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 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14>병원(病院)의 시작

병원은 종교적 자선을 목적으로 중세 기독교의 보급과 더불어 세계각지에 생겨났다는 것이 정설이다. 어원(語源)도 라틴어의 손님을 뜻하는 호스페스(hospes)에서 비롯됐듯 정확히는 교회부설 숙박시설이 그 기원이다.

가장 오래 된 것은 500년경 스리랑카에 설립된 것이고, 기원전 370년 소아시아 카이사리아의 주교 바실리우스의 기독교 병원, 또 260년 경 인도에도 병원들이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4세기 로마에서는 개인 자선가였던 마르셀라와 여성 파비올라가 자신의 저택을 병동으로 개조해 병자와 걸인들을 구제했고 세계 각처의 로마군 막사에도 부상병들을 위한 병원 구역이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가 병원이라고 부르는 것과 가장 비슷한 최초의 병원은 542년 프랑크 왕국의 실드베르 1세가 리옹에 세운 오텔-디외(Hotels-Dieu, 하나님의 병원)였다. 그 뒤로 파리에, 또 변두리에는 나병환자들을 위한 병원이 건축됐다.

한센병(나병) 전용 병원은 1179년 라테란 종교회의에서 당시 만연하던 나병환자 구제를 위한 규정을 제정하면서 설립됐으며, 13세기에는 유럽 전역에 1만 3000개나 있었다. 14세기 때부터 페스트(흑사병)가 유행하자 같은 조치가 취해졌다.

영국에서는 1066년 정복왕 윌리엄의 노르만 군대가 침입한 후에야 일반 환자와 부상병을 위한 병원이 설립되기 시작했다. 프랑스보다 500년이나 늦은 1123년 윈체스터의 세인트 크로스 병원과 런던의 세인트 바솔로뮤 병원이 설립됐고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12세기 중반 바그다드에는 이미 60개가 넘는 병원이 건립돼 있었다. 이중 1283년 카이로에 세워진 알-만수르 병원은 그 당시 이미 질병별 환자 분리, 식이요법, 외래 진료실, 회복기 병동은 물론 도서관과 대강당 등을 엄청난 기부금으로 갖추고 있었다.

병원에 의사가 근무하기 시작한 것은 먼 훗날의 일이다. 중세기에는 의료가 귀족들만의 특권이었고 병원은 환자를 진료하는 곳이라 보기보다 고아, 빈민, 노인, 불구자를 위한 단순한 수용시설에 불과했다. 무엇보다 매우 혼잡하고 불결하며 비위생적인 곳이었다.

영국을 제외한 유럽대륙은 14세기부터, 영국은 18세기가 되어서야 의사가 주 1-2회 임시로 근무하게 됐다. 병원에 전임의사가 근무하기 시작한 것은 16세기의 프랑스가 효시다.

18세기 시민혁명과 산업혁명 이후 평민과 노동자를 위한 시민병원이 신‧구대륙에 많이 설립되었는데 병원수의 급증으로 환자 간호를 수녀 대신 잡역부가 담당하게 되면서 병원이 비위생적이고 비인도적인 상태로 전락했다.

때맞춰 영국의 간호사인 플로렌스 나이팅게일(1820-1910)이 과학적인 의료, 인간적 간호, 직업 간호사 제도, 의료를 중심으로 한 병원관리 등을 주장하면서 근대적인 병원의 개념이 만들어졌다. 또한 마취학과 멸균 소독법이 개발되어 외과적 수술법이 발전하자 부유계층도 병원을 이용하게 됐다.

이후 20세기 전반에 이르기까지 세균학, 병리학, 생리학, 유기화학 등이 발전하여 항생제의 사용은 물론 임상검사 기능 및 방사선 검사가 출현했다. 비타민이 발견되고 병원식이의 개념이 수립된 것과 더불어 1920년대 미국에서 일어난 병원 표준화 운동은 병원의 시설, 장비, 의료 기술 수준의 향상을 가져왔다. 근대적인 간호교육과 병원 관리학의 발달, 병원 관리자의 양성을 통해 병원의 현대화를 촉진했다.

우리나라에서도 환자를 수용하는 동서 대비원이 고려 때부터 있었고 광혜원이나 혜민원 같은 의료시설이 조선조에 한방치료로 환자 진료를 담당해 왔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양식 의료기관은 1885년(고종 22년) 2월 29일 미국 북장로 교회 선교의사인 N.H 앨런이 설립한 왕립 광혜원이다. 그는 1886년 의학 교육부를 부설하여 한국최초로 16명의 학생을 뽑아 현대의학 교육을 시작했다. 또 미국 클리블랜드의 사업가인 세브란스가 기부하여 착공한 한국 최초의 서양식 세브란스 병원이 1904년 준공돼 후에 연세대학교의 전신이 되었다.

한편 우리나라에서는 1899년 3월 28일 한국 종두법의 창시자인 지석영을 원장으로 하는 관립 의학교가 설립된데 이어 같은 해 4월 24일 최초의 국립병원이라 할 내부병원도 세웠다. 1900년 7월 9일 광제원으로 이름이 바뀐 관립 내부병원은 일반환자 진료 외에 전염병이나 죄수들을 치료하는 일을 했는데 이후 1907년 3월 10일 칙령 제9호에 의해 의학교육과 진료를 동시에 수행하게 되었다.

그러나 1910년 9월 30일 한일 합방 후 대한의원은 조선 총독부 의원으로, 1923년에는 한반도에 처음으로 설립된 대학인 경성 제국대학의 의학부 부속의원으로 바뀌었다. 이후 1928년 6월에는 경성의학 전문학교 부속의원이 따로 개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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