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구 박사의 그림으로 만나는 천년 의학여행] <16> 항생제와 백신의 발견

이승구 선병원재단 국제의료원장 겸 정형외과 과장.

1928년 영국 런던대학 세인트 메리 실험실에서 유행성 독감을 연구하던 미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세균배양검사에서 특이한 곰팡이를 발견한다.

같이 배양하던 맹독성 감염균인 포도상 구균을 포함해 박테리아를 다 죽인 채 혼자 남은 이 푸른곰팡이 균은 이후 페니실리움 노타툼(Penicillium Notatum)으로 명명됐다. “수천가지 곰팡이와 세균들 중 푸른곰팡이를 찾아낸 것은 복권에 당첨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플레밍의 회고다.

탁월한 항생제인 페니실린이 빛을 보기까지는, 페니실린을 분비하는 푸른곰팡이를 발견한 후에도 12년이라는 긴 연구기간이 필요했다. 커다란 수조 속에서 곰팡이를 배양 시 공기가 필요하고 공기를 수조 속에 불어 넣을 때 다른 세균이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그 기술을 습득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마침내 1939년 제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1940년 치료용 주사제로 만들어져 전쟁 중 수많은 군인들의 목숨을 건졌다. 플레밍은 이를 기초로 페니실린 농축과 정제에 성공한 옥스포드 대학의 병리학자 하워드 월터 플로리, 생화학자 에른스트 보리스 체인 두 사람과 함께 인류의 질병치료에 공헌한 업적으로 1945년 노벨의학상을 받았다.

아이에게 백신주사를 맞히는 주치의(1807년, 루이 레이폴드 부알리, 런던 웰컴 도서관 소장).

페니실린의 발견으로 20세기 가장 많은 희생자를 낸 독감, 기관지염, 급성 폐렴 등 일단 걸리면 사형선고나 다름없었던 당시의 호흡기 감염증은 대폭 줄었다.

금세기 초 50세에 불과하던 인류의 평균 수명이 최근 80세 안팎까지 높아진 것도 페니실린을 필두로 한 항생제와 각종 예방백신 개발의 기여가 컸다. 페니실린은 인간의 병을 치료하기 위해 미생물을 이용한 최초의 약이다.

16세기경 멕시코가 페루 등 남미 국가들을 정복하고 식민지화하면서 유럽에 천연두가 창궐했다. 당시 특별한 치료제가 없었는데 고향인 버클리에 개업한 영국의사 에드워드 제너(1749-1823)가 동네의 우유 짜는 부인이 천연두에 걸린 소에게 감염됐지만 인간에게 이환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냈다.

그는 천연두에 걸린 소에게서 고름을 짜내 8세 소년에게 주입했다. 동물실험조차 거치지 않은 생체실험이었던 셈. 다행히 이 소년은 천연두에 면역기능을 갖게 됐다. 소의 천연두 균은 인간 천연두 균보다 독성이 약해 심각한 부작용 없이 항체를 생성해줬던 것이다. 이것이 천연두 백신의 시초다.

튜브 삽입(1904년, 조르쥬 쉬코토, 파리박물관 소장)

백신주사는 많은 유럽 아이들을 구했다. 백신이라는 용어는 라틴어로 소를 뜻하는 바카(vacca)에서 비롯됐다. 그림에서는 백신주사 시 흥미나 두려움을 보이는 아이들의 표정이 이채롭고, 더욱 우스운 것은 소 백신을 맞으면 여자는 소를 낳거나, 사람들도 신체의 일부가 소같이 변한다는 내용의 신문 삽화들이 나돌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인류는 20세기 초 후천성 면역 결핍증후군인 에이즈(AIDS)를 필두로 기존 페니실린이나 최신 항생제로도 전혀 듣지 않는 새로운 감염 질환에 직면에 있어 끊임없는 해결 노력을 요구받고 있다.

중국에서 창궐한 조류독감에 의한 중증 호흡기 질환인 사스(SARS), 영국에서 발병한 소나 인간의 광우병(crazy cow), 2012년 9월 24일 이집트 알리 모하메드 자키 박사가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처음 발견한 메르스 코로나 바이러스에 의한 중동 호흡기 증후군(MERS), 현대의 어떤 항생제에도 듣지 않는 슈퍼 박테리아 등이 그 사례다. 문명의 발달과 환경의 변화가 의학계에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주문하고 있는 것이다.

에드워드 제너의 소 백신을 맞으면 소 괴물이 된다는 1800년대 초창기 신문삽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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