복도시특별회계(이하 행특회계)로 광역계획권사업에 재정 지원을 할 수 있는 내용의 특별법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변 의원은 ‘빨대현상(인접 도시의 인구를 흡수하는 현상)’ 등을 거론하며 수도권 과밀화해소와 국토균형발전이란 행복도시 건설의 목적까지 부정했다.

메트로폴리스(metropolis)를 꿈꾸는 오송‧오창의 이익을 충실히 대변해야 하는 변 의원의 입장을 모르는 바 아니다. 하지만 행복도시가 당초 취지대로 완성돼야 수도권에 버금가는 메갈로폴리스(megalopolis)가 한강 이남에 조성될 수 있다는 대의명분이 먼저다. 인구 이동현상을 침소봉대해 행복도시 성장을 가로막으려는 시도는 인접지역의 이익에도 결코 도움이 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대전 출신 신용현(국민의당, 비례) 의원이 제출한 행복도시특별법 개정안은 반갑다. ‘신용현 개정안’은 행정자치부장관이 미래부 이전계획을 수립해 관보에 의무적으로 고시하도록 명시하고 있다. 미래부는 고시된 이전계획에 포함되지 않았다는 이유로 세종시 이전을 미뤄왔다.

전북 군산 출신 김관영 의원(국민의당)에게도 응원을 보내고 싶다. 그는 19대 국회에서 행정자치부를 세종시 이전 대상기관에서 제외하고 있는 행복도시특별법 조항을 삭제하는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었다. 20대 국회에 재입성한 그는 지난 7월 25일 다시 개정안을 제출했다.

김 의원은 지난 2014년 4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국토균형발전과 행복도시특별법 제정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방안이 무엇인지 고민했다”며 “대한민국 중앙행정기관의 주무부처인 행자부가 세종시로 이전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판단했다”고 밝힌 바 있다.

소지역주의보다 더 무서운 내부의 적

더 무서운 건 내부의 적이다. ‘변재일 개정안’은 소지역주의로 치부하더라도 이해찬 의원이 지난달 28일 대표 발의한 개정안은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내 눈엔 ‘이해찬 개정안’이 행복도시가 국가 주도로 건설돼야 한다는 노 전 대통령의 유훈(遺訓)에 정면으로 배치하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참여정부에서 초대 행복청장을 지낸 이춘희 시장이 이에 부화뇌동하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

‘이해찬 개정안’ 중 가장 큰 쟁점은 행복청이 수행 중인 14개 지방사무를 세종시로 이관하는 내용이다. 혹자는 국가기관이 지방사무를 시민이 선출한 시장에게 돌려주는 게 왜 논란거리냐고 반문할 것이다. 그리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세종시는 2012년 출범했지만 시장이 시장다운 권한을 전부 행사하지 못한다. 행복도시특별법이 행정중심복합도시 예정지역 – 우리가 통칭 행복도시라고 부르는 –을 일반법의 영향을 초월한 ‘특례지역’으로 정해놓고 있어서다. 인근 대전을 예로 들면 세종시장의 지위는 행복도시 안에서만큼은 시장이라기보다는 구청장일 때가 많다. 현행 행복도시특별법은 가령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을 적용할 때 행복청을 광역자치단체로, 행복청장을 광역자치단체장으로 간주하도록 돼 있다.

법 적용에 있어 특별법 우선의 원칙이란 게 있다.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은 일반법이어서 17개 시도에 모두 영향을 미치지만, 행복도시특별법은 행복도시에 적용 영역이 한정돼 있다. 오직 행복도시 건설을 위해서만 효력이 발생하고, ‘국토의 계획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 우선한다. 이런 식으로 행복청장은 15개의 일반법이 규정한 범위를 벗어나 시장의 권한을 대신한다. 때로는 행복청장이 국토부장관의 권한까지 행사할 수 있다.

