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의 눈] 물러날 줄 아는 리더십의 차이

지난 2014년 한국을 방문한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청와대를 방문, 박근혜 대통령과 산책하고 있다. 백악관 홈페이지

#1. 미국 대통령선거에서 트럼프가 승리한 뒤인 지난 9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150여 명에 이르는 백악관 직원들을 자신의 집무실 앞 정원으로 불러 모았다. 그리고 약 9분에 이르는 연설을 시작한다. 직원들은 대부분 침통한 표정이었고, 일부는 흐느끼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오바마는 8년 전 부시대통령이 자신의 팀에게 품위 있게 권력을 이양했듯, 자신의 팀도 그렇게 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게 민주주의의 전형적 모습이라고 했다. 그 모습을 세계에 보여주자고도 말했다. 연설의 말미, 그의 어조는 더욱 단호했다. 그는 자신이 릴레이 주자에 불과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대통령이라는 직업은 릴레이 주자와 같다. 바통을 받아서 최선을 다해 달린 뒤 다음주자에게 건넬 때는 조금 더 진전을 이뤘길 바라는 것이다. 나는 우리가 그것을 잘 해냈고, 이제 다음 주자에게 잘 넘겨주고 싶다. 왜냐하면 결국 우리 모두는 같은 팀이기 때문이다.”

임기를 불과 2개월 남겨 둔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 버락 오바마. 그는 아직도 57% 지지율을 기록하며 국민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물러날 줄 아는 리더십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2. 박근혜 정부를 나락의 구렁으로 몰아넣은 최순실이 검찰에 구속된 직후인 지난 4일. 박근혜 대통령이 청와대 춘추관에 초췌한 모습으로 나타나 카메라 앞에 섰다. 열흘 전 2분짜리 녹화방송으로 사과메시지를 발표했지만, 여론은 냉담했다. ‘물러나라’는 요구가 더욱 거세진 뒤였다. 

이번엔 9분 짜리 원고를 준비했다. 박 대통령의 목소리는 심하게 흔들렸고 중간에 눈물까지 흘렸다. 그는 청와대에 들어온 뒤 가족과 교류마저 끊고 외롭게 지내왔는데, 최순실로부터 도움을 받고 왕래하게 됐다고 했다. 최순실에 대해서는 “가장 힘들었던 시절에 곁을 지켜주었기 때문에 스스로 경계의 담장을 낮췄던 것이 사실”이라고 끝까지 연민의 정을 놓지 않았다. 

스스로를 용서하기 어렵고 서글픈 마음까지 들어 밤잠을 이루기도 힘들다느니, 국민들의 마음을 달래드리기 어렵다는 생각을 하면 내가 이러려고 대통령을 했나, 자괴감이 들 정도로 괴롭다느니. 자신을 한탄하는 언사를 이어갔다. 

결론은 국정혼란과 중단을 막아달라는 것이었다. 대통령직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달라는 읍소와 다름없는 이야기였다. 박 대통령은 사과담화의 끝을 이렇게 끝맺는다. 

“대통령의 임기는 유한하지만 대한민국은 영원히 계속돼야 한다. 더 큰 국정 혼란과 공백상태를 막기 위해 진상 규명과 책임 추궁은 검찰에 맡기고 정부는 본연의 기능을 하루속히 회복해야 한다. 국민들께서 맡겨주신 책임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사회 각계의 원로들과 종교 지도자들, 여야 대표와 자주 소통하면서 국민 여러분과 국회의 요구를 더욱 무겁게 받아들이겠다.”

임기를 1년 3개월 여 남긴 한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 박근혜. 그는 5% 지지율로 사실상 식물 대통령으로 전락했다. 가면을 벗은 권력의 민낯. 그 속에서 ‘리더십’을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3 표현의 방식은 다르지만, 버락 오바마와 박근혜 대통령은 ‘권력의 유한함’을 인정하고 국가는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일맥상통한 주장을 폈다. 이런 측면에서 오바마는 대통령을 “릴레이 주자”라고 표현했다. 

그런데 박근혜 대통령은 스스로 ‘릴레이 주자’임을 망각한 모양이다. 달리기는 최순실과 청와대 참모들이 했고, 자신은 선수들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감독에 불과하다는 인식을 드러낸다. 선수를 바꿔 다시 출전하겠다는 의지도 엿보인다.  

이 대목에서 분명한 인식이 필요하다. 릴레이 경기의 심판인 국민들은 ‘박근혜 팀’에게 퇴장을 명령했다. 관중들도 반칙으로 실격한 선수에게 “당장 운동장 밖으로 나오라”는 야유를 보내고 있다. 그런데도 이 ‘팀’은 좀처럼 바통을 내려놓지 않고 경기장을 거슬러 역주행하고 있는 중이다. 

국민들은 분노를 넘어 창피함까지 느끼고 있다. 경기에서 졌지만, 끝가지 페어플레이를 하고 있는 오바마와 그의 팀이 부러운 이유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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