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헌석의 예술계 산책] 고향 그리워하는 김선자 시인 첫 시집

김선자 시인은 세상의 풍파를 스스로 견뎌낸 사람이다. 두 아들을 데리고 편모 ‘워킹맘’으로 살아내는 현실의 고통을 극복하고 아름다운 시를 빚고 있다.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 주는 밀가루를 받으며, 임대 아파트에 입주하며, 때로는 부끄러움과 질시(嫉視)로 세상에 분노했을 수 있었을 터이다. 그렇지만, 타고난 천성이 긍정적이어서, 나보다 남을 배려하며 살아냄으로써 시인의 길에 올랐고, 첫 시집 『대청호 연가』를 발간하여 보람의 문턱을 넘었다.

리헌석 전 대전문인협회장·문학평론가 겸 아트리뷰어
충남 대덕군 동면 마산리(대전광역시 동구 마산동)에서 태어난 김선자 시인의 고향은 ‘대청호’이다. 그가 다닌 동명초등학교는 ‘대청호’ 물속에 잠기게 되어 산 위로 이전하였고, 동신중학교는 아예 대전광역시 동구 용운동으로 이사를 하였다. 나고 자란 어머니 집도 대청호 물결이 출렁이는 곳에 있어, 그의 추억과 서정은 대청호를 바탕으로 형성된다.

사회적 질시 이겨내고 창작에 몰두한 보람

그의 꿈은 시인이었다. 어려서부터 ‘시인’이 되려는 꿈을 가꾸어온 그는 독서에 집중하여 부모로부터 꾸중을 들었다고 회상한다. 후일 아들 형제를 양육해야 하는 편모 ‘워킹맘’이 되어 고달픈 생활을 할 때에도, 그의 가슴에서 자라는 ‘시 창작의 열정’으로 ‘삶의 고단함’을 극복할 수 있었다고 회고한다. 견딜 수 없는 고통이 일어날 때마다 고향을 찾아 심리적 안정을 구했다고 한다.

언제나 그 자리에서
실향의 아픔을 달래주는
깊고 넓은 가슴을 만난다.

하늘을 닮아서일까
순박한 사람들이
떼어놓고 간 속정 때문일까

수많은 애환을 품어 안고도
해맑게 웃기만 하는
대청호, 너를 닮고 싶다.

저기 저 은빛 물비늘에
얼룩진 마음을 내려놓는다.
          ― 「대청호 연가 2」 일부

편모 워킹맘 김선자 시인과 시집
삶에 지칠 때마다 그는 서정의 고향인 ‘대청호’를 찾는다. 그럴 때마다 대청호는 언제나 그 자리에서 실향의 아픔을 달래준다. <하늘을 닮아서일까/ 순박한 사람들이/ 떼어놓고 간 속정 때문일까> 그는 대청호에서 마음의 평화를 얻는다. 살아가면서 수많은 애환으로 아파하고 좌절하였을 터이지만, 그는 대청호에 <얼룩진 마음>을 내려놓는 것으로 새롭게 거듭나게 되는 것이다.

「대청호 연가」는 6편의 연작시다. 그가 대청호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대청호에서 얼마나 위안을 받는지, 정서적 위상이 작품 속에 녹아 있다. <이름 모를 풀꽃들과 도란대는 새소리/ 하늘빛 대청호에 자박거리는 발걸음은/ 추억>이 되어 그를 부른다. <어린 시절/ 잃어버린 한 쪽 고무신은/ 어느 용궁 속에 둥지>를 틀었을까 동심에 젖게 한다. <실향민이 된/ 질곡의 세월/ 타향에서 흘린 눈물>을 위안 받는 곳이기도 하다. 대청호 안개가 걷히면 그의 <작은 소망>도 날개를 펴리라는 믿음으로 고향 대청호를 자주 찾는다. 그러나 대청호를 떠나 현실로 돌아오면 도시의 외로움이 그를 맞는다.

그는 1988년부터 두 아들의 엄마로서 직업 전선에 나선다. ‘보험설계사’가 되어 고객의 미래생활을 돕는 역할에 충실하던 어느 날 ‘일터’에서 아이들이 기다리는 집으로 돌아오는 상황의 형상화이다. <도시의 네온사인을/ 한 입 베어 문 심장>은 호화찬란하고 따듯해야 할 터인데도, 시인의 가슴에는 <차가운 별들>이 떨어진다. 이는 <하루의 희로애락을/ 툭툭 털어내며/ 돌아오는 발길>의 이미지와 결합하여 고달픈 날의 ‘귀가(歸家)’임이 드러난다.

꽃잎은
떨어져도
울지 않고

낙엽은 지면서도
춤을 춘다.

지천명으로
내달리는 이 밤

가슴은 통곡하지만
그래도
웃고 싶다.
          ― 「그래도」 전문

김선자 시인은 젊었을 때에 체험한 눈물의 홍수를 지천명(知天命, 50세)에 이르러 스스로 건넌 듯하다.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사색을 통해 관조적 경지에 이른 듯하다. 꽃잎이 떨어져도 울지 않는다. 낙엽이 지는 것을 보며 애상하던 시인이 오히려 ‘춤을 춘다.’고 노래한다. 그의 가슴에는 아직 통곡(痛哭)할 일이 조금쯤 남아 있겠지만, 스스로 감내하며 극복하고자 한다. 그 아픔마저 문학작품으로 승화시키며 일터를 향하는 발걸음이 가벼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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