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연희의 미디어창] <122>

조직에서 인사문제만큼 구성원을 울고 웃게 만드는 것이 있을까 싶다. 특히 공무원들은 승진만 바라보고 일한다고 할 정도로 승진에 예민하다. 동기라도 승진이 빠른 사람은 연봉에서 수백만 원의 차이가 생기는가 하면 퇴직 후 연금 차이로 이어져 승진에 목을 맬 수밖에 없다. 몇 년 째 승진에서 미끄러진 대전시 한 공무원은 "승진을 위해 죽는 시늉이라도 할 걸 그랬다"고 후회했다.

임연희 교육문화부장
선출직 단체장들은 종종 열심히 일하는 직원이 우대받는 공직사회를 만들겠다며 연공서열을 파괴한 발탁인사를 하는데 성공을 거두는 경우는 드물다. 직원들이 두루 인정하는, 정말 열심히 일하는 사람을 발탁해야 하는데 '연줄'을 통한 특혜성 인사를 발탁이라고 포장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조직의 내부질서가 무너지는 것은 물론이고 직원들의 불만도 크다. 다음 인사에서 불이익을 당할까봐 말을 안 할뿐 인사의 성패는 직원들이 가장 먼저 안다.

지방자치 최대 문제점 “단체장의 인기 위주 전시행정과 정실인사”

얼마 전 충남대 육동일 교수가 조사한 '지방자치 25년 성과평가'를 보면 지방자치의 가장 큰 폐단으로 단체장의 인기 위주 전시행정과 정실인사가 단연 1위였다. 대전시는 말할 것도 없고 산하기관, 교육청까지도 인사 때마다 직원들의 불만이 적지 않은 걸 보면 각 조직마다 인사 원칙과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하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겠다.

대전시와 산하기관에서는 기관장과 '코드'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해임하는가 하면 내부의 문제점을 외부에 알렸다고 인사조치 했다. 조직 내에서 불미스러운 일이 생겨도 쉬쉬하며 덮고 아무렇지 않은 듯 사고 당사자를 정규직으로 전환해줬다. 산하기관을 관리 감독해야 할 시청 직원들은 퇴직 후 옮겨갈 자리 욕심에 감시보다는 줄 대기에 급급하다. 언론을 통해 문제가 드러나면 시의원들은 기사를 줄줄 읽어가며 호통 치지만 뒤로는 청탁의 손길을 뻗친다.

교육청은 어떤가. 연말 대규모 승진 인사를 앞두고 누구 인맥의 누가 승진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승진 대상권에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순번은 순번일 뿐 '빽'으로 누가 끼어들지 모른다"며 불안해한다. 누구 라인의 누가 어느 자리에 내정됐다는 구체적 이야기와 함께 탈락이 예상되는 사람들의 원성이 높다. 교육감은 아직 승진 대상자의 명단도 못 봤다지만 인사 문제를 지적하는 탄원서까지 돌고 있으니 문제다.

대전교육청의 인사문제를 조목조목 짚은 탄원서에는 "국민권익위원회가 발표한 종합청렴도에서 대전교육청이 전국 17개 시·도교육청 중 15위인데 내부청렴도는 인사 분야에서 낮은 점수를 기록해 16위"라며 "가장 공정해야 할 인사 분야가 내부 조직원들에게 신뢰를 잃어 끝없이 추락의 날개를 단 것"이라고 했다. 인사의 형평성과 후보자의 자질을 지적한 탄원서는 대상자의 성까지 기재돼 있을 만큼 구체적이었다.

청렴도 평가에서 역대 최하위 성적을 거둔 대전교육청의 내홍이 심각한 것 같다. 경찰 수사까지 받고 있는 급식문제로 인해 외부청렴도가 지난해 11위에서 15위로 하락한 데다 직원들 스스로 조직을 평가하는 내부청렴도는 전국에서 꼴찌 두 번째였다. 탄원서 작성자는 "이게 교육청의 공정한 인사냐"며 "아무런 변화 없이 인사가 강행된다면 더 많은 저항에 부딪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대전시교육청의 연말 3, 4, 5급 승진 인사를 앞두고 교육감 비서실과 감사실, 전국교직원노동조합대전지부에 인사의 공정성과 자질문제를 지적한 탄원서가 접수됐다. 사진은 해당 탄원서의 일부.
직원들 공감하는 예측 가능한 인사해야

두 차례 민선 구청장을 포함해 45년 공직생활을 한 김성기 전 중구청장은 대전시와 자치구를 거치며 여러 일을 해봤지만 인사업무가 가장 어렵다고 했다. "한 사람의 장래를 좌우하는 게 인사"라고 한 그는 "A를 이 자리에 데려다 놓을 때는 그 사람의 다음 자리까지를 봐야 하는데 이 사람이 여기서 일을 하다가 다음에 어떤 자리에 가서 어떤 일을 해야 본인 발전에 도움이 되고 행정에도 누수가 없을지를 고려해야 한다"고 했다.

김 전 청장은 "앞뒤를 보고 인사를 하지 않고 느닷없이 이 자리에 있는 사람을 쑥 빼다가 다른 곳으로 놓는 식의 인사를 하면 직원들의 사기를 죽이는 것은 물론 행정에도 공백이 생길 수 있어 위험하다"고 했다. 이런 이유로 그가 생각하는 첫 번째 인사원칙은 경력이며 두 번째가 나이, 능력은 세 번째였다. 직원들이 공감하는 예측 가능한 인사를 해야 하며 특별한 하자가 없다면 그동안의 인사기준을 벗어난 대폭적 인사는 하지 않는 게 좋다는 얘기다.

단 한 사람의 불만도 없이 100% 만족한 인사는 하기 어렵다. 그렇더라도 인사권자는 최소한 조직원들의 공감은 받아야 한다. 인사 때마다 잡음이 나오고 파행이니 정실이니 특혜니 하는 말들이 붙는다면 재고가 필요하다. 공무원들이 인사에서 혜택을 보기 위해 줄 서기 하는 것도 문제지만 옥석을 가리지 못할 만큼 무능한 수장이라면 더 큰 걱정이다. 인사를 만사라고 하는 이유는 개인의 장래뿐 아니라 조직의 미래도 좌우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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