‘이해찬 개정안’은 행복청장이 행복도시에서 행사하는 권한, 즉 특례조항을 폐지하는 내용이 뼈대다. 행복청장이 가진 권한을 빼앗아 시장에게 돌려주자는 얘기다. 세종시장이 온전히 시장다운 권한을 갖도록 하자는 거다. 내가 ‘이해찬 개정안’을 행복도시 정상 건설보다 정치적 이해관계를 우선했다고 보는 이유다.

국가차원의 도시, ‘특별법 원칙’ 깨지면 안 돼

행복청은 특별법에 근거해 한시적으로 조직된 국가기관이다. ‘이해찬 개정안’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특별법에 근거해 조직된 행복청이란 한시적 국가기관의 용도가 폐기할 때가 됐어야 한다. 이 의원이나 이 시장은 지금이 적기라고 보는 듯하다. 나는 단연코 아니라고 본다. 아이가 빨리 보고 싶다고 조산아(早産兒) 낳으라고 할 수는 없지 않은가.

행복도시가 온갖 견제와 질시를 받으면서도 꿋꿋하게 제 길을 갈 수 있는 것은 국가가 건설하는 도시라는 명분이 있어서다. ‘변재일 개정안’ 같은 소지역주의와 지역 간 형평성을 운운하는 편협한 지방자치 관점에 맞설 수 있는 힘이 특별법에서 나온다고 나는 생각한다.

특례조항을 삭제하는 순간 행복도시는 17개 광역자치단체 중 하나, 즉 세종시 차원의 도시가 된다. 그런 점에서 ‘이해찬 개정안’은 행복도시를 세종시란 지자체에 완벽하게 통합시키겠다는 의도에 불과하다. 행정적 사실을 초월해 누려왔던 행복도시의 위상을 축소하는 결과가 초래될 게 불 보듯 빤하다.

이 의원이나 세종시는 행복청(장)의 특례적 권한을 없애도 국가예산 확보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런 궤변이 어디 있나. 예를 들어 세종아트센터나 국립박물관단지는 애당초 경제적 타당성이 나올 수 없는 시설이었다.

세종아트센터는 기재부가 아무리 양보해도 대극장 700석짜리 외관만 번지르르한 시민회관에 그쳤을 것이다. 국립박물관단지도 마찬가지다. 기재부는 아트센터의 예비타당성 재조사와 국립박물관단지 예비타당성조사를 하면서 경제성분석(B/C)이란 단순계산방식이 아닌 조건부 가치측정(CVM, 의견조사)을 적용했다. 이 과정에서 기재부가 왜 ‘묘안’을 짜냈는지를 곰곰이 되짚어봐야 한다. 행복도시가 국가차원의 도시로 건설돼야 한다는 ‘특별법 원칙’이 추호도 흔들려선 안 되는 이유다.

행복도시 건설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지지부진한 문제는 시민의 힘으로 정권을 바꾸면 해결될 일이다. 국가균형발전이란 국정철학을 가진 정권, 행복도시를 그 상징도시로 건설할 사명감을 가진 정권을 창출하면 된다. 아직 갈 길이 멀다.

세종시-행복청 업무논란, 관점부터 잘못

이해찬 의원이 불 지른 세종시와 행복청의 업무 논란은 관점부터 잘못됐다. ‘권한’을 ‘밥그릇’으로 본 정치적 셈법의 산물로 규정할 수밖에 없다.

행복도시특별법은 국무총리가 최종 책임자로서 각 부처의 장관을 지휘해 차질 없이 행복도시를 건설하도록 돼 있다. 지금까지 어떤 총리가 이 책임을 다했는지 되물어야 한다. 이 의원은 국무총리, 그것도 참여정부에서 책임총리를 2년이나 한 신뢰가 있기 때문에 시민들로부터 선택받았다. 거물정치인답게 국가를 움직이는 통 큰 정치를 해야 한다. 참여정부가 왜 행복도시를 건설하려했는지를 되돌아봐야 한다.

지난 20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이해찬 의원은 이렇게 말했다. “세종시 완성이 마지막 소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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