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초가 권좌에 오르는데도 곡절이 많았다.

아버지 효문왕은 상왕 소양왕이 오랜 기간 권좌에 있었으므로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 그러다 소양왕이 붕어하자 그제야 왕위에 오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때는 이미 효문왕 자신도 오랜 지병으로 기력이 쇠할 대로 쇠한 상태였다. 자리에 누워 정사를 돌볼 지경이었다. 그래서 왕위에 오르고도 즉위하지 못하다 정식으로 즉위한 뒤 3일 만에 세상을 하직하고 말았다.

이렇게 된 데는 여불위의 음모가 숨어있었다.

진나라로 돌아온 여불위는 자초가 태자가 되도록 하는데 모든 것을 아끼지 않았다. 자신의 전 재산을 안국군의 정실 화양부인에게 바쳤다. 그리고 그의 눈에 들기 위해 갖은 노력을 다했다. 자신에게 내린 약조가 지켜져야 했기 때문이었다. 결국 소양왕이 죽고 안국군이 효문왕에 즉위하자 화양부인의 뜻에 따라 자초는 태자가 되었다.

화양부인이 효문왕의 마음을 굳히는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태자자리를 공포하기 수일전의 일이었다. 야심한 시각에 침전을 지키고 있던 내관이 황급히 왕후전으로 화양부인을 찾아왔다. 효문왕이 급히 들라는 전갈이었다.

화양부인은 전갈을 받고 버선발로 뛰어가려다 마음을 가라앉혔다. 숨을 길게 여러 번 들이켜고 차분한 심정으로 동경 앞에 마주앉았다. 무슨 일로 자신을 찾는다는 것을 이미 꿰뚫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화양부인은 여자 시종을 불러 창포물에 멱을 감고 시원한 물에 몸을 씻었다. 이어 이화분으로 은은하게 화장을 했다.

황촛불이 타오르는 동경 앞에 알몸으로 앉아 고개를 양쪽으로 돌리며 스스로의 모습을 감상했다. 동경에 비친 모습이 그제야 흡족했다.

화양부인은 뽀얀 속살이 보일 듯이 내비치는 비단 천으로 몸을 휘감았다.

어둠이 묻어나는 방안에서 조차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알몸이 감지될 만큼 얇은 천이었다. 시종은 왕후의 모습을 보고 스스로 얼굴을 붉히며 똑바로 쳐다보질 못했다.

왕후는 그 위에 얇고 길게 늘어진 주차의를 걸치고 자신의 모습을 다시 감상한 다음 묘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이제 됐구나. 가마를 대령하렷다.”

그길로 화양부인은 효문왕의 침전으로 향했다.

효문왕은 여전히 자리에 누워 있었다. 왕의 숨소리가 점점 거칠어 가는 것으로 보아 얼마지 않아 자신도 혼자 몸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있었다.  

“오셨구려.”

효문왕이 자리에서 몸을 어렵게 일으키려했다.

“대왕마마. 괜찮사옵니다. 편히 누워 계시옵소서.”

“고맙소. 이리 가까이 오구려. 왕후.”

하지만 화양부인은 가까이 가지 않았다. 왕이 무슨 말을 하려는 것인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왕후, 가까이 오오.”

효문왕이 다시 왕후를 불렀다. 하지만 미동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화양부인은 걸치고 있던 주차의를 조용히 벗어 내리고 비단 천에 감긴 몸을 황촛불에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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