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광진의 교육 통(痛)] (사)대전교육연구소장

“요즘 아들 때문에 힘들어요. 어찌할 줄을 모르겠어요. 중학교 3학년인데 도무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알 수가 없어요. 대화도 하지 않으려고 하고… 정말 한숨만 나와요, 휴우”
“선생님은 중등에서 주로 남자애들을 오랫동안 가르쳤잖아요. 걔들 생각을 꿰뚫고 계실 것 같은데….”
실로 난감하다. 난들 그 아들 속을 어떻게 알겠는가?

“자꾸 엄마가 아들에게 꼬치꼬치 묻지는 않고요?”
“왜요, 엄마니까 이것저것 묻지요. 학교에서 어떻게 지내는지가 제일 궁금해요.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생활하는지 도무지 말을 해야지요. 말을 해도 지가 하고 싶은 말만 하고…”
“맞아 우리 아들놈도 그저 ‘밥 줘’, ‘맛있는 것 없어’, ‘짜증나’ 이런 말밖에 모른다니까.”
“지켜보면 매일 어영부영 살아가는 모양이라서 걱정되니까요. 이 거친 세상에서 저렇게 해서 어떻게 살아갈까 한숨만 나오지요. 학교에서는 어떻게 지내는지…”

성광진 (사)대전교육연구소장
도무지 자신들의 속을 드러내지 않는 아이들은 어른들을 어렵게 한다. 특히 남자아이들은 그전까지 살갑던 어머니와의 관계도 서먹하게 만들어 버리곤 한다. 누구나 가물거리는 기억을 되살려 사춘기 시절을 돌아보면 어른들이 납득하지 못할 행동으로 갈등을 빚는 점은 그때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지금의 아이들이 과거와는 확실하게 다른 측면이 있다. 과거에는 모호하거나 모르는 모든 것에 대해 부모나 교사 같은 주변 어른들에게 물어보아야 했다. 하지만 지금의 아이들은 더 이상 어른들에게 물어보지 않는다. 필요할 때마다 모바일 검색을 이용하면 된다. 이렇게 되면 부모와 교사의 권위가 과거만 못할 수밖에 없다. 또 아이들은 모바일로 세상과 소통하다 보니, 친구 사이의 관계 맺기도 과거와는 다르다. 우정도 몸을 부대끼면서 만들어지기보다 관심이나 취향 같은 부문에서 소통해야 만들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니 어른들이 그들을 어떻게 이해하겠는가?

그들에겐 인생의 멘토도 과거와 다르다. 자신이 좋아하는 취미나 영역에서의 유명인사가 될 수도 있고, 연예인이나 운동선수도 많다. 따라서 그들은 과거 세대에게 삶의 지표 구실을 했던 위인전 속의 인물은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몸은 어른이 되었는데 정신은 몸을 따라가지 못하는 불균형의 상태로만 현재의 청소년기를 설명하기에는 과거와 다르다.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사회 나가기 두렵다는 아이들

지금은 세상이 너무 빠르게 변할 뿐 아니라 그 변화가 시시각각 눈앞에서 온갖 미디어로 펼쳐져 보인다는 점이 다르다. 거기에다 워낙 다양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 대한 가치 척도가 제대로 세워지기 어려우니, 방황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매일매일 새로운 현실과 맞닥뜨리지만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기성세대와 마찬가지로 그들도 힘겨울 것이라고 짐작해본다.

따지고 보면 청소년들은 부모로부터 심리적으로 독립해야 할 때이다. 이 시점에서 아이들은 현재 자기가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 스스로 탐색하지만 해답을 찾기가 어렵다. 또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막막하다. 또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옳은 삶인가에 대해서도 궁금하지만, 그들이 잠시도 떼어놓지 않는 모바일조차도 올바른 해답을 채워주지는 못한다. 그러니 답답하다.

고등학생들에게 어른이 되고 싶은지를 물어보았다. 사회에 나가는 것이 두렵다고 말하는 아이들이 절반을 넘어선다. 과거 90년대만 해도 청소년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정서가 주류였다. 청소년들에게 미래는 새로운 세계로의 도전이고 희망이어야 하는데, 불안한 감정에 휩싸인다는 것은 아무래도 바람직하지 않다. 이러한 불안감은 어디로부터 비롯된 것일까? 지금의 사회 현실 때문이다. 어렵게 대학에 들어간 선배들마저 정규직으로 취업하는 것이 목표가 되는 현실 앞에서 희망을 갖는 것조차 불안하기만 하다. 이렇게 불안한 미래에서 무언가 일생을 걸만한 일을 찾기 위해 끊임없이 기웃거리는 상황인 것이다.

마냥 태평한 것처럼 보이는 아이들도 속마음은 답답하고 하루하루가 힘겹다. 고단한 현실에 맞부딪치며 고생하는 부모의 입장에서는 성실하지 않고 멀쩡하게 노는 것 같은 자식 녀석이 밉상으로 보일 수 있다. 그렇더라도 아무 것도 안하는 것이 아니라, 불안 속에서 고민하고 있는 자식도 힘들다고 이해해야 한다. 그러니 아들딸에게 손을 내밀자. 얼마나 힘드냐고. 오늘 하루도 얼마나 힘든 하루를 보냈냐고. 등을 두드려 주자. 사는 것이 얼마나 힘드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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