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의 팔자 고치는 좌우명] <7> 세계는 넓고 할일은 많다

풍운의 사업가 김우중(金宇中) 전 회장은 1970년대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약 30년 간 한국 경제의 외연확장에 힘을 기울인 인물이다. 그는 고생스런 초반을 보냈으며 중년기에는 세계를 누비는 대 사업가가 되었고, 말년에는 떠도는 나그네의 삶을 살게 되었다. 그는 인생의 쓴맛과 단맛을 철저히 본 인물이다. 아마 삶에 대한 느낌이 남보다 많으리라.

철학박사·중화서당 원장
그는 1936년 12월 19일 대구에서 태어났다. 6·25 전쟁 때 아버지가 납북되어 15세에 홀어머니를 모시고 소년가장의 역할을 하면서 살았다. 휴전이 되자 서울로 와서 경기중학교와 경기고등학교를 다녔다. 1960년에 연세대학 경제학과 졸업하여 한성실업에 근무하다가 32세가 되던 해인 1967년에 충무로에서 대우실업을 창립하였다. 이때 단 2년 만에 국내기업 가운데 제1호로 미국지사를 설립하기에 이른다. 1970년대 초부터 사세를 확장시켜 대우건설, 대우증권, 대우전자, 대우조선 등을 창립하였다. 그러다가 1982년 1월에 대우그룹을 설립하였으며, 이듬해에는 새한자동차를 기반으로 대우자동차를 세운다.

그는 타고난 비즈니스 감각과 근면성을 가졌다. 국내 사업이 안정되자 그는 해외진출을 계획하였다. 1989년에는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라는 자서전을 발간해 해외사업에 대한 자신의 열망을 내보였다. 1993년에는 세계경영을 선포하고 해외사업체를 적극 설립하여 글로벌 그룹의 총수로 변신한다. 1998년이 되자 대우그룹은 국내 재계 순위 제2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그러다가 1997년 IMF 구제금융의 여파로 사세가 기울기 시작하여 주요사업체들이 해체되어, 마침내 1999년에 이르러 김우중 회장은 경영포기를 선언하기에 이른다.

김우중 회장의 좌우명
김우중 회장은 뜻이 작은 사람들에게 큰 용기를 주었고 국제사회에도 긍정적인 기여를 한 점이 있다. 그러나 지나친 의욕이 초래한 무리한 사업 확장, 그로인한 부채 증가, IMF 구제금융의 여파, 그리고 국내 상황에 대한 판단 미숙 등이 시발점이 되어 대우그룹과 김우중은 비운을 맞고 말았다. 

세상에 알려진 그의 사주를 보면 그의 주체는 양의 토, 즉 무토(戊土)이다. 한겨울의 토로 화(火)를 절실히 요구하는 모양을 하고 있다. 요구가 너무 절실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하게 된다. 그의 좌우명은 ‘세계는 넓고 할 일은 많다’이다. 그의 삶은 좌우명처럼 세계를 무대로 동분서주하면서 사업을 벌였다. 그 결과 대우그룹은 일시적으로는 글로벌기업으로의 위상을 확보하는 듯하였지만, 결국에는 몰락의 길을 걷고 말았다. 겨울토인 그가 살아남기 위해 너무 극렬하게 움직인 탓에 그는 타고난 그릇보다 너무 큰 스케일의 삶을 살았다. 그것은 그의 좌우명이 그의 사주팔자에 비해 너무 컸음을 의미하기도 한다.

김우중 회장의 경우에는 내실을 다지는 삶을 살아야 할 사주다. 그러나 그는 내국보다는 해외, 실속보다는 외적인 규모를 확장하는데 너무 집착하였다. 그의 사업실패는 여러 요인 때문이었지만, 그의 타고난 그릇에 맞지 않는 경영스타일, 그리고 너무 큰 야망을 심어준 그의 좌우명도 몰락의 한 요인이 되었다. 증상에 맞지 않는 약은 몸에 해가 되듯이, 사주에 맞지 않는 좌우명은 도리어 삶에 해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